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를 엄밀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천체현상에 기초해서 계절, 날짜, 시간을 추산하는 것을 역(曆)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추산된 결과를 정리하여 묶어낸 것을 책력(冊曆)이라고 한다. 추산의 결과를 1년 단위로 나타낸 것은 연력, 한 달 단위로 나타낸 것은 달력, 하루 단위로 나타낸 것은 일력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책력은 계산결과를 묶은 책이라는 뜻이니 그것을 다시 역서(曆書)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역사서에는 책력이라는 말과 함께 역서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요즘은 달력이 너무나 흔해서 그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따져보지 않지만, 달력이 천체현상에 기초한 계산의 결과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달력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천체현상을 계산해놓은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관청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천문학자들이 천체현상을 계산하여 이 결과를 「역서」라는 이름의 책자로 매년 11월 중순에 발행한다. 그러면 달력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료에 따라서 날짜와 요일을 배치하고 예쁜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세련된 달력으로 인쇄한다.
보통의 달력에서는 양력날짜와 음력날짜, 요일, 공휴일 등 기본적인 것만 넣어서 인쇄하므로 자세한 천체현상의 정보가 필요 없지만, 천문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역서에는 태양과 달의 출몰시간, 천체들의 위치 등 정확한 천체운행의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흔한 달력 하나가 만들어지려면 엄청나게 정밀하고 방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기본이 되야 하는 것이니 달력은 빙산의 일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옛날이라고 이런 이치가 달랐을 리 없다. 조선시대, 고려시대, 혹은 그보다 먼 옛날에도 달력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방식은 오늘날과 유사했다. 일단 천문관서에서 내년에 일어날 천체현상을 총망라하여 계산한 방대하고도 정밀한 데이터를 모은다. 그런 다음 이 방대한 데이터에 기초해서 일상에서 사용할 달력을 만든다. 달별로 날짜를 매기고 각 날짜마다 규칙에 따라 생활의 지침을 배당했다. 날짜 아래 칸에 ‘이사하기 좋은 날’, ‘집수리하기 좋은 날’과 같은 문구들을 써 넣는 것이다. 날짜를 표시할 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달별로 한 장의 종이에 모으고 일년치를 모두 묶어 책으로 만들었으므로 이를 달력, 혹은 책력이라 불렀다.
옛날에는 천문관서에서 천체운행의 정밀한 계산은 물론 이 자료에 기초해서 일상에서 쓸 달력까지도 만들었다는 점이 현재의 천문연구원의 업무와 다른 것 중의 하나이다. 현재 천문연구원이 천체현상을 계산하는 방법은 현대천문학적인 원리에 따른 것이다. 뉴턴의 중력이론과 천체역학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더욱 정밀하게 발전한 현대적인 천체역학 이론에 따라 컴퓨터를 사용하여 계산을 해낸다.
마찬가지로 옛날의 천문관서에서도 천체현상을 계산할 기반이론과 방법이 있었다. 다만 현대의 천체역학 이론은 만국공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일상의 달력을 만드는 자료가 되는 천체현상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론을 보통 역법(曆法)이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달력을 만드는 방법’쯤 된다. 또한 이 기반이론을 바꾸는 것을 ‘역법을 고친다는 뜻’으로 ‘개력(改曆)’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부터 명나라에서 들여온 대통력법을 적용하여 달력을 만들다가 효종 때부터는 서양천문학이론이 가미된 시헌력법을 적용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여기서 대통력법과 시헌력법은 기반이론을 가리키므로 ‘효종 때 대통력법에서 시헌력법으로 개력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나라를 세우면 가장 정확한 달력을 백성들에게 반포해주는 것을 제왕의 임무로 여겨왔다. 국왕 자신이 하늘의 시간을 백성들에게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만큼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으니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왕조가 들어 설 때마다 국왕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개발해낸 이론을 적용하여 천체운행을 계산해야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개력할 것을 주장하여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 새로운 달력이 만들어지곤 했다. 심지어는 같은 왕조시대에도 새로운 이론을 자신이 개발했노라고 주장하여 새 역법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역법을 수입해 그 이론을 적용하여 국내에서 쓸 달력을 만들어왔다. 백제에서는 중국 남조의 송나라에서 만든 원가력법을, 신라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원가력법과 대연력법을, 발해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선명력법을, 고려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선명력법과 원나라에서 만든 수시력법을, 조선에서는 수시력과 명나라에서 만든 대통력법을,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만든 시헌력법을 수입해 달력을 만들었다.
삼국시대의 기록은 너무나 소략하고 역법이 사용된 연대도 분명치 않아 정말로 역법을 사용하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의 역법에 기초하여 국내에서 쓸 달력을 만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로 국초부터 선명력법을 사용하여 달력을 만들다가 원나라에서 수시력법으로 개력하자 이 역법을 배워 와서 사용했다. 또한 조선에서도 고려 때 배워온 수시력과 새로이 명나라에서 수입한 대통력법을 참고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세종 때에 깊은 천문학연구를 통해 수시력과 대통력에 모두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두 역법의 장점을 취해 칠정산법을 새로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칠정산법이 새로운 역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달력을 만드는 기반이론을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수정했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그것이 중국의 것을 대부분 모방한 것인지, 중국에서 나온 두 역법을 절충한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쓸 달력을 만들기 위한 기반이론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칠정산법에 따라 만든 달력도 대통력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이것을 완전한 개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효종 때에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칠정산법을 다시 시헌력법으로 바꾸었다. 시헌력법은 서양의 예수회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전해준 서양천문학을 채용한 역법이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이 역법을 쓰려고 할 때 서양식 역법을 쓴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 역법은 천체현상의 계산에서 역대의 다른 역법보다 더 정확해 결국 채택되어 250년 정도 사용되었다. 1896년 고종 때 우리나라는 근대적 개혁을 단행하면서 역법도 지금까지 써왔던 시헌력법을 그레고리 역법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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