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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주범’ 인간의 첫 번째 발걸음 생물 다양성 보호 위한 국제적 활동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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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묘지에 그려진 암석화에는 사자가 영양과 얼룩말을 사냥하는 모습이 남겨져 있다. 또 하마와 기린, 코끼리 등과 같은 거대 포유류들도 등장한다. 사하라 사막 지역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탄자니아 세렝게티국립공원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

최근 미국 산타페연구소에서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에는 37종에 이르는 거대 포유류가 서식했으나 오늘날에는 8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일계곡의 갑작스러운 건조화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끝난 마지막 빙하기 직후에도 거대 포유류들이 대량으로 멸종된 사건이 일어났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연구진은 멸종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 13만2000년~1000년 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거대 포유동물의 정밀 지도를 작성해 전 지구적인 분석을 최초로 시도했다.

그 결과 총 177종의 거대 포유동물이 그 시기에 멸종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거대 포유류의 멸종은 매머드처럼 추위에 적응한 종과 큰뿔사슴 같은 온대성 종, 그리고 큰아프리카물소 같은 열대성 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기후 지대에서 발생했다. 지역별로 보면 아프리카 18종, 유럽 19종, 아시아 38종, 오세아니아 26종, 북미 43종, 남미 62종이다.

매머드는 인간이 도착한 시기에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 Wikipedia
매머드는 인간이 도착한 시기에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 Wikipedia

그럼 177종이나 되는 거대 포유류의 대멸종은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이에 대해 오르후스 대학 연구진은 바로 인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빙하기가 끝난 후 더욱 똑똑해진 호모 사피엔스가 미지의 지역으로 이동해 마구잡이 사냥에 나섬으로써 많은 거대 포유동물 종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야생 동물과 원시 인류의 접촉이 없었던 지역에서 더 높은 비율의 멸종이 일어난 걸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다.

인간이 대형동물 멸종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는 예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매머드의 멸종 사례다. 미국 카네기과학연구소에서는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매머드가 서식했던 알래스카 및 시베리아 지역의 호수 퇴적물에 보존된 자작나무의 꽃가루를 조사했다. 왜냐하면 매머드는 자작나무를 주먹이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약 1만5000년 전 자작나무 꽃가루의 양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시기는 바로 매머드의 유일한 사냥꾼이었던 인간이 그 지역에 도착했던 때다. 인간에 의해 매머드의 개체수가 줄어들자 자작나무들이 번성한 것이다.

인류 출현 이후 생물 멸종 1000배 증가

인간의 문명이 지구를 완전히 정복한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새롭게 내놓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이 출현한 이후 전 세계 생물체의 멸종 비율이 약 1000배 증가했다는 것.

즉,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매년 100만 종의 생물체당 0.1의 멸종이 일어났지만, 현재는 매년 100만 종의 생물체당 100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구의 주저자 중 한 명인 듀크대학 스튜어트 핌(Stuart Pimm) 교수는 현재 멸종률은 기존에 추정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며, 주요 멸종 원인은 인간의 인구 증가 및 소비량 증가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2050년까지 9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전체 토지 면적의 약 3/4이 인간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구상의 식물과 동물 절반이 인간 활동에 의해 다음 세기 동안 멸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모든 생명의 미래가 인간 활동에 달려 있는 셈이다.

특히, 식물의 멸종은 인간의 식량난과 직격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야생작물 근연종이 멸종해버리면 이들이 지닌 유전적 특성으로 극한 환경 조건과 다양한 병해충, 질병 등에 대한 곡물 내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야생작물 근연종이란 자연 서식지 내 다양한 범위의 환경조건에서 서식하는, 곡물과 매우 유사한 야생 식물종을 의미한다. 이 식물들은 유전적으로 상당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 곡물의 생산량 및 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야생벼의 경우 가뭄과 알루미늄 독성에 대한 내성을 부여하고, 돌콩의 경우 대두 내 단백질 함량 향상에 이용되는 등 곡물 품질 향상에 성공적으로 활용된 사례들이 많다.

생물 다양성 보호 위해 IPBES 출범

또한, 식물종의 멸종은 자생지에서의 바이오매스 생산량을 절반 가까이 감소시킨다는 실험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혼합종의 바이오매스 생산량은 단일종보다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이 높은 종이 단일로 존재하는 것보다 다른 종끼리 뒤섞여 서식할 때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생물 다양성은 종의 진화나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큰 이점을 지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설립돼 현재 118개의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는 ‘종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간 플랫폼(IPBES: Intergovernmental Platform on Biodiversity and Ecosystem Services)’이 대표적인 사례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진 이 기구의 목표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평가 및 예측 결과를 각국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생태계 보호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추구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IPBES는 ‘벌과 기타 꽃가루 매개충의 건강진단 방법’이라는 첫 번째 프로젝트에 이어 다음달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과학자 그룹 회의에서는 기존의 생태계 다양성 평가법을 총점검할 예정이다. 그 평가법 중 대표적인 것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하는 멸종위기종 목록 작성에 사용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및 종 풍부성 측정법이다.

이 같은 생태계 시뮬레이션이 완성되면 미래의 생물 다양성 추이를 예측하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측정 및 다양한 시나리오를 비교하는 생태학자들의 능력이 현저히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생물계 멸종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인류가 드디어 힘을 모아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4-09-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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