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과학적 창의성은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 바로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시켜 생각함으로 과학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컴퓨터 네트웍에서 카오의 법칙이란 게 있다. 이 법칙은 컴퓨터 네트웍이 지닌 창의성은 네트웍에 접속된 사람들 중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수에 지수형태로 비례함을 뜻한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네트웍으로 연결되면 그만큼 상호 유익한 정보교환이 활발해짐으로 네트웍을 통해 나오는 창의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 법칙은 네트웍 사회에서 중요한 이론이다.
손정의, 매일 기존정보 결합시켜 창의력 발휘
미국 철학자 ‘아더 코슬러’는 사람이 왜 웃는 지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 사진 죽이네”라는 말을 건넨 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후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왜냐하면 ‘먹는 죽’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 사진 ‘죽’이네”란 뜻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왜 웃었을까. 그에 의하면 바로 ‘이 사진 죽이네’란 말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던 평면과 실제 죽 사진이 부딪혀 불꽃이 튀었을 때 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웃음과 창의성을 연관 지어 연구했고, 그 결과 창의성도 머리 속에서 기존 상상력에 새로운 개념에 부딪혀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다고 결론지었다. 즉 이종간의 결합을 뜻하는 ‘잡종’적 사고가 창의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학문과 학문의 결합, 한 학문에서 다른 학문으로의 이전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세기의 과학자들, 전공 연계해 연구업적 내
멕클린독은 자신이 젊었을 때 “사람 유전자 중에는 ‘뛰는 유전자’(Jumping Gene)란 놈이 있어 고정되지 않고 이러저리 왔다갔다 한다”는 주장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사람을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30년 뒤인 1983년 그는 노벨생리학상과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업적은 학창시절 배운 세포유전력과 자연관찰사적 접근을 접합시켜 만들어 낸 것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을 발견한 독일의 헤르몰츠는 의학도이면서 물리학도 전공한 경우다.
반면 다른 분야로 옮겨가 과학사에 업적을 낸 사람들도 있다. 근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프랑스 과학자 라브와지에는 자국에서 어렵게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된 후 물리학자와 어울리다가 물리학은 굉장히 수학적이고 엄밀한 데 반해 자신이 전공한 화학은 상대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화학분야를 정밀하게 하려고 노력, ‘산소’이론을 만들어냈다.
독일 슈뢰딩거는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다가 중년 이후 생물학으로 방향을 전환해 1944년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물리학자가 생명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데, 슈뢰딩거는 책 속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정보전달요소로 기능을 암시했다.
공동연구로 노벨상 수상자 이겼다
다른 예로 에디슨을 들 수 있다. 에디슨은 실제로 100명의 연구자가 해내기 힘든 업적을 혼자 이루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다른 연구자과의 공동연구가 많았다. 그런데 에디슨은 과학자인 동시에 사업가였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공동연구도 대부분 자신의 이름으로 했다. 가령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력시스템도 ‘프랑시스 옵턴’과의 공동연구로 해낸 것이다
모 연구자는 아이슈타인, 프로이드, 마르크스 등을 포함해 ‘세상을 바꾼 7명의 천재 연구자’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 천재들 모두 이방인으로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즉 어릴 때 문화와 이방인으로서의 문화를 잘 융합해 과학적 업적을 냈다는 것이다. 또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상호 교차하는 경계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창의적 업적을 많이 냈다. 세계적인 경계도시로 암스테르담, 홍콩, 런던 등이 꼽힌다.
누구나 과학적창의력 기를 수 있다
이상의 예를 살펴보면 서양에서 창조적 지식혁명은 17세기와 19세기 말에 각각 있었다. 17세기에는 파스칼, 데카르트, 라이프니찌, 뉴우튼, 스피노자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19세 말 인물로는 프레게, 부울, 아이슈타인, 비트겐슈타인 알란 터링 등이 이끌었다. 이들 인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과학자이지 철학자들이다. 즉 과학과 철학이 가까웠을 때 서양에서는 창조적인 지식이 왕성하게 피어났다.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이지만 그의 전공은 ‘항공모함’분야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이슈타인도 사실 칸트철학에 심취해 있던 인물이다. 철학자 ‘알란 터링’은 전자계산기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컴퓨터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까지의 과학자들이 해 왔던 결합적(또는 잡종적) 사고를 키우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우선 기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한번 묶어보는 것도 괜찮은 시도다. 야간경기는 193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실시됐는데 이는 어느 한 사람이 야구란 것과 불빛이라는 것을 묶어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결합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하나를 생각할 때 다른 각도에서도 그것을 보아야 한다. 가령 어느 것에 대해 절망을 생각했으면 희망적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본다. 또 어느 둘 사이 개념의 중간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인간과 기계의 중간인 사이보그가 여기에 속한다. 또 A또는 B가 아니라 A, B 모두란 관점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밖에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도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고 늘 동적으로 생각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정리=서현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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