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은 1953년 4월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약 9백 단어 분량의 아주 짧은 논문으로부터 시작됐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왓슨과 크릭은 DNA가 두 가닥의 핵산이 서로 꼬여있는 나선형 사다리 구조를 갖고 있다는 획기적인 모형을 제안하여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어떻게 복제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이후, DNA에 대한 폭발적인 연구 증가에 이어진 유전자 재조합의 성공으로 이 강력한 과학기술의 응용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만든 인공 미생물에 대해 특허가 허용되었고, 생명공학 회사들이 설립되고 생명공학의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유전자 재조합과 세포융합 등의 기술은 난치병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바이오 의약품 및 진단시약의 개발에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개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새 품종의 개발, 금속을 먹는 미생물의 배양을 이용한 폐수처리 등 에너지, 자원, 환경의 분야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히고 몇 년 후, 미국의 아서 콘버그와 스페인 출신의 세베로 오초아는 장에서 흔히 자라는 세균인 대장균에서 DNA를 합성하는 효소를 발견하여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효소는 DNA 중합효소(DNA polymerase)라 명명되었으며, 긴 DNA 사슬을 원판으로 하여 마치 복사기가 원본을 복사해내듯 DNA를 그대로 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후 1978년에 스위스인 아버, 미국인 네이턴스와 햄 스미스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라 불리는 독특한 효소를 발견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효소는 DNA에서 특정 염기서열만을 인식하여 그 부위만을 가위처럼 자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제한효소의 발견 덕분에 일렬로 나열하면 1.5m에 이르는 인간 DNA 사슬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DNA에서 연구에 필요한 특정 부위만 작게 잘라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후 여러 미생물로부터 서로 다른 염기서열을 인식하여 자르는 수백 종의 제한효소들이 발견되었고, 제한효소로 잘라진 DNA를 이어주는 연결효소(ligase)도 발견되었다. 이들 효소들의 발견은 DNA 연구를 폭발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여 미국 스탠퍼드대의 생물학자 스탠리 코헨과 캘리포니아대의 생물학자 허버트 보이어는 포도상구균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도입하여 새로운 융합 DNA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즉 자연에서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생명체의 유전자를 융합시키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최초의 바이오 의약품 - 인슐린
인간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DNA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성공했다는 발표된 후, 신의 영역에 도전하였다는 논란이 발생하였고 1975년에는 과학자 수백 명이 연구의 유전자 재조합 연구의 중지를 호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이용하여 인슐린을 사람들이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자 그런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인슐린은 인체 내부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중요한 호르몬으로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해서 돼지나 소에게서 추출한 인슐린을 사용했으며 때로는 동물 인슐린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었다. 세균은 자신의 염색체 이외에 자체적으로 복제하는 플라스미드(plasmid)라고 부르는 5천개 정도의 염기쌍을 갖고 있는 작은 고리 모양의 DNA를 갖고 있다. 이 플라스미드의 특정 부위를 제한효소로 자른 후 인슐린의 유전자를 연결효소로 이어서 재조합 DNA를 만든 후, 재조합 DNA를 다시 대장균 세포 안으로 넣어서 정상적으로 배양하면 플라스미드에 끼어 있는 인슐린 유전자도 함께 복제된다. 대장균은 평균 30분에 한번씩 분열하므로 하룻밤에 몇백만 배로 증식한다.
최초의 생명공학 기업으로 1976년에 설립된 제넨텍(Genentech)은 유전자 재조합된 대장균을 발효조라는 설비를 이용하여 수천 리터나 배양하여 인슐린을 순수 분리하여, 1982년에는 의약품으로 당뇨병 환자들에게 사용하도록 승인받게 되었다.
생명공학 사업
DNA 재조합 기술을 개발한 코헨과 보이어는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였고 미국 특허청은 1980년에 이 특허 신청에 대하여 모든 생명체는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유전자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제넨텍에 이어서 상업적 목적을 지닌 바이오 기업들인 암젠(Amgen), 젠자임(Genzyme) 등이 계속 설립되게 되었다. 한편 제넨텍은 1980년에 생명공학 기업으로는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며, 인간 성장 호르몬(HGH), 혈우병 환자를 치료하는 혈액응고 8인자(Factor Ⅷ) 등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계속 개발하였고 지금까지 바이오의약품 사업의 선구자로서 많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큰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 미국의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339개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며, 1040개의 비상장 회사들이 있다. 이에 더하여 항체, 백신, 치료용 단백질 등, 총 155종의 생명공학 제품들이 FDA의 승인을 받아서 판매되고 있고, 300여개의 프로젝트들이 임상 후기 단계에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이러한 성장과 성공은 아무런 대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의 바이오의약품 사업의 시장규모는 955억 달러이며, 매년 180억 달러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하고 하나의 의약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 10-15년 간 5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이고 있다.
미국과 비교하여 연구 인프라와 자금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나라도 상피세포 성장인자(EGF)와 자기유래 연골 치료제를 자체 개발하여 상용화시켰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바이오의약품을 만들어낸 국가 중 하나로 기록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국내에만 판매 가능한 제품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초로 美FDA의 승인을 받은 국제 의약품이 탄생하여 이 분야의 미래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산학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전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Made in Korea’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하는 날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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