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서 개미집을 살펴보면 잔디밭 사이로 솟아오른 작은 흙더미와 작은 구멍 정도로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안에는 여왕개미가 알을 낳은 방, 애벌레를 돌보고 기르는 방. 수개미들이 있는 방, 음식을 위해 재배하고 있는 곰팡이 농장, 쓰리기 처리장 등이 길게 연결돼 있다.
지하 76m 이상 내려가 수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수십 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개미의 이런 채굴 및 건설 능력에 관심을 갖고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뛰어난 굴착 기술로 전체적으로 안정성 유지
특히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연구진은 첨단 장비를 동원해 개미가 땅을 어떻게 파 내려가고 있는지 채굴 과정을 관찰해왔는데 그 내용이 최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실시간 3D로 드러난 개미 터널링 역학(Unearthing real-time 3D ant tunneling mechanics)’이란 제목의 논문에서는 개미가 놀랍도록 복잡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방법 뒤에 숨겨진 비밀이 들어 있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우리는 개미집 토양 내부에 형성되는 아치(arches)로 인해 터널 주변에서 입계력(intergranular force)이 상당히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입계란 결정들 사이의 경계를 말하는데 힘이 커지면 분산, 혹은 확산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아치형 구조 때문에 이 힘이 완화되면서 위로부터 하강하는 힘으로부터 터널을 보호할 수 있으며 또한 견고성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거주하는 알, 애벌레는 물론 땅 위로부터 가져온 곡물 등 식량 등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또 개미가 선처럼 가늘고 긴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땅을 파 내려가고 있으며, 이때 계속해 통로를 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선형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채굴 범위를 구역별로 구분하며 땅을 파 내려가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개미집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특성으로 개미집 전체가 선 모양의 통로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하에 둥지를 튼 개미는 선천적으로 터널링 행동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매우 안정적으로 터널 굴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터널 건설 과정을 포착하기 위해 X선 등을 활용한 3D 영상시스템 등 첨단 장비를 동원했다고 밝혔다.
특히 굴착 중 발생하는 토양의 입자 역학을 추적하기 위해 입자 움직임을 정확한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으며, 개미가 매우 뛰어난 굴착 기술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 발견이 향후 새로운 굴착로봇 개발에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미 모방해 향후 개미형 채굴 로봇 개발 예정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채굴 과정에서 개미가 안전하게 땅 파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공학자인 호세 안드레데(Jose Andrade) 교수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를 시작하기 전 또 다른 연구자의 사진을 보고 개미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 세밀하고 광대한 터널을 만들고 있는 모습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미가 터널을 맹목적으로 파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방법을 알고 땅을 파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미에 대해 배우기 위해 곤충학자인 생물학‧생물공학자인 조 파커(Joe Parker)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연구팀을 구성한 후 거의 1년에 걸쳐 개미를 기르고 개미와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X선 영상 장치 속에서 촬영이 가능한 컵을 만들어 개미로 하여금 그 컵 안에서 흙을 팔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개미가 자연스럽게 채굴작업을 할 수 있는 컵의 크기와 컵에 들어갈 수 있는 최적의 개미 수를 결정할 수 있었다.
안드레데 교수는 ‘개미들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무엇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땅을 파고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개미들이 채굴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어떤 알갱이와 블록을 제거하고 어떤 알갱이와 블록은 내버려두는지 관찰했다.
개미들을 사람에 비유하면 마치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흙 알갱이들을 평가하고 주변 기계적인 상황을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수는 이 모습을 사람의 젠가(Jenga) 게임에 비유했다.
직육면체 모양의 나무토막들을 쌓은 기둥을 만든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무토막 한 개씩을 빼내는 게임이다. 토막을 빼낼 때 실수로 기둥을 무너뜨리면 그 사람이 패배자다.
안드레데 교수는 “개미들이 흙 속을 돌아다니며 제거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느슨한 흙 알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제거할 수 없는 블록, 즉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블록은 구조물의 ‘힘 사슬’로 남겨 두고 그렇지 않은 알갱이 혹은 블록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교수는 “초유기체처럼 행동하는 알고리즘이 모든 일개미들에게 공통적인 행동 프로그램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며, “이 모든 개미들의 작은 두뇌에 그 정보가 어떻게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지는 자연 세계의 경이로움이며,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안드라데 교수는 “향후 개미가 컴퓨터에서 땅을 파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화 할 수 있도록 행동 알고리즘을 인공지능으로 모방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이 터널을 확장하는데 개미들의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다음 단계는 사람을 위해 터널을 파는 로봇 개미를 제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자금은 미 육군 연구소(United States Army Research Office)에서 지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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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8-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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