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겨울철을 앞두고 새 인플루엔자 백신을 고안한다고 하자. 이 때 얼마나 다양한 계통의 감기 바이러스들이 새로 진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지도가 있다면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종류의 지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적응 지형도(fitness landscape)라 불리는 개념 도구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의 목표다. 이 적응 지형도는 진화를 시각화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적응 지형도에 대한 개념은 1930년대에 인구유전학자인 시월 라이트(Sewall Wright)에 의해 제안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상세한 지형도를 만드는 것은 큰 도전으로, 여태까지 만들어진 지형도들은 어설펐다.

“적응 지형도 평가를 향한 큰 걸음”
최근 미시간대(Univ. of Michigan) 연구진은 이전의 것보다 100배나 큰 최초의 생체 내 종합 유전자 적응 지형도를 만들어냈다고 보고했다. 미시간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인 지안지 조지 장(Jianzhi "George" Zhang) 교수는 이번 성과가 진화생물학자와 유전학자 그리고 미생물학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빵 효모의 단일 유전자를 조작해 얻어진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14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장 교수는 “적응 지형도 개념은 매우 중요하고 많은 진화이론의 바탕을 이루지만 지금까지는 이것을 쉽게 평가할 수가 없었다”며,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지만 이번 연구는 적응 지형도 평가를 향한 큰 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적응 지형도는 유기체의 유전자 특성과 자손을 생산하는 능력 사이의 관계- 과학자들은 이를 적응도(fitness)라 부른다- 를 시각화한 일종의 3차원 지도로 볼 수 있다. 이때 번식률은 실제로 유일한 계량치로서 진화적 성공의 궁극적인 척도가 된다.
적응 지형도 통해 특정 유전자형의 번식 성공률 확인
다윈주의의 적응도는 유기체의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유기체의 유전적 특성이나 유전자형은 같은 종 안의 개별 존재 간 생존경쟁에서 도움이 되거나 혹은 해가 될 수 있다.
적응 지형도는 유전자형과 번식 성공 사이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지형도 연구를 이론적 추구에서 실험 과학으로 옮겨가면 여러 장애요인들이 나타난다. 먼저 유전자형이 차지하는 영역이 광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순한 유기체라 하더라도 유전적으로는 드넓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유전체는 DNA 염기의 첫 글자인 A, T, G, C의 조합에서 나온 약 30억개에 달하는 글자들의 서열로 이루어져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의 각 자리마다 네 글자가 위치해 있고, 완성된 인간 유전자형에는 수십, 수백, 수천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교수팀은 이 같은 문제를 좀더 쉽게 풀어내기 위해 빵 효모의 작은 유전자에 주목했다. 빵 효모는 단세포 유기체로 약 6000개의 유전자를 지닌다. 과학자들은 통상 유전학과 세포생물학 실험을 위해 효모를 활용하고 있다.

진핵생물 최초의 생체 내 종합 적응 지형도
연구팀은 아미노산으로부터 단백질을 모아들이는 분자 기구의 하나인 RNA 혹은 tRNA를 전송하도록 지시하는 유전자 하나를 가려냈다. 이 유전자는 뉴클레오티드 염기로 알려진 72개의 문자를 포함했다.
이 tRNA 유전자의 적응 지형도를 작성하기 위해 연구팀은 유전자 염기서열에 있는 72개의 글자에서 가능한 모든 A T C G 조합과 연관된 번식 성공률을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구축된 6만5000개 이상의 효모 계통은 각각 염기서열에서 한 개나 혹은 그 이상의 잘못된 글자를 가진 독특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어 6만5000개 이상의 효모 계통들을 함께 시험관에 넣고 하루 동안 무성생식을 통해 세포분열을 하도록 했다. 효모 세포끼리 24시간의 생존경쟁을 거친 뒤에 '다윈주의 적응도'의 척도인 각 계통별 성장률이 결정됐다.
장 교수에 따르면 그 결과가 바로 tRNA의 적응 지형도로, 진핵생물에서는 최초의 종합적인 생체 내 적응 지형도다.
이번 실험방법 다른 유전자에도 적용 가능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1% 정도의 점 변이(point mutations)는 유기체에 유익한 반면 42%의 점 변이는 해롭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개의 해로운 변이가 상호작용을 하면 그 결과는 두 개의 변이가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할 때보다 유기체에 통상 더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적응도'는 올바로 접혀진 tRNA 분자의 예견된 부분과 광범위하게 상호연관이 있으며, 이것은 적응 지형도의 생물물리학적 기초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 교수는 “적응 지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실험적 방법은 단백질을 부호화하는 유전자를 포함해 다른 유전자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논문은 즉각적이고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6-04-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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