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탐사에 있어 첨단 디지털 기술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복잡한 수치를 계산해 주는 수퍼컴퓨터부터 시작하여 탐사 시 필요한 각종 분석 장비나 지구와의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반도체칩 등 디지털 기술이 없는 우주 탐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같은 디지털 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때가 있다. 아무리 튼튼한 시스템이라도 견딜 수 없는 가혹한 환경을 만날 때다. 예를 들면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의 경우가 그렇다.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별이어서 비너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표면온도가 섭씨 500도에 달하는 불지옥이 금성의 참 모습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 구소련과 미국이 보냈던 금성 탐사선들은 착륙하자마자 바로 연락이 끊기거나 혹은 수 시간 사이에 녹아버리며 삶을 마감했다. 화성처럼 로버(rover)를 보내 구석구석을 탐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환경이 바로 금성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은 탐사 로봇의 경우 기존의 디지털 시스템으로는 금성과 같은 고온의 환경에서 장시간 견디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나 전선 같은 부품들로 인해 섭씨 500도 가까운 온도에서는 기껐해야 1~2시간을 버티는 것이 현재의 기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진들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버리는 용단을 내렸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부품을 태엽과 스프링 같은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작동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때로는 디지털 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적합할 때 있어
NASA가 아날로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는 화성처럼 금성에도 탐사 로봇인 로버를 보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로버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조나단 사우더(Jonathan Sauder) 박사와 연구진은 첨단 기술을 제외하고 오로지 기계적으로만 움직이는 로버 개발에 착수했다.
아리(AREE)라는 이름의 이 로버는 통신이나 촬영과 같이 아날로그 시스템이 대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영역 외에 센서 작동이나 동력의 생산 및 저장 등 동체를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부분은 모두 기계적인 메카니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우더 박사는 “통신 시스템의 경우 높은 고열에도 견딜 수 있는 탄화규소나 갈륨시스템으로 개발하고 있다”라고 설명하며 “지금까지 우주 탐사와 관련해서는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아날로그 기술은 생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기계적 메카니즘을 활용한 컴퓨팅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기계적 메카니즘을 활용한 컴퓨팅의 역사는 기원전인 BC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만든 ‘안티키테라 메커니즘(Antikythera Mechanism)’은 30여개의 청동 기어로 이뤄져 있으며 손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 컴퓨터로 추정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이용하여 4년마다 윤년을 계산하는 달력을 만들었고, 일식과 월식까지 예측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수성이나 금성과 같은 행성의 운동과 달이 지구 둘레를 타원궤도로 돌면서 생기는 변칙적인 움직임까지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17세기와 19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파스칼이나 라이프니츠 같은 과학자들도 다양한 수학식 계산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적인 컴퓨터를 개발하여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성을 누빌 로버의 에너지는 바람과 시계 태엽
금성을 누빌 로버인 알리의 에너지는 바람과 시계 태엽이다. 금성의 매섭게 부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시계 테엽과 비슷한 장치에 에너지를 기계적으로 저장한 후 로버를 이동시킨다는 것이 연구진의 계획이다.
개발 초기에는 4개나 6개의 다리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방법을 고려했으나 시계 태엽 방식에는 탱크 처럼 체인으로 움직이는 형태가 더 적합한 것으로 드러나 현재는 무한궤도 개념의 체인을 로버의 발로 여기고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사우더 박사는 “이 탱크형 로버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풍차가 장착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풍차가 돌면 태엽이 감기면서 로버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구상에 대해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기발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금성과 같은 가혹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에서 최적화된 방식의 로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금성이라도 항상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작 이동이 필요한데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통신이나 촬영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는 별도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동력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 금성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디지털 시스템의 변신도 눈여겨볼 만 하다. 반도체 같은 경우는 고온에 가장 취약한 부품 중 하나지만, 미 국립과학재단 기금의 지원을 받아 최근 개발된 ‘오자크 집적 회로(Ozark Integrated Circuits)’ 같은 경우는 놀랍게도 섭씨 350도의 고온에도 견딜 수 있다.
또한 온도 차를 이용하여 동력을 발생시키는 스털링(Stirling) 엔진의 경우도 방사성 붕괴로 인해 섭씨 1200도까지 가열된 플루토늄 연료와 주변의 상대적으로 낮은 기온을 이용한 방식이기 때문에 금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엔진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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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8-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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