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유럽 남방 천문대(ESO)의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불과 1000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블랙홀의 발견 소식을 전해왔다. 심지어 발견한 블랙홀이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별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루벤 가톨릭대의 한 대학원생은 해당 블랙홀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ESO 연구팀은 두 별이 서로 중력 작용을 하며 운동하는 ‘쌍성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쌍성계로 알려진 ‘HR 6819’의 관측자료를 통해 두 별의 움직임을 분석함으로써, 쌍성계의 한복판에 블랙홀이 있어야만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라 확신했다. 이에 루벤 가톨릭대 연구팀은 블랙홀 없이 두 개의 별만 존재해도 관측자료와 같은 움직임이 가능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어떻게 같은 자료를 통해 블랙홀의 존재유무 자체라는 큰 차이가 나는 분석이 나왔던 것일까? 2년 남짓의 시간이 지난 2022년 3월 2일, 두 연구팀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저널을 통해 함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ESO 연구팀은 어떻게 블랙홀을 ‘찾았나’?
ESO 연구팀은 쌍성계 HR 6819의 안쪽 별이 40일이라는 매우 짧은 주기로 공전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심의 질량이 클수록 빠르게 공전한다는 원리를 생각한다면, HR 6819에서 40일이라는 짧은 공전 주기는 쌍성계의 중심에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태양보다 최소 4배 이상은 무거운 천체’가 존재해야 가능했다. 이러한 천체는 블랙홀밖에 없기에 연구팀은 HR 6819가 블랙홀이라는 천체와 안쪽 별이 서로 공전을 하고, 바깥쪽 별이 그 둘을 크게 도는 ‘삼중성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큰 중력을 가진 천체이기에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큰 힘을 갖고 있기에 주위 다른 천체들에게 작용하는 흔적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유추해낼 수 있다. 주로 X-선 관측을 통해 많이 발견되며 정말 스케일이 큰 경우에는 중력파까지 검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팀이 발표한 바와 같이 블랙홀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축의 블랙홀, 항성질량 블랙홀의 발견은 매우 까다롭다. 블랙홀의 영향을 받는 주위 별들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유추해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에 이 결과가 발견이 어려운 항성질량 블랙홀 탐색에 지표가 되어줄 것이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블랙홀이 아닌 뱀파이어 별? 대학원생의 이의제기
천문학자는 천체에서 나오는 빛 신호를 해석하여 별과 은하, 때로는 우주 단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유추한다. ESO 연구팀은 그들이 얻은 관측결과, 빛 신호는 블랙홀의 존재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석했으나, 벨기에의 루벤 가톨릭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줄리아 보덴스타이너는 같은 관측 결과로부터 블랙홀이 아닌 ‘뱀파이어 별’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보덴스타이너의 주장에 의하면 HR 6819는 블랙홀이 없는 ‘뱀파이어 쌍성계’다. 한 별이 다른 한쪽 별의 물질을 빨아들이는 것을 뱀파이어에 비유한 것인데, 쌍성계에서도 흔한 일은 아닐뿐더러 쌍성계의 진화 단계 중에서도 짧기 때문에 포착이 쉽지 않은 현상이다. 설명에 따르면, 안쪽 별이 바깥쪽 별에 물질을 빼앗기기 시작하고 거의 곧바로 두 별이 중력 운동을 함께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쪽 별이 바깥쪽 별에게 질량을 빼앗겨 예측보다 더 가볍다면, 그리고 두 별이 보이는 운동이 두 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40일이라는 빠른 공전이 블랙홀 없이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SO 연구팀의 블랙홀 발견을 주도했던 토마스 리비니우스 연구원은 보덴스타이너의 가설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를 회고하며 “블랙홀이 없는 가설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진땀을 흘렸다”며 솔직한 감상을 밝혔다.

블랙홀이 없는 뱀파이어별이라는 가설이 맞으려면 두 별의 거리가 서로 상호작용을 할 만큼 충분히 가까워야 할 뿐만 아니라 바깥쪽 별의 신호에도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관찰되어야 한다. 보덴스타이너의 새로운 가설 제시 이후에도, 바깥쪽 별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며 블랙홀의 존재를 지지하는 관측결과가 발표되는 등 여러 의견이 엇갈리면서, 블랙홀의 진실을 찾아가는 막이 열렸다.
의견이 다를지라도, 함께 찾아낸 진실은?
블랙홀이 있느냐 없느냐의 쟁점은 두 별의 거리에 있다. 블랙홀이 별들의 운동의 원동력이고 바깥쪽 별과 안쪽 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느냐, 아니면 블랙홀 없이 두 별이 서로 가까이 붙어서 돌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는 서울의 두 탁구공이 몇 cm 정도 떨어져 있느냐를 파리에서 재는 것과도 같은 정밀도를 요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단일 망원경으로는 그 정도의 관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여러 망원경을 연결하는 기술인 ‘간섭계’의 힘을 빌리게 되었다. 더 정밀한 관측자료를 얻기 위해 두 연구팀은 힘을 합해 초거대망원경(VLT)와 초거대망원경 간섭계(VLTI)를 통한 새 관측자료를 공동요청했다. 두 별의 신호가 서로 뒤섞일 수밖에 없기에 분석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동연구팀은 결국 신호를 해석하는 것과 진실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위 그림의 좌측에서,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이 맞다면 검은 원 위에 바깥쪽 별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관측자료는 두 별 모두 원의 가운데에 뭉쳐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또한 위 그림의 우측 결과를 통해 두 별을 한 화면에 포착하고 거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불과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1/3가량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앞서 했던 비유를 다시 들어보자면, 파리에서 봤을 때 서울의 두 탁구공이 4cm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과 같다. 그렇게 두 연구팀은 ‘블랙홀이 아닌, 뱀파이어 별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공동발표했다.
과학적 진보는 협력을 통해서
공동발표 연구의 주저자인 아비게일 프로스트 연구원은 “어느 쪽이든 멋진 것을 발견하게 되는, 정말로 윈-윈인 상황이었다”며 소감을 표했다. 가장 가까운 항성질량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거나, 무거운 별의 진화단계 포착은 정말 흥미로운 동시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배우게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이다.
또한 프로스트 연구원은 ‘뱀파이어 별’이라는 결과에 대해 “이런 별의 상호작용 단계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만 일어나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그렇기에 이 연구결과가 더욱 흥미롭다”고 말했다. HR 6819에 대해서도 “뱀파이어 별이 무거운 별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초신성 폭발과 중력파 발산 등의 격렬한 천체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에 완벽한 후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ESO 연구팀의 리비니우스 또한 “개인적으로는 내 해석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솔직히는 뱀파이어 별 해석이 훨씬 흥미롭다”며 소감을 밝혔다. 처음 이의를 제기했던 학생인 보덴스타이너도 “누가 옳고 그른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감을 말했다.
연구팀은 연구의 ‘개방성’과 ‘책무성’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보장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프로스트 연구원은 과학적인 결과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연구 데이터를 제공하여 누구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분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존 가설이 올바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치 블랙홀 발견을 발표했던 ESO 연구팀이 자료를 개방한 덕에 보덴스타이너가 새롭게 해석을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프로스트는 “과학은 끊임없이 재검토된다”며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단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리비니우스와 그의 팀은 사용 가능한 데이터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연구를 포함해 더 많은 데이터가 기반이 되었기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김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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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03-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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