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분야에는 ‘군집생태학(community ecology)’이라는 학문이 있다. 다양한 생물집단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가며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군집생태학의 대표적 관계 방식으로는 경쟁(competition)과 공생(mutualism)이 꼽힌다. 먹이를 놓고 집단 또는 개체 간에 서로를 위협하는 관계가 경쟁인 반면에, 서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상호 영향을 미치는 관계는 공생이다.
이처럼 경쟁과 공생은 상반된 개념이지만, 생물집단 중에는 이런 상반된 개념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개체가 있다. 바로 개미다. 상반된 개념을 실생활에 마음대로 활용한다는 것은 인간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한낱 미물이라 할 수 있는 개미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미가 ‘전략의 귀재’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개체는 가차 없이 제거하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개체라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링크)
경쟁과 공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개미
공생하는 개체에 대한 개미의 거래 전략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과 비슷하다. 상대방에게 조금 주고 그 대가로 자신은 몇 곱절이나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 속담은 주로 자신이 피해를 입을 때 많이 사용하지만, 개미의 경우는 그 반대다.
브라질의 상파울로연방대 생물학과 교수인 ‘로라 캐롤리나 레알(Laura Carolina Leal)’ 박사와 연구진은 오래전부터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 서식하는 ‘터네라 수불라타(Turnera subulata)’라는 식물과 개미의 공생 관계에 대해 연구해 왔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터네라수불라타는 시계꽃과의 쌍떡잎식물로 분류된다. 모양새는 무궁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탄수화물이 풍부한 수액을 분비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수액을 분비하는 이유에 대해 레알 박사는 “터네라수불라타는 자신의 잎을 먹어치우는 곤충과 절지동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개미를 일종의 보디가드로 삼는 것 같다”라고 가정하며 “개미가 좋아하는 수액을 분비하여 주변으로 모이게 함으로써 곤충이나 절지동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터네라수불라타의 주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정도의 먹이로는 개미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미의 입장에서 보면 터네라수불라타에서 나오는 수액도 좋은 먹이이지만, 이 꽃을 먹기 위해 접근하는 곤충이나 절지동물이 자신들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제로 터네라수불라타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개미들이 수액 만을 먹기 위해 모여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꽃을 먹기 위해 접근하는 곤충이나 절지동물을 먹이로 삼기 위해 모인 것인지를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우선 두 개의 공간에 터네라수불라타를 심고 한 쪽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곤충과 절지동물의 개체 수를 대량으로 늘렸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개체 수를 대폭 줄인 후 개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사냥감이 부족한 곳의 개미들이 적극적으로 터네라수불라타 주위에 몰려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터네라수불라타에서 나오는 수액이 부족해도 이 꽃을 먹기 위해 오는 곤충이나 절지동물을 노리고 더 적극적으로 식물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레알 박사는 “결국 개미의 목적은 수액 외에도 터네라수불라타을 먹으러 오는 곤충과 절지동물들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하며 “터네라수불라타와 공생이라고 하지만 개미는 이 꽃을 통해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안식처를 얻는 대신 식물에게 면역물질 제공
개미와 공생 관계에 있는 식물은 터네라수불라타 말고도 또 있다. 바로 파푸아뉴기니의 ‘사랑 스뭇(Sarang Semut)’이라는 식물로서, 우리말로는 ‘개미 알집’ 혹은 ‘개미집 나무’라 부른다.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사랑스뭇은 벌통을 닮은 독특한 모양과 암의 진행까지 지연시키는 강력한 항암성분으로 유명하다. 벌통은 사랑스뭇의 줄기 부분으로서,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벌통 모양을 띄고 있다. 이 식물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잔 가시들로 덮여 있다.
벌통같이 생긴 줄기의 크기와 모양은 공생하는 개미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줄기 내부는 스펀지나 거품처럼 다공성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개미들은 바로 이 구멍이 집으로서, 그 안에서 알을 낳고 새끼들을 번식시킨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는 다공성 구조는 사랑스뭇이 개미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라 할 수 있는데, 구멍들을 보면서 단순히 주거공간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랑스뭇은 개미들을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는 난공불락의 요새 역할을 수행한다. 줄기 내부는 미로로 이루어져 있어서 외부 침입자가 발길을 잘못 들였다가는 오히려 개미들의 밥이 되기 쉽다.
또한 사랑스믓은 외부의 기온 변화에 따라 내부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개미알이 부화하고 번식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미가 사랑스믓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천연의 면역물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미 개미들은 침샘에서 면역증강물질을 계속해서 분비하는데, 이는 번식 중인 개미알과 개미 새끼들을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면역증강물질은 개미 군집에서 돌고 돌아 결국 최종적으로 자신들이 거주하는 사랑스믓의 줄기에 스며들게 된다. 즉 사랑스뭇은 개미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반면, 개미는 사랑스믓이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각종 면역물질을 선물로 주는 것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9-08-02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