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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2

미국과학진흥 시스템의 커다란 축, NSF 정혜경 동의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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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과학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과학기술 진흥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이다. 대학, 민간재단, 기업연구소 등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지원하고 있는 주체는 많지만 장기적 차원의 기초․순수과학 연구는 대부분 정부의 지원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는 당연해 보일지 모르나 역사를 통틀어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도 과학연구에 대한 지원이 항시적인 공공활동의 영역이 된 것은 1950년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이하 NSF) 출범 이후로, 미국의 과학기술 슈퍼 파워 등극과도 시기적․인과적으로 맞물려 있다.


과학 지원에 뛰어든 미국정부

제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미국사의 분수령과 같은 시기였다. 전쟁의 승리는 미국에게 정치적․군사적으로 확고한 입지를 안겨주었다. 승리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연방정부가 전시체제에 산업계와 대학의 전문가를 기용하여 그들의 과학기술력을 활용한 전략이 성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과학이 가져다주는 보은의 효과를 확인한 연방정부는, 전후에도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보다 전방위적이고 항구적인 과학 지원책이 필요함을 인지하였다. 2차대전 중 군부와 대학의 모범적인 제휴 사례를 출발점으로 삼아, 정부지원 하의 과학진흥정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바로 NSF의 설립이었다.


킬고어 VS 부쉬, 민주적인 과학 VS 엘리트들의 과학

NSF의 설립과 관련하여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재단의 성격 및 구조를 둘러싼 킬고어(H. Kilgore)와 부쉬(V. Bush)의 논쟁이다. 공화당 소속 정치가였던 킬고어가 촉구한 재단의 청사진은 보조금과 연구계약제를 통해 기초연구 및 응용개발 분야를 지원함은 물론, 연구인력 선정에 있어 지역적 균형을 강조하고 재단의 운영에 시민대표를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즉 재단이 지원하는 과학 연구에 대한 대중의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하고 지원 대상의 선정에 도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 연구에 있어 민주적 이상과 본질에 충실한 반면, 대중적 인기영합주의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전시에 OSRD(과학연구개발국)를 지휘했으며 MIT의 전기공학자이기도 했던 부쉬는 킬고어의 대의명분에는 동의하면서도 방법상으로는 차이를 보였다.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보고서에서, 부쉬는 자연과학과 의학의 양대 분야를 중심으로 최우수 과학자의 기초연구를 지원함으로써 미국 과학의 발전을 모색하는 엘리트주의적 모델을 표방하였다.

기초과학연구 지원과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최첨단 과학 및 응용기술 영역의 연구․개발로 이어져 경제발전과 국가안보의 초석이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의 복지에 공헌할 수 있다고 부쉬는 역설했다. 그러나 부쉬의 제안은 재단의 운영이 정부와 대중의 간섭을 배제한 채 과학자들의 기준과 논리에 의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기에 과학 연구의 효율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반면에, 소수 엘리트 과학자들의 잔치로 흐를 위험 역시 있었다.


킬고어와 부쉬의 법안을 둘러싼 논쟁과 대립은 ‘민주당 vs 공화당’의 정치적 노선경쟁과도 맞물려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부쉬의 법안이 재단의 기본이념으로 채택되었다. NSF의 설립(1950년)은 과학 연구를 국민의 세금을 써서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는, 소위 정부과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NSF가 가져온 변화, 그리고 NSF가 받은 변화

NSF의 최대 수혜자인 일부 엘리트 대학은 연구에 대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은 물론 연구활동의 자율성까지 보장받음으로써 한층 강화된 기초연구 역량을 안정적으로 보유하게 되었다. 아울러 재단은 펠로우쉽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우수 대학원생 및 박사후연구원들에게 해당 분야 최우수 기관에서의 연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연구인력의 질적 능력을 개선하는 기초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NSF의 지원 범위는 과학분야 전방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초기 NSF의 정책은 최우수 과학자 위주로 지원하고 연구목적에 따른 제약 없이 탐색적 연구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소련과의 국력경쟁 심화,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캠페인, 베트남 전쟁의 심화, 환경문제로 인한 반과학 인식의 고조, 레이거노믹스(Reagonomics)의 등장과 같은 시대적인 정치․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NSF의 정책은 그 궤도를 유연하게 수정해 나갔다.


NSF와 과학 지원의 황금시대(golden age)

냉전의 경쟁자로 급부상한 소련과의 과학패권경쟁, 특히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는 미국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그 대응책으로 과학연구․교육 분야의 질적 향상을 위한 각종 조치가 미국의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는 NSF의 과학 지원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학의 기존 연구조직이 보유한 장치 및 기기를 정비하고 연구시설을 보강함으로써 연구 환경과 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신규 실험실 설립을 통해 NSF의 과학 진흥책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커다란 확장을 거두었다. 동시에 NSF의 지원 활동에 구체적인 국가목표를 위한 목적지향적 연구가 대거 포함되는 변화도 일어났다.

여기에다 당시의 ‘위대한 사회’ 캠페인의 영향으로 인해, NSF는 소위 2등급 대학의 연구 활동을 고취하기 위한 연구인력의 전국적 분산정책을 폄으로써, 연구의 다양성과 효율성 뿐 아니라 연구기회 제공의 형평성까지 정책기조로 채택하게 되었다. 과학 지원의 양적․질적 팽창, 목적지향적 응용연구 지원 포함, 과거 엘리트주의의 상대적 완화 등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부과학은 사상 초유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학 비판의 물결 고조와 무조건적인 과학 지원에의 회의 속에서

그러나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환경문제의 대두,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공포 등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 전반의 비관론을 불러 일으켰으며, 1980년대 레이건(Ronald W. Reagan) 행정부의 긴축정책은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의 조건없는 지원마저 재고하게 만들었다.

과학 지상주의․낙관주의의 실종에다 예산상의 제약마저 더해진 상황에서는 선별적인 지원만이 해답이었다. 당연히 정부의 과학 지원은 납세자인 국민과 그들의 대표인 의원들이 효용을 인정한 첨단산업과학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과거에 비해 순수기초과학연구 대비 공학연구의 역할과 위상이 강화되었고, 산학연구와 지역협력의 공생관계를 골자로 하는 기초연구-응용개발이 복합된 퓨전 모델이 갈수록 추진력을 얻고 있다.


NSF의 현재와 미래

NSF가 설립된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NSF의 운영에 대한 일장일단의 목소리가 높다. 평가리뷰의 공정성, 개별연구과제(이른바 작은 과학) vs 거대과학 프로그램 지원에 대한 균형은 물론, 이른바 ‘탐색적인 기초과학’ vs ‘목적지향적인 응용과학/공학’ 사이의 지원 배분, 그리고 이러한 구분 자체의 유효성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무엇이든지간에 NSF의 핵심적인 임무, 즉 과학 연구에 대한 진흥 체제의 정비라는 화두는 NSF가 미국 과학 진흥 시스템의 핵심적인 축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저작권자 2004-07-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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