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 위에 펼쳐지는 무한의 우주 ‘바둑’

[스포츠 속 과학] 지적능력이 맞부닥치는 스포츠

세계바둑랭킹(Go Ratings) 1위에 올라있는 신진서 9단의 기세가 무섭다. 지난해 제24회 LG배 기왕전에서 약관의 나이로 우승해 생애 첫 메이저 세계대회 타이틀을 가져가더니, 올여름 펼쳐질 메이저 세계바둑대회 결승에 연거푸 올라 바둑 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원래 6월 14일 열릴 예정이었다가 8월로 연기된 제13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신 9단은 탕웨이싱 9단과 맞서며, 40만 달러(약 4억4천만원)라는 최대 상금이 걸려있고 4년마다 열려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9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는 셰커 9단과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한동안 중국에 밀리면서 세계대회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우리나라가 다시 패권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둑 팬들이 신 9단이 한국바둑을 다시 세계최강으로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올해 2월 열린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모습 때문이다. 한·중·일 최고기사들이 참여해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지는 이 대회에서 신 9단은 마지막 중국의 커제 9단까지 5연승을 거두며 3년 만에 대한민국 우승을 견인했다. 이 대회에서 5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건 2005년 이창호 9단이 ‘상하이대첩’을 거둔지 16년 만의 일이었다.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중국의 커제 9단(오른쪽)까지 꺾고 5연승으로 대한민국 우승을 견인한 신진서 9단(왼쪽). ⓒ 한국기원

천재들도 즐겼던 최고의 지적 스포츠

바둑은 흑과 백의 바둑돌을 나누어 가진 후 19개의 가로선과 19개의 세로선이 그려져 있는 바둑판의 교차점에 서로 번갈아 가면서 돌을 놓아 쌍방이 차지한 집의 많고 적음으로 승패를 가리는 경기이다. 고대 중국에서 창안됐다고 하나 발원은 정확하지 않은데,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가 바둑을 자주 언급한 것을 보면 최소 2500년 이상 오래된 게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둑은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두었으며, 앞으로 수십만 년의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이 두더라도 단 한판도 똑같은 경기가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을 정도로 변화가 무궁무진하다. 단순하게 바둑의 모든 교차점에 돌을 놓는다고 가정했을 때 경우의 수는 361!=361×360×359×…×3×2×1=1.4×10^768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전체 원자의 수(10^82)조차도 비벼볼 수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바둑 팬들은 바둑을 반상 위의 우주라 표현하며, 삼라만상의 변화가 바둑판에서 살아 숨 쉰다고 얘기한다. 바둑을 두기 시작하면 바둑판 위에서 흑돌과 백돌이 어우러지면서 변화무쌍한 다양한 변주를 보이다보니 아무래도 처음 배울 때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며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바둑이 인류가 발명한 다양한 아날로그 게임 중에서 가장 높은 지적능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재라 불리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천재인 앨버트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 존 내시 등이 바둑을 즐겨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바둑을 둘 때 다양한 수에 대한 지적 사고의 깊이가 바둑의 실력을 결정하는데, 기력에 차이가 있는 상대를 이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변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실력 게임이기도 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한 한국 선수단. ⓒ 한국기원

아울러 바둑은 스포츠이기도 하다. 실제 대한바둑협회는 대학체육회의 정식 가맹단체이며, 전국소년체전과 전국체육대회에서 바둑은 정식종목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는데, 우리나라는 남자단체와 여자단체, 혼성페어 등 전 종목을 석권하고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바둑은 정식종목으로 펼쳐지는데, 벌써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국가대표 기사들 간 치열한 명승부가 기대되고 있다.

바둑이 스포츠로 자리를 잡기까지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규칙에 의해 행해지는 신체활동으로 재미를 갖춘 유희성과 서로 겨루는 경쟁성이 강조된다. 바둑은 규칙성, 유희성, 경쟁성, 대중성 등 스포츠를 정의할 때 사용되는 요소들은 대부분 갖추고 있는데, 문제는 큰 근육을 쓰는 신체활동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사격처럼 바둑의 착점 동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스포츠 종목이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바둑이 스포츠로 인정받는 데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스포츠로 인정하고 있는 체스 등 머리를 쓰는 유사종목의 도움이 컸다. 바둑과 체스 등은 신체의 일부인 두뇌를 사용하여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스포츠로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둑 열심히 두면 두뇌가 발달해

바둑은 스포츠이면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기도 하다. 바둑은 흑과 백이 교대로 바둑판 위에 돌을 놓으면서 반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바둑을 둔다는 것은 매 수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수단을 검색하는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바둑의 문제 해결은 상황의 확인, 목표 상태의 결정, 가능한 수의 탐색, 전개될 변화의 예측, 변화도에 대한 평가의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정수현 『Cognitive Process in the Problem-solving of the Baduk』 참조)

바둑은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요구되는 신체적인 능력과 바둑 기술에서도 차이가 난다. 바둑 초반에는 진형의 구도와 관련된 공간지각력이 가장 중요한데, 나중에 싸움을 하거나 집을 차지하는 데 유리하도록 돌을 벌여 놓는 ‘포석’과 돌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행마’에 힘써야 한다.

바둑의 중반에서는 전투의 수 변화를 읽는 수읽기와 추리력이 가장 중요하며, 자신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형세를 판단해 침입, 삭감, 공격, 타개, 패싸움, 바꿔치기, 사석전법 등을 구사하게 된다.

바둑 종반에서는 끝내기의 크기를 계산하는 수리력이 가장 중요한데, 집계산을 하고 끝내기를 하게 된다. 바둑기사들 사이에서는 흔히 계산서가 나왔다고 표현하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아직 한창인 경기 중반에 자신과 상대방이 최선의 수로 끝내기를 진행하는 것을 가정해 양측의 집계산을 해보고 정확히 몇 집 차이 나는지를 파악해 끝내기에 활용한다.

바둑기사들은 일반인들보다 우측 편도체(Amygdala),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안와전두엽 사이에서 기능적 연결성의 증가가 관찰되었다. ⓒ W,H. Jung et al 『Exploring the Brains of Baduk Experts』

바둑기사들은 바둑을 두면서 끊임없이 머리를 쓰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두뇌가 훨씬 발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녀들의 머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 바둑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바둑기사는 일반인보다 뇌의 백질이 더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는데, 백질은 집중력, 작업기억 등을 담당한다.

또 바둑기사들은 일반인보다 정서적 처리와 직관적 판단에 관여하는 편도체와 안와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활성화돼 있었다. 즉 바둑 전문가는 일반인보다 정서적 처리, 직관적 판단을 처리하는 뇌 부위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하나의 자극에 대해 일련의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 된다.(WH Jung et al 『Exploring the Brains of Baduk Experts』 참조)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둑기사는 대국이 진행 중인 바둑판을 몇 초만 보여줘도 완벽하게 흑돌과 백돌의 위치를 외울 수 있다. 한편 흑돌과 백돌을 대충 흩어놓으면 바둑기사들은 전혀 외우지 못한다. 이는 바둑돌 위치를 사진을 찍는 것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흑돌과 백돌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패턴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바둑기사 패턴 인식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 때 TV에서는 진기명기 수준의 바둑 경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바둑기사들이 백돌 한 가지 색으로 바둑을 두는 일색 바둑부터, 서로 착점 위치만 얘기하면서 바둑을 두는 무석바둑, 아예 두 눈을 모두 가리고 암흑 속에서 바둑을 두는 맹기(盲棋, 암흑바둑)까지 있다.

바둑계를 뒤흔든 인공지능 충격

요즘 바둑하면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특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 세계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인공지능의 등장을 피부로 느꼈다. 계기는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 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한국이 배출하여 세계를 풍미한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펼친 세기의 바둑 대결 때문이었다.

2016년 3월 서울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리지 매치’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고작 유럽 챔피언 정도를 꺾는 수준으로 알려져있던 인공지능이 입신의 경지에 오른 바둑기사를 이기기 어렵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국내 유명 바둑기사들이 모여있던 검토실에서도 초반에 알파고가 내놓는 수에 대해 인공지능이 수준급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내리꽂히는 알파고의 한 수, 한 수는 이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던 세계 최고수 바둑기사는 결국 1승 4패의 전적으로 인공지능에 고개를 숙여야 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인간이 인공지능을 절대 당해낼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알파고제로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방법. 임의로 다음 수를 선택해(a) 바둑을 두어보고 승리할 확률을 계산(b)해 어떤 수가 좋은 수인지를 계속 찾아내(c) 높은 실력으로 바둑을 둘 수 있게 된다(d). ⓒ Silver, D. et al. 『Mastering the game of Go with deep neural networks and tree search』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딥러닝(Deep Learning)과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MCTS, Monte Carlo Tree Search)이다. 딥러닝이란 인간의 뉴런 구조를 본떠 만든 인공신경망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이다. 마치 인간이 바둑을 두면서 공부를 하고 정석과 같은 좋은 수를 외우는 것처럼 딥러닝으로 경험을 통한 개선이 인공지능에 계속 쌓이게 된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바둑을 두면서 수에 따라 갈라지면서 만들어질 마치 나무의 가지와 같은 수많은 트리 중에 최적의 트리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원래는 각 트리마다 정확한 해를 구해야 서로 비교할 수 있는데, MCTS에서는 게임트리내 하위 트리에서 임의로 표본추출을 한 후 향후 시행할 행동들에 대한 값어치를 근사적으로 추정하는 몬테카를로 방법을 활용한다.

몬테카를로 방법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폴란드계 미국의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이 고안했다. 확률론적 해석을 가진 문제의 해결에 아주 유용하며,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에 활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알파고가 인간과의 대결에서 패한 것은 이세돌 9단과의 4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국에서 이 9단은 신의 한 수로 불린 78수를 두어 흑의 집을 부수면서 멋지게 탈출해 경기의 대세를 일거에 역전했다. 그런데 후에 이 신의 한 수는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묘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공지능은 찾지 못했던 78수를 막아내는 묘수를 찾아낸 것은 대국을 복기하던 바둑기사들이었다.

현재 알파고는 바둑계에서 은퇴하였지만 또다른 인공지능 바둑들이 개발돼 인간의 수준을 초월하는 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바둑기사들은 인공지능과 3점이나 4점 접바둑(실력 차이로 인해 하수가 바둑돌을 미리 깔고 두는 바둑)을 두면서도 쉽지 않은 승부를 펼치고 있다. 인공지능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지만 인공지능이 찾아내지 못하는 신의 한 수에 대한 대응을 찾아낸 것이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565)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