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도 죽을 때 비명 지른다

[금요 포커스] 화학적 신호로 동료들의 항생제 내성 유도

초식동물들이 맹수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동료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내듯이 식물들도 위기에 처하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경고 신호를 받은 식물들은 잎에 독성물질을 채우거나, 줄기 및 잎을 공격에 노출되지 않는 쪽으로 이동하는 방어 자세를 취해 자신을 보호한다.

식물들은 이 같은 경고 신호를 혈연관계가 있는 동료들에게만 보낸다. 과학자들이 야생 환경에서 자라는 산쑥의 잎에 상처를 내고 1년 후 조사한 결과 유전적으로 똑같은 산쑥들만 그렇지 않은 산쑥보다 동물의 피해를 40% 이상 적게 입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식물들이 위험신호를 보내는 메커니즘은 동물들과 매우 유사하다. 2018년 ‘사이언스’ 지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외부 공격을 감지한 식물들은 글루타민산염을 생성해 칼슘이온 생성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그 같은 변화가 릴레이 경기처럼 다른 식물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위협에 처하면 신경세포에서 글루타민산염을 생성한다. 단순하게만 보이는 식물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들은 단단한 표면 위에서 편모를 이용해 수십억 마리씩 떼를 지어 이동하기도 한다.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그런데 무리를 지어 사는 박테리아들도 죽을 때 비명을 지르며 주변의 동료들에게 위험을 경고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때 박테리아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식물의 경고음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죽기 직전에 뿜어내는 화학적인 경보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미국 텍사스대학의 라시카 하쉬(Rasika Harshey) 교수팀은 항생제와 같은 위협에 직면했을 때 박테리아가 내는 화학적 비명은 동료들에게 항생제 내성을 야기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명이 조기 경보 시스템처럼 작용해

많은 종의 박테리아들은 편모라고 불리는 가느다란 꼬리 모양의 구조물로 헤엄친다. 특히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들은 단단한 표면 위에서 편모를 이용해 수십억 마리씩 떼를 지어 이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같은 박테리아 무리들은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더 빨리 성장한다. 따라서 연구진은 박테리아 무리가 개별 박테리아와는 달리 항생제 내성을 진화시키는 그들만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진은 이전 연구에서 박테리아 무리가 항생제에 맞닥뜨렸을 때 무리 중 약 25%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때 죽은 박테리아들은 동료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로 인해 생존한 박테리아들은 항생제로부터 적극적으로 멀어졌다. 그러나 무엇이 이 같은 박테리아의 행동을 이끄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대장균이 죽을 때 내뿜는 특정 단백질(빨간색)은 동료들의 외부 막(녹색)에 결합한다.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연구진은 그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항생제를 투입하면서 대장균 무리를 관찰했다. 그 결과 대장균은 죽으면서 특정 단백질을 방출했는데, 그 단백질은 살아남은 대장균 세포의 표면에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같은 신호는 살아남은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조기 경보 시스템처럼 작용했다. 즉, 그 신호를 받은 동료 대장균들은 즉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죽은 박테리아들의 희생은 단지 경고만 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신호는 살아남은 동료들의 세포막에서 펌프질을 활성화시켜 항생제 물질을 퍼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돌연변이 일으킬 시간 벌어줘

라시카 하쉬 교수는 “어찌 보면 이는 지극히 생리적인 현상이지만, 결국 동료 박테리아들에게 항생제 내성으로 이어지는 돌연변이를 일으킬 시간을 벌어준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8월 19일 자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무리를 이루는 박테리아의 하위 집단은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하위 집단은 항생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단일 박테리아들보다 생존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처럼 박테리아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이 속한 무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밀집된 박테리아 무리가 소량의 항생제에 노출될 경우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기 위한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 문제는 현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해 요인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박테리아가 어떻게 항생제 내성을 갖게 되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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