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정말 방어효과가 있었을까?

방어력보다 상징, 성벽이 뚫릴 때마다 왕조 멸망해

기원전 220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거대한 제국을 북방민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공사는 이후 2000년에 걸쳐 이어졌고 세계에서 가장 장대한 규모의 군사시설물로 모습을 갖춰나갔다. 평균 높이 7.8m, 여러 개의 겹친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튼튼한 성벽이 2만 1000km에 걸쳐 뻗어 있는데 이는 지구 둘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리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만리장성이 정말 외부의 적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했느냐는 것이다. 만리장성을 방문하는 이들 역시 이렇게 긴 성벽을 많은 군사들이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엄청난 노동력‧자금이 투입된 만리장성에 대해 역사적으로 성공‧실패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중국인의 단결을 위한 상징물로 정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Wikipedia

보는 관점에 따라 성공실패 교차해

6일 ‘라이브 사이언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공과 실패를 정의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외부 침입을 저지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것.

미 펜실바니아대 아서 왈드론(Arthur Waldron) 교수는 자신의 저서 ‘중국의 만리장성, 역사에서 신화까지(The Great Wall of China: From History to Myth)’에서 “중국 군대는 만리장성으로 인해 외부 침략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적군을 위태로운 상황으로 유인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1428년에 몽골군과의 전투 상황에서 중국의 한 장군이 만리장성 성벽으로 몽골군을 몰아붙여 탈출로 없는 상황에서 적군을 패배시킨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축조 과정에서 만리장성은 곳곳에 간격이 존재했다. 장성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적군은 그 약점을 노려 그곳을 집중 공격해 중국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장성이 뚫릴 때마다 왕조 전체가 종말을 맞이해야 했다.

런던 버벡대의 줄리아 러벨(Julia Lovell) 교수는 “위대한 성벽 건설자인 명나라는 북동쪽에 있는 만주족 침입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중국의 한 장군은 왕조에 불만을 품고 만주족이 명나라로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만주족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1644년 청나라를 건국해 1912년까지 왕조를 이어가게 된다. 러벨 교수는 “이로 인해 19세기까지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만리장성을 돈을 많이 들이고 엄청나게 값비싼 실패를 겪은 ‘전략적 어리석음의 결과’로 보았다.”고 말했다.

만리장성에 대한 이런 풍자는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이어졌다. 특히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많은 세금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던 백성들 사이에서는 왕조 멸망의 원인이 된 만리장성의 나약한 모습은 그동안의 울분을 풀어내는 계기가 됐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의 루이스 에드워즈(Louise Edwards) 교수는 “만리장성은 그동안 여러 왕조들에 의해 방어란 명목으로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강력한 상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혁명 이후 중국인 단합 상징물로 변신

그러나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은 1912년 쑨원(孫文)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을 탄생시켰다.

그리나 군주가 부재한 상황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광대한 국가를 통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루이스 에드워즈 교수는 “왕조가 아닌 새로운 지도자들은 신생국가 정체성을 다지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상징물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리장성은 지도자들의 뜻을 충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건조물이었다. “중국의 근면한 주민들이 힘을 합쳐 건설한 세계 최대 건설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서 앞으로 중국인들이 단결을 통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였다.

에드워즈 교수는 “1949년 공산 정권이 들어섰을 때 이들 역시 만리장성을 그들의 정치적 이념과 일치시켰다.”고 말했다. “이런 목표하에 다양한 교육이 실시됐고,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은 지속적이면서도 강력한 민족적 단합이라는 결과를 거두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괘를 같이하고 있다.

중국이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00년경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4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최초의 황제가 된다.

진시황은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거대한 성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그는 몽골 지역의 다양한 유목부족들로부터 제국을 보호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기존 요새를 연결하도록 지시했다.

이 같은 진시황의 의도는 이후 황제들에게 계승된다. 성벽을 더욱 확장하고 강화했으며 거기에 봉화탑을 추가했는데, 이 탑은 다가오는 공격에 대비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신호로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만리장성과 닮은 모습을 갖춘 것은 1300년대 들어서다. 1368년 명나라가 들어서고 명나라는 과거 중국을 점령한 몽골족을 의식해 성벽을 탄탄하게 구축했지만, 몽골족이 아닌 만주족에 의해 나라를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만주족 청이 멸망한 지금 만리장성은 21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중국의 부와 건축적 전문성, 공학적 기량은 물론 애국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만리장성을 통해 지금의 중국 정부 역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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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황일화 2021년 12월 13일1:03 오후

    실질적으로 만리장성이 중국의 오랜 역사와 그 궤적이 유사하다는 의미로 저런 표현을 선택한 것 같은데요. 만리장성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괘를 같이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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