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마술사로 알려진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 바로 ‘별이 빛나는 밤’ 일 것이다. 아래 그림 우측에 보이는 것 역시 많이 알려진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두 그림은 정확히 언제 그려진 것일까? 그림 속 별들이 비밀의 열쇠이다. 두 그림은 모두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1889년에 그려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번 그림을 그린 날은 여름이었고, (2)번 그림을 그린 날은 9월이었다고 한다.
먼저 (1)번 그림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단 달의 모양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그믐달이다. 그믐달은 해뜨기 전 새벽의 동쪽 하늘에 보인다. 이제 주목할 대상은 왼쪽 나무 옆에 보이는 밝은 별이다. 새벽에 이렇게 밝게 보이는 별이 무엇일까?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그것이 샛별로 불리는 금성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천문 프로그램을 돌려보면 1889년 여름의 새벽에 그믐달과 금성이 저 정도 떨어져 있었던 날은 6월 23일, 7월 23일, 8월 22일 세 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월 23일에는 그믐달 바로 아래에 황소자리의 으뜸별인 1등성(알데바란)이 위치한다. 고흐가 그 정도 밝은 별을 빠트렸을 리는 없다. 8월 22일의 경우는 그믐달이 상당히 높게 위치한다. 따라서 결국 가장 가능성 높은 날은 6월 23일이고 시간은 새벽 3~4시이다. 일출이 5시 무렵이었기 때문에 아직 여명이 밝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간을 가늠한 것이다.
이번에는 두 번째 그림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그림이 익숙한 것은 바로 북두칠성이 정면에 보이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밤하늘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이다. 모든 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것을 별들의 일주운동이라고 한다. 24시간에 360도를 돌기 때문에 1시간에는 15도, 2시간에는 30도씩 돈다. 별들은 지구의 공전 때문에도 일 년에 한 바퀴씩 북극성을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것을 별들의 연주운동이라고 한다. 12달에 360도를 돌기 때문에 한 달에 30도씩 돈다.
밤하늘에서 북극성을 가리키는 별이 북두칠성의 국자 앞부분 두 별이다. 이 두 별이 바로 밤하늘의 시계 침이 된다. 자, 이제부터 북두칠성 시계를 익혀보자. 먼저 하늘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시계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자. 1에서 12까지 그려져 있는 시계에서 한 숫자 사이의 각도가 30도라는 것을 기억하자.
293! 899! 이것이 북두칠성 시계의 비밀을 푸는 암호이다. 293은 2월 1일 밤 9시에 북두칠성이 3시 방향의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일주운동으로 2시간에 30도씩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밤 11시가 되면 북두칠성은 2시 방향에 위치한다. 새벽 1시가 되면 1시 방향. 이런 식으로 2시간마다 시계 침이 반시계 방향으로 30도씩 움직인다. 이제 연주운동을 생각해보자. 한 달에 30도씩 움직이니까 3월 1일이 되면 밤 9시에 북두칠성은 2시 방향에 위치한다. 4월 1일이면 1시 방향, 5월 1일이면 12시 방향, 6월 1일이면 11시 방향, 7월 1일이면 10시 방향, 8월 1일이면 9시 방향이 된다. 899는 바로 8월 1일 밤 9시에 북두칠성이 9시 방향에 있다는 뜻이다.
자 (2)번 그림 속 북두칠성의 시계 침 위치를 확인해보자. 대략 6시 방향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899를 이용하여 8월 1일 밤 9시의 9시 방향부터 계산해보자. 시계 침이 899보다 90도 더 돌아가 있다. 8월 1일이라면 밤 9시보다 6시간 후인 새벽 3시경이 될 것이다. 9월 1일이라면 밤 9시보다 4시간 후인 새벽 1시경, 10월 1일이면 2시간 후인 밤 11시경이 된다.
따라서 (2)번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9월 1일 새벽 1시경이나 9월 15일 자정 무렵, 혹은 10월 1일 밤 11시 경에 그린 그림이 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대략 9월의 어느 날이었다면 자정 무렵의 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번 그림을 그린 시각이 6월 23일 새벽 3시~4시 경이라면 이때 북쪽 하늘의 모습은 어땠을까? 북두칠성 시계를 생각해보자. 8월 1일 밤 9시에 9시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에 한 달 전인 7월 1일 밤 9시면 10시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6시간 후인 7월 2일 새벽 3시면 북두칠성은 90도 돌아간 7시 방향을 가리킨다. 그런데 6월 23일이고 시간이 새벽 4시경이라면 북두칠성은 거의 6시 방향, 즉 (2)번 그림과 비슷한 위치가 된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서 (1)번 그림을 그릴 때 북쪽 하늘의 모습은 거의 (2)번 그림과 비슷했을 것이다.
- 이태형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7-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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