여왕벌 말고 “여왕 두더지쥐”

포유류에도 ‘진사회성’이 있어

‘이라이프’에 발표된 논문에 대한 트윗 ©트위터

진사회성(eusociality)은 새끼를 함께 돌보고, 집단 내 성체들이 여러 세대를 아우르고, 집단 내에서 번식하는 개체들과 번식하지 않는 개체들 사이에 노동 분담이 이루어지는 등의 특징을 갖는 특수한 사회성을 일컫는다. 꿀벌이나 개미로 대표되는 이 같은 사회 체계 속에는 여왕에서 일꾼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계급(caste)이 존재하며, 유전적으로 같은 조건의 개체들이 계급에 따라 표현형, 혹은 모습이 다르게 발현하는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유전자 조절의 극적인 변화에 의한 것인데, 따라서 진사회성 동물들의 진화는 독특한 사회성과 연결된 형태학적 유연성을 특징으로 한다.

포유류에도 ‘진사회성’이 있어
흥미롭게도 진사회성은 곤충 외에도 일부 조류와 포유류에게서 관찰할 수 있다. 다마랄랜드 두더지쥐(Fukomys damarensis)도 한 쌍이 여러 자식들과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노동 분담을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여왕벌이나 여왕개미와 마찬가지로 “여왕 두더지쥐”는 번식을 담당하고, 유전적으로 가까운 많은 “도우미 두더지쥐”들이 땅굴을 파고 집을 짓고, 새끼를 돌보는 일을 함께 분담하는 것이다. 대개의 일벌이나 일개미와 마찬가지로 도우미 두더지쥐들은 형태학적으로 여왕 두더지쥐보다 작고, 번식도 할 수 없다. “여왕 두더지쥐”는 태어나는 순간 여왕으로 정해져 자라는 것이 아니다. 자매들과 함께 도우미 두더지쥐로 자란 개체가 번식이 필요한 순간 극적인 형태학적 변화를 겪으며 여왕이 된다.

최근 ‘이라이프(eLife)’지에 발표된 연구는, 나이가 같은 자매관계의 다마랄랜드 두더지쥐들을 실험적으로 일부는 “도우미”로 두고 일부는 “여왕”으로 유도해 비교했다. 그 결과, “여왕 두더지쥐”가 되는 과정은 호르몬 수치가 달라지면서 골격의 발현상 변화가 나타나고 척추가 길어지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성체의 자매 두더지쥐들을 무작위로 열두 마리를 여왕으로, 열여덟 마리를 도우미로 선택했다. 도우미 두더지쥐들은 원래 태어난 집단에서 도우미 상태로 지내도록 두거나 자연에서 독립 전 단계에서와 같이 혼자 생활을 하도록 하고, 여왕으로 선택한 두더지쥐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수컷만 사는 굴로 옮겼다. 이는 자연에서 두더지쥐들이 새로운 군집을 형성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한 조건이었다. 이렇게 짝이 지어지면 곧바로 짝짓기가 시작되고 이후 배란과 임신을 준비하도록 암컷 두더지쥐의 몸을 빠르게 변화하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왕 두더지쥐의 몸이 클수록 번식력이 높아
여왕 두더지쥐들은 12-22개월 사이의 관찰 동안 평균 6.92마리의 새끼들을 낳았다. 물론, 도우미나 혼자 사는 두더지쥐들은 새끼를 전혀 낳지 않았다. 후자의 두더지쥐들은 몸집과 무게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은데 비해, 여왕 두더지쥐들은 짝이 생긴 이후 12개월 동안 빠르게 변화했는데, 꼬리로 이어지는 척추 길이가 특히 길어졌다. 몸이 길어질수록 번식력도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는데, 한 번에 낳은 새끼 숫자와 그 상대적 크기가 더 컸다고 보고했다. 형태학적 유연함이 적응적 이점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편, 연구진은 이 같은 골격의 유연성을 조절하는 유전 기작을 알아내기 위해 여왕과 도우미 두더지쥐들의 요추에서 골수 유래 중간엽 줄기세포(bone marrow-derived mesenchymal stem cells)를 추출해 배양했다. 성호르몬이 골격 변화를 유도할 거라는 가정 아래, 배양한 세포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처리하고 이후 발현된 유전자들을 비교했다. 그 결과, 여왕 두더지쥐와 다른 두더지쥐들 사이에 통계적 의미가 있는 차이를 보인 유전자는 없었지만, 연관성을 갖는 유전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왕 두더지쥐에게서 상향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뼈의 재형성(bone remodeling)과 관련된 유전자들이었다. 뼈의 ‘형성(formation)’보다 골격의 유지에 중요한 ‘흡수(resorption)’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반복되는 출산과 수유의 부담도 있어
활발하게 번식하는 포유류 암컷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칼슘이다. 특히 어미가 새끼의 뼈 성장을 도와줘야 하는 수유 기간에 아주 중요한데, 이를 위해 모체의 골격은 일시적으로 재형성(remodeling)을 하게 된다. 연구진은 여왕 두더지쥐는 지속해서 번식 활동을 해야 하는 만큼 뼈의 부피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여왕 두더지쥐는 도우미 두더지쥐 보다 대퇴골의 부피가 더 낮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뼈의 흡수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고, 반복되는 출산과 수유로 인한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인간의 경우 뼈의 흡수 작용이 빨라지면 골다공증 위험이 커지는데, 여왕 두더지쥐의 대퇴골 부피가 줄어든 것도 이와 유사하게 뼈의 힘이 약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번식의 부담이 여왕 두더지쥐 건강의 위험으로 이어진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진사회성을 가진 여러 곤충과 달리 다마랄랜드 여왕 두더지쥐는 몸집이 커지는 과정을 통해 생식력을 높일 뿐 아니라 번식으로 인한 비용도 함께 지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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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케미 2021년 5월 24일10:17 오후

    다마릴랜드 두더쥐는 같은 두더쥐일지라도 환경을 달리하면 생식을 하거나 일만하는 두더쥐로 진화한다니 신기합니다. 결과, 여왕 두더지쥐가 되는 과정이 호르몬 수치가 달라지면서 골격의 변화가 일어나 생식하기에 좋게 척추가 길어진다니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태계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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