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5,2018

진화는 과연 우연일까, 예측 가능할까?

진화의 재연성과 우연성에 대한 연구증거 면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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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까?

그 답에 대해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왔다. 논란의 요점은 진화의 역사가 과연 진화의 재현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9일자에 실린 리뷰에서는 진화의 예측 가능성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전례 없이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이 리뷰에서 미국 케년 컬리지와 미시간 주립대(MSU),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연구팀은 진화에서의 우연성이란 개념을 샅샅이 훑어보기 위해, 진화의 재현성과 우연성에 대한 수많은 경험적 연구 증거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만약 지구 역사가 재현된다고 할 때 호모사피엔스는 똑 같은 진화 과정을 밟을까? 유인원이 인류와 공통 조상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그림.  Credit: TimVickers at English Wikipedia

만약 지구 역사가 재현된다고 할 때 호모사피엔스는 똑 같은 진화 과정을 밟을까? 유인원이 인류와 공통 조상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그림. Credit: TimVickers at English Wikipedia

진화는 반복 불가능?

진화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작고한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1989년에 발간한 저서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에서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며 반복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옹호했다.

그는 ‘테이프를 재생’해 역사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테이프를 수백만 번 재생하더라도 호모사피엔스 같은 인류종이 다시 진화해 나올 것이라는 데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원더풀 라이프’가 출간된 이래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굴드의 주장에 맞서 비록 작은 규모에서라도 굴드의 실험을 수행해 봤다.

이들은 이 실험들을 통해 돌연변이의 무작위성, 우연한 역사적 사건 그리고 자연선택에 의해 주어진 방향성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리뷰의 주 저자인 자카리 블런트(Zachary Blount) 미시간주립대 시니어 연구원 겸 케년 컬리지 생물학과 초빙 조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실제로 예측할 수 없다. 역사적 결과는 사소한 세부사항들로 엮어진 여러 연속적인 사건들에 달려있다. 예를 들면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의 행군명령서로 싼 담배갑을 북부 연방군이 발견함으로써 앤티텀 전투가 일어났고, 이것은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 담배갑이 떨어져 있지 않았거나 북군이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진화도 이와 유사하다. 수많은 우연이 포함된 길고도 독특한 사건의 사슬이 거대한 기간 동안 펼쳐진다. 역사와 달리 진화는 자연선택의 결정론적 힘을 가지고 있으나 결정론은 언제나 우연과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이 긴장은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의 세부사항을 이루는 우연성일까, 아니면 결정론일까?”

이번 연구를 요약한 지구상 생명 진화의 시간표. CREDIT: University of Bristol

지구상 생명 진화의 시간표. CREDIT: University of Bristol

진화의 재현 대답 쉽지 않아”

블런트 박사는 리처드 렌스키(Richard Lenski) MSU 미생물 생태학 석학교수, 조너선 로소스(Jonathan Losos) 워싱턴대 석학교수와 함께 이번 분석을 수행했다.

렌스키 교수는 “삶의 테이프를 재현한다는 아이디어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삶의 어떤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생물학자들은 지구 생명의 역사라는 거대한 규모에서 그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굴드가 생명의 테이프를 재생하는 비유를 소개한 이래 진화의 재현성 혹은 반복성을 특성화 해보려는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이번 리뷰가 보여주는 것은 그에 대한 대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즉, 어떤 때는 진화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해법을 만들어내는 반면, 또 어떤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진화 계통이 전혀 다른 경로를 택한다. 나는 이것이 진화의 매력이자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와 같이 예상되는 것과 예기치 못한 일들이 모두 만들어지며, 진화는 이것이 엄청나게 큰 규모로 이루어진다.”

굴드의 ‘테이프 재생’ 여전히 논란 불러

굴드의 사고 실험은 여전히 강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우연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을 포함해, 굴드가 그의 재생 비유를 서술한 방법에 도입한 모순 때문이다.

굴드는 종종 ‘우연(contingency)’의 두 가지 의미를 융합해서 사용했다. 즉, 어떤 것에 대한 의존(dependence on something else)이라는 의미와, 우연한 혹은 우발적 사건(a chance event)이란 의미다.

로소스 교수는 “굴드의 생각에는 여러 가지 다른 문헌들이 존재하고 이 문헌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생물 진화에 대한 연구가 있고, 수렴 진화에 대한 모든 연구가 있는 반면, 수렴 진화가 결여된 연구도 있다. 그리고 굴드가 ‘테이프 재생’을 말했을 때 의미한 것에 대한 철학적인 문헌도 있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굴드가 사용한 용어인 우연의 역할에 대해 얘기할 때 실제로 그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반문했다.

지구상의 생명 출현 시간표. Credit: Wikipedia

지구상의 생명 출현 시간표. Credit: Wikipedia

세 가지 유형의 진화 재현 실험

기존의 경험적 연구에 대한 이들의 리뷰는 주로 세 가지 유형의 ‘(진화) 반복 혹은 재현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 빠르게 진화하는 유기체에 대한 실험실 진화 실험과, 자연에서 수행된 실험 그리고 유사한 조건 아래에서 진화한 계통을 비교하는 자연적 실험이 그것이다.

이 실험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우연성과 결정론 두 가지 모두가 명백하게 나타나는 진화적 변화에 대한 복잡한 그림이 그려졌다.

세 연구자는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유기체 개체군이 분리돼 진화하는 병행 재현 실험과, 표본들이 병행 재현으로부터 고정돼 다른 시점에서 재생되고 재진화하는 분석 재현 실험을 포함해 서로 다른 수많은 실험실 유형들을 조사했다.

이 리뷰에는 렌스키 교수가 1988년에 수행한 ‘대장균(E-coli)에 대한 장기 진화 실험’(LTEE)도 포함시켰다.

LTEE는 7만세대 이상의 단일클론으로부터 수립된 12개 대장균 군체를 추적한 연구다. 각 군체의 표본은 500세대마다 동결돼 연구자들이 진화하는 박테리아를 그 조상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아놀리스 도마뱀 발에는 매끄러운 바닥에도 잘 달라붙을 수 있는 특화된 발톱 패드가 있다. 허리케인 내습 뒤에도 살아남은 도마뱀의 발톱 패드는 훨씬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환경에 맞도록 진화, 적응한 것이다.  Photo: Colin Donihue/ WU in St.Louis

아놀리스 도마뱀 발에는 매끄러운 바닥에도 잘 달라붙을 수 있는 특화된 발톱 패드가 있다. 허리케인 내습 뒤에도 살아남은 도마뱀의 발톱 패드는 훨씬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환경에 맞도록 진화, 적응한 것이다. Photo: Colin Donihue/ WU in St.Louis

진화 수렴은 어떤 때 일어나나’ 연구 필요

블런트와 렌스키 및 로소스 교수는 또 자연환경에서 진화를 재현해 보려는 실험도 조사했다.

이런 실험은 지금까지 몇 개 되지 않았으나 이 실험들을 조사한 결과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도 진화적 응답은 매우 높은 반복성을 나타냈다.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s)’ 비교 연구에 대한 연구팀의 리뷰는 진화의 예측가능성에 대한 증거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유사한 특성들은 많은 종들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카리브 아놀 도마뱀은 다리와 꼬리 길이 같은 특성을 개별적으로 진화시켜 특정 서식지에서의 삶을 용이하게 해준다.

그러나 진화에서의 수렴은 이번 리뷰에서 보여주듯 항상 일어나지는 않는다. 즉 다양한 특성이 분기하는 진화에서 우연이 강력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로소스 교수는 “우리가 명백하게 아는 것은 진화적 수렴 및 수렴 결여가 자연계에서는 수없이 일어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두 가지에 목록만을 계속 추가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묻고 싶어하는 것은 왜 수렴이 어떤 때는 일어나고 다른 때는 그렇지 않느냐는 점”이라며, “이제 이 질문으로 연구를 지향하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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