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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20-12-02

‘벌거숭이 블랙홀’이 우주에 존재할까? 사건의 지평선 없는 블랙홀, 관측 가능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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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력을 지닌 천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아는 모든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둘러싸여 있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그 너머의 관찰자와 상호작용할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면이다.

즉, 블랙홀의 중심으로부터 어느 특정 거리 이상에서는 블랙홀에 가까이 갔더라도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반면, 특정 경계면을 넘어서면 빛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계면이 바로 사건의 지평선이다.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력을 지닌 천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만약 사건의 지평선 없이 벌거벗겨져 있는 블랙홀이 있다면 어떨까? 그 블랙홀은 우주의 그 무엇보다 위험한 지역이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아는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안전하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비록 극한적이며 알려지지 않는 물리학의 장소일지라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머지 우주로부터 멀리 격리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벌거숭이 블랙홀의 경우 접근할 수 있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의 물리 법칙마저 무너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블랙홀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이후부터 사건의 지평선 없는 블랙홀의 존재가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블랙홀을 형성하는 단 하나의 방법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연료가 바닥난 거대한 별이 스스로 붕괴하는 경우로서, 그렇게 되면 블랙홀은 자연스럽게 사건의 지평선을 지니게 된다.

극단적 조건에서 벌거숭이 블랙홀 형성 가능

벌거벗은 블랙홀의 존재는 물리학자들에게 너무 골치 아픈 일이었기에 우주가 아마 그들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해 왔다. 하지만 극단적인 조건이 주어질 경우 벌거벗은 블랙홀이 형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회전하는 블랙홀이 있을 경우 그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 안에 자리 잡은 두 번째 사건의 지평선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블랙홀이 빨리 회전할수록 사건의 지평선들은 서로 가까워져서 결국 벌거벗은 알몸의 블랙홀이 된다는 것.

지금까지는 사건의 지평선이 사라질 만큼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이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블랙홀의 특징을 지닌 천체가 일반 블랙홀인지 아니면 벌거숭이 블랙홀인지를 판단할 방법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벌거숭이 블랙홀이 우주에 있다면 그것을 둘러싼 빛의 고리를 관측함으로써 발견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쇼코우페 파라지(Shokoufe Faraji)라는 이론물리학자가 출판전 논문을 저장하는 웹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올린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과학 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에 의하면, 이 논문에서 벌거숭이 블랙홀을 둘러싼 빛의 고리란 바로 강착원반(accretion disk)을 말한다. 이 고리는 블랙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가스나 먼지 같은 물질이 블랙홀에 떨어지면 빨려 들어가기 전에 원반을 형성한 채 빠르게 맴돌게 된다. 이것을 강착원반이라고 하는데, 이 원반은 매우 밝아서 블랙홀의 존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 사실 일반 블랙홀도 사건의 지평선 가장자리에 형성된 강착원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강착원반 통해 벌거숭이 블랙홀 발견 가능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벌거숭이 블랙홀이 강착원반과 고립된 채로 존재한다고 가정해 왔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서 쇼코우페 파라지는 복잡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즉, 벌거숭이 블랙홀은 강착원반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강착원반은 자체적으로 고유의 중력이 있으며, 블랙홀의 중앙에 있는 조밀한 물체를 비틀어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은 물체 주변의 중력 환경에 차례로 영향을 미쳐 안쪽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질의 경로를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이 촬영해 2019년에 인류 최초로 공개된 초대질량 블랙홀의 모습. ©EHT Collaboration

쇼코우페 파라지는 벌거숭이 블랙홀이 일반 블랙홀과 약간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벌거숭이 블랙홀 주변의 강착원반은 블랙홀 주변보다 훨씬 더 밝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재의 망원경들은 이 같은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민감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현재로서는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의 업데이트된 버전이 그 같은 임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TH)은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 전 세계 6개 대륙 8개의 대형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이다.

이 이론물리학자의 주장처럼 우주에서 실제로 벌거숭이 블랙홀을 발견한다면 기존의 지식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물리학에서 중요한 발견이 될 전망이다. 벌거숭이 블랙홀 주변의 환경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면 우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미스터리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0-12-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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