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흔히 정체성 혼란 때문에 나쁜 짐승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우화 속에서도 들짐승과 날짐승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다가 결국은 세상 동물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동굴 속에 숨어 사는 것이 박쥐다.
나는 박쥐를 보면 소년원을 생각하게 된다. 수용기관과 학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년원이야말로 박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박쥐에 대한 특성 때문에 나쁜 편견으로 인식되기 쉽다.
공교롭게도 서울소년원 바로 옆 담장을 하나 사이에 두고 명문특목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명문 특목고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산 아래에 있는 꽤나 높은 기숙사 건물 때문이다. 명문학교다 보니까 밤늦도록 기숙사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또한 그 바로 아래 나지막한 이층 건물인 서울소년원 학교에도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명문학교 기숙사에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으면 똑똑한 아이들이 밤새도록 공부하고 있다며 흐뭇해하고 혹시나 중학생 아이들을 둔 학부모들은 그 명문고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안달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소년원 학교에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아이들은 밤새도록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나 아이들이 담장 밖을 넘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노심초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원 학교가 밤새 불이 켜져 있다고 해서 꼭 그 아이들을 잘 감시하고 지키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소년원 학교의 특성에 맞게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
똑똑한 아이든 아니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비행을 저지른 아이든 간에 청소년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특권은 배움이다. 오히려 밖에서는 불편한 가정환경과 유해한 사회환경 때문에 공부할 여건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곳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기도 한다.
그러한 것을 법적 제도적 장치로 잘 만든 것이 소년원 학교다. 물론 소년원이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이라는 응보적 역할이 없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법에 의한 서비스 기능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징역형을 받는 일반 교도소와는 다른 차별성이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정상적으로 건전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상습적으로 비행을 하는 아이들 간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만약에 좋은 가정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소년원 학교 아이들처럼 아주 좋지 않은 가정환경과 사회환경에 지속적으로 내몰린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정반대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환경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중간 지점에 묵묵히 서 있는 것이 소년원 학교다.
다행히 요즘은 박쥐에 대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들 얘기하고 있다. 아마도 박쥐의 독특한 기능 때문일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도 초음파를 보내 길을 찾고 먹이를 찾아 먹거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는 박쥐는 재주가 많아 보인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변화한 사회에서는 박쥐와 같은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즘 추세는 다재다능한 박쥐가 대세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 정명선 서울소년원 지도교사
- 저작권자 2009-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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