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을 통해본 코로나19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새 병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모델

1919년은 영국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초로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더 높은 해로 기록됐다. 워낙 죽는 사람이 많아서 관을 주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바로 1918년 가을부터 영국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 때문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영국에서만 약 25만 명이 사망해다. 전 세계적으로는 최소 50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인구 비율로 따지면 약 2억 명에서 최대 4억 명 이상이 희생된 셈이다.

스페인 독감은 몇 가지 점에서 기시감을 느낄 만큼 코로나19와 흡사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상태에서 화상 회의 등으로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102년 전에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도 스페인 독감에 걸려 간신히 살아났다.

미국 적십자사 회원들이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희생자를 옮기고 있는 모습. ⓒ public domain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 중 하나는 폐렴이 급격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 역시 폐를 손상시켰다. 똑같은 폐렴이라도 어떤 이들은 병의 진척이 매우 빠른 반면 어떤 이들은 손상되는 폐 부위가 매우 국지적이어서 의사들을 당황시켰다. 이는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의 재생산 지수도 비슷하다. 재생산 지수(reproduction number)란 1명이 가진 바이러스가 몇 명에게 전염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보고에 의하면 코로나19의 재생산 지수 추정치는 2~2.5이며, 스페인 독감은 약 1.8로 알려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큰 피해 입힌 스페인 독감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스페인 독감이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병원체의 행동을 이해하는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엄연히 다르다.

바이러스의 종류가 다르니 그에 따른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치명률이 높은 연령대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환자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가파르게 증가한다. 최근 영국 연구진이 중국 본토 감염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에 걸린 10세 미만의 치명률은 0.0016%였지만 80대 이상에서는 7.8%로 치솟았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의 경우 젊은 층에서 치명률이 훨씬 더 높았다. 왜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야 할 젊은이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당시 나이가 많은 연령층에서는 그들이 어렸을 때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유전 형질을 지닌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어서 면역이 있었을 거란 추정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은 대개 선진국보다 후진국에 더 큰 피해를 입힌다. 스페인 독감의 경우도 선진국에서는 치명률이 약 2%였지만, 인도는 6%, 이집트는 치명률이 10%에 달했다. 그로 인해 인도에서는 약 1850만 명이 숨지고 이집트에서는 13만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코로나19의 양상은 전혀 뜻밖이다. 확진자 2000명 이상의 대량 발생국 중 치명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11.9%), 스페인(8.9%) 네덜란드(8.6%)의 순으로서 모두 선진국에 속하는 유럽 국가들이다(4월 2일 오전 기준).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때는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의 시대였다. 때문에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소금물로 입을 헹구고 열이 내릴 때까지 휴식을 취하는 정도가 대책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가 새로운 전염병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잘 갖추고 있다. 코로나19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 유전자 지도를 파악하는 데 불과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정보는 세계보건기구(WHO)로 보고되고, 곧바로 체계적인 조치가 시행된다. 이런 시대에 코로나19로 인한 선진국의 높은 치명률은 의외다.

전염병 확산 둔화시키는 효과적 방법

그런데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의 대책 중 놀라울 정도로 닮은 점이 하나 있다. 정책 책임자가 조기에 집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전염병의 확산을 둔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하버드대학의 마크 립서치 교수가 2007년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은 전염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일찍부터 집중적으로 개입했던 도시들에서는 그렇지 않은 도시들에 비해 피해 정도가 경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 립스치 교수팀은 올해 1월 10일부터 2월 29일까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우한 및 광저우의 통제 조치 시기 및 지역사회 확산 정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우한의 경우 지속적인 감염이 관찰된 지 6주 만에 공공 집회 취소 및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통제 조치를 시행한 반면 피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했던 광저우의 경우 1주일 이내에 그 같은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H1N1 바이러스는 이후 100여 년 동안 살아남아 모든 유행성 독감의 기원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보다 앞서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던 2009년의 신종플루의 바이러스도 바로 H1N1의 아형이다. 스페인 독감처럼 성공적으로 인간에게 침투한 바이러스의 경우 변종이 되고 합성돼 더욱 강해진 형태로 불쑥 인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코로나19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괜한 불안감과 우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대비책도 마련할 수 있다. 개입과 대비책은 아무리 일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는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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