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수명과 건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임신하고 태아를 품었다가 출산해서 낳아 기르는 기다란 여정이다. 진화생물학자는 이런 과정을 매우 건조한 단어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식이다. 로맨틱한 모든 동기를 생략하고, 생명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가치지향적인 의미를 ‘생식’이라는 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이 여성의 임신과 출산 및 양육을 무슨 생물학 실험대상 처럼 보고 쓴 것은 아니다. 한국어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아서 그렇지 원래 제목은 The Fragile Wisdom, ‘연약한 지혜’이다.
여성의 건강을 다루면서 ‘지혜’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다분히 1932년 하버드 대학 생리학자 월터 B 캐논의 명저 ‘인체의 지혜’(The Wisdom of the Body)를 의식한 제목이다. 저자 그라지나 자시엔스키(Grazyna Jasienska)는 ‘연약한 지혜’라는 책이 나오면서 인체의 기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아이를 낳으면 수명이 줄어들까?
그렇지만,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을 풀어놓은 이 책을 보면, 사람의 몸에 대해서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내용조차 얼마나 부분적으로 모순 덩어리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이 자녀를 낳는 것이 건강과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내용이다. ‘진화생물학’과 ‘생물인류학’이라는 낯선 전문분야의 시선으로 보려니, 건강과 수명을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의 ‘생식’을 ‘에너지’와 ‘비용’, ‘거래’라는 잣대로 분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문장은 ‘생식에는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하다’라는 ‘생식 비용’이다. 에너지와 영양이 생식활동에 쓰일 때 다른 기능이나 목적에 분배되는 양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생활사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들은 많은 자녀를 낳으면 다른 일을 할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 미묘한 상황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거래’를 한다. 선택이라는 말 대신 ‘거래’라는 단어를 쓴 것은 아마도 여성의 ‘생식’과 ‘생활사’의 입장에서 분석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거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연구주제는 ‘생식 비용’과 ‘수명’사이에 일어나는 거래이다. 쉽게 말해 자녀를 많이 낳으면 수명이 줄어드느냐는 것이다.
이 거래의 기본 전제 역시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확실하지 않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속설 중 하나는 ‘건강하지 않은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건강해진다’이다. 이런 속설이 외국에도 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사례가 여럿 인용되어 있다.
1886~2002년 폴란드의 작은 농촌 4곳의 출생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하면, 남자든 여자든 자녀 1명당 평균 95주 그러니까 거의 2년씩 어머니 수명을 단축하게 했다. 가난한 농촌의 어머니는 자녀를 낳아도 충분히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농촌일에 투입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이 가장 낮은 여성은 자녀를 2명 둔 경우였다. 자녀가 없거나 2명 이상이면 사망률이 높았다.
저자는 반대 경우도 수록해 놓았다.
미국 아미시파 여성들은 평균 7.2명을 낳았다. 이 중 출산아이의 수가 수명에 현저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경우는 자녀수가 14명 이상인 경우였다. 14명 미만은 오히려 산모의 수명이 늘어났다. 마지막 자녀를 출산한 연령이 수명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막내 아이의 연령이 한 살 더 많을때 마다 어머니의 수명은 평균 0.29살 늘었다.
저자는 ‘에너지’와 ‘비용’으로 생식을 설명하려 했지만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성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에는 늘 쉬운 답이 있다. 깔끔하고 그럴듯한 틀린 답이다’는 헨리 루이스 멩켄의 충고이다.
이 충고는 지금 세계의 과학, 건강, 의료계를 휩쓰는 유전자 연구에도 적용된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유전자를 분석하고 배열하면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져서 질병의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쉬운 답’에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질병의 유전적 배경이 매우 복잡하고,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며, 유전자가 발현하는 메커니즘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질병의 결정적인 원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의 1차적인 원인으로 유전자를 거론한다. 그렇지만 유방암 환자의 5~10%만이 유전자형 유방암이다. 대표적인 것이 BRCA1, BRCA2 유전자이다. BRCA1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의 발병 가능성은 7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51~95%, BRCA2는 33~95%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이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시대에 따라 변했다는 점이다. 1940년 이전에 출생한 여성 중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50세까지 살았을 때 유방암 발병률은 24%였다.
똑같은 돌연변이를 가졌으면서도 1940년 이후에 태어난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은 67%까지 높아졌다. 생활습관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1940년 이전엔 모유 수유와 청년기의 왕성한 신체활동이 유방암 발병률을 낮췄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는 질병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아니다. 비만 유전자가 있다고 모두 다 비만에 빠지는 것이 아니고,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 비만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생활방식을 바꾸는 등 구식의 예방책들이 여전히 가장 유리한 선택사항’이라고 권고한다. 이 책에는 유방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가장 좋은 예방법으로 저자는 ‘운동과 체중 감량이 호르몬 유인성 암과 심장 혈관계 질병의 발병률을 낮춰준다’고 조언한다.
‘생식’과 ‘거래’와 ‘에너지’로 표현했어도 이 책은 여성의 건강을 임신과 출생이라는 ‘사건’의 처절한 현상을 매우 진정성 있게 과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고귀한 가치와 희생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 심재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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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4-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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