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충청북도 청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아들이 치매에 걸린 70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들이 오랜 시간동안 혼자서 치매에 걸린 노모를 극진하게 보살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에 대해 지역 보건소의 관계자는 “치매 모자 사망 사건과 같이 상당수의 치매 환자들이 아직도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하며 “치매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이라고 덧붙였다.
뇌의 특정 부위 자극하여 기억력 향상시켜
치매에 걸린 환자는 인지 기능과 기억력이 손상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일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방금 전에 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경험한 일들을 기억해야 하는 뇌의 일부분이 그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이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인지 기능 및 기억력을 향상시키려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억력 향상 연구는 웨이크포레스트침례(WFB) 메디컬센터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소속의 공동 연구진이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발간된 학술지에 전기 자극을 통해서 노인 환자의 기억력을 35% 내외로 회복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 뇌에 이식하는 형태의 기억력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지원 이유는 날이 갈수록 노인들의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있고, 심한 경우 치매로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연구진은 개발 중인 기억력 보조기기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실험 대상자들을 모집했다. 모집된 실험 대상은 간질과 같은 뇌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로서 치료를 위해 이미 여러 곳에 전극을 이식받은 환자들이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WFB 메디컬센터의 ‘로버트 햄슨(Robert Hampson)’ 박사는 “실험 대상자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기억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뇌 자극 장치가 이식 되었다”라고 밝히며 “장치 이식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기억 코드를 찾는 것이었다”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연구진은 우선 화면에 간단한 도형을 5초 정도 보여준 다음, 이를 삭제했다. 그리고 다음 화면에서는 여러 개의 도형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그 중에서 방금 봤던 도형을 고르도록 했다. 이어서 환자가 정답을 찾았을 때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뇌의 해마에서 어떤 형태의 전기신호가 발생하는지를 파악했다.
전기 신호에 대해 묻는 질문과 관련하여 햄슨 박사는 “무선통신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신호 감도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다중안테나입출력(MIMO)’ 기술을 활용했다”라고 소개하며 “이 기술을 통해 뇌의 신경세포들 사이에 오가는 전기신호를 잡아낸 다음 이를 그대로 복제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복제한 전기신호 관련 코드를 해마에 입력하자 실험 대상자들의 도형에 대한 기억력이 37%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런 결과가 비단 도형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형보다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사진을 보여준 뒤, 1시간이 지난 후 테스트해 본 기억력 실험에서도 도형과 비슷한 35%의 기억력 향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햄슨 교수는 “뇌신경세포의 기억 코드를 파악하여 이를 뇌에 입력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며 “이번 실험을 통해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도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고강도두뇌자극 기술로 치매 증상 완화
WFB 메디컬센터와 USC의 공동 연구진과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미 오하이오주립대의 연구진이다. 이들은 팀은 ‘고강도두뇌자극(DBS, Deep Brain Stimulation)’ 기술을 이용해서 치매 증상을 완화시키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연구단계는 병의 진행을 늦추는 임상 시험 과정이다. DBS 기술은 뇌의 안쪽에 있는 전두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심장박동기(pacemaker)를 뇌에 설치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DBS는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기술이다. 파킨슨병과 강박 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FDA 승인이 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치매를 포함하여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 치료에 대해서도 현재 임상 시험이 진행 중에 있다.
특히 1년 6개월 전부터 추진되어 온 치매 관련 임상 시험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DBS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로서 모두 3명의 환자에게 적용되었다. 테스트 결과는 DBS가 치매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막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대상자 수가 너무 적어서 판단이 유보된 상황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오하이오주립대의 관계자는 “통계적인 유의성 확보를 위해서는 훨씬 많은 대상자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임상 시험은 유의성 보다는 안전성에 더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많은 대상자를 확보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히며 “일단 DBS가 다른 뇌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매에 대해서도 안전성이 확인되면, 그 다음은 더 많은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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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4-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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