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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2

산업시대의 향연, 세계박람회의 역사 정혜경 동의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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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의 진전과 국제박람회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완수한 19세기 중반의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산업의 구심점으로 군림하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경제적 부를 축적했다. 물론 산업화에 따른 도시인구의 급증과 물질적 부의 구조적 편중이 심화되는 가운데, 범죄의 증가, 도시공해 발생, 위생보건 문제의 발생, 빈부격차의 가속화 등 갖가지 부작용 역시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교육의 증대와 대중소설, 일간지 등 출판 매체의 보급에 힘입어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으며, 이전까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여가 활용에 시민들이 참여할 정도로 전반적인 생활의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처럼 영국 시민의 삶이 질적 향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과학 발전과 기술 혁신의 직간접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성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쇄 매체, 통신 및 교통수단, 생필품 등 삶의 질과 연관된 어느 분야든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의 여느 정치적·사회적 사건 못지않게 중요한 이벤트로 세계박람회(Expo)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최대의 공업국가로 성장한 영국을 비롯하여 서구 각국에서는 다양한 신기술과 문화가 양산되었고, 이는 국가간 교역과 교류를 통한 상호전파로 이어졌다. 세계박람회는 일차적으로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시장의 개척 필요성 등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지식의 확산과 교역의 기회 확대를 도모하는 가운데 신제품과 기술의 전시, 정보와 아이디어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기술과 문화의 축제이기도 했다.


런던 수정궁 대박람회

국제적 박람회의 효시로는 1851년 런던에서 개최된 ‘수정궁 대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at the Crystal Palace)’를 들 수 있다. 이 박람회는 소위 대영제국의 산업적, 군사적, 경제적 우월성에 대한 영국민의 자부심과 장차 고도산업사회에의 기대감을 함께 반영한 것이었다. 이 박람회는 무역 촉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국가별, 지역별, 특정산업 종류별로 전시된 수평적 전시회였다.

런던 하이드 공원(Hyde Park)에 세워진 수정궁은 이 박람회의 전시관이자 상징이었다. 팩스턴 경(Sir Joseph Paxton)이 설계한 수정궁은 이름 그대로 사방의 벽과 지붕이 유리로 이루어지고 유리 지붕을 떠받치는 주철의 기둥을 통해 웅장함과 혁신성이 돋보이는 건물이었다. 돌이나 벽돌의 사용을 탈피한 근대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이 전대미문의 건축물 속에서, 관람객의 환호와 환희가 오르간 소리와 어우러짐으로써 박람회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수정궁 박람회는 5월부터 10월까지 6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관객들의 면모이다. 영국 구석구석까지 완성된 철도를 통해 수천명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박람회를 방문했고, 보험회사 직원에서 조선소 노동자에 이르는 영국의 산업관련자들 뿐 아니라 바다 건너 프랑스 방문객들까지 런던을 방문하는 등 수정궁 대박람회는 계층 구분과 국경을 넘어선 국제적 축제였다.

박람회에서 선보인 100,000가지 이상의 개별 전시행사 가운데 절반이 외국인들의 전시품으로 채워졌다. 원심형 펌프(centrifugal pump, 영국)가 박람회 전시를 계기로 습지 배수를 위한 기계 장치로 활용되고, 각종 목재가공용 기계(미국)의 상용화가 시작되는 등 박람회는 교역과 기술 이전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별 기술 뿐 아니라 영국의 산업 및 과학기술과 관련한 제도 전반에도 수정궁 박람회가 끼친 영향은 컸다. 박람회에서 획득한 정보와 자극을 토대로 영국이 기술발명과 혁신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특허제도의 정비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영국은 상대적으로 뒤져 있던 산업디자인 분야를 육성하고 미국의 기술강국 부상 비결 중 하나로 지목된 기술인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세계박람회의 국제적 확산과 국제박람회기구의 탄생

영국 수정궁 대박람회의 대성공은 세계박람회의 국제적 확산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프랑스, 호주 등 서구 각국이 박람회 개최에 경쟁적으로 나선 것이다. 미국의 ‘뉴욕 박람회(1853년)’는 비록 런던의 수정궁 박람회를 모방한 것이었으나, 신흥 기술강국 미국의 자부심과 이미지를 드높이는데 일조했다.

예를 들어 야간에도 박람회장을 환히 밝히는 가스등 시스템은 당시 커다란 화제가 되었고, 울타리 말뚝(fence pickets) 설치기, 석재단장기, 통널 절삭 및 접합기, 금박 도장구 등 전통적 기술을 새로이 첨단화한 400여 점의 기술전시품들은 미국의 잠재력을 일깨워 주었다.

뉴욕박람회는 비록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계박람회 개최를 투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술개발 향연의 차원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패턴을 보여 주었다.

박람회가 확산됨에 따라 규모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1867년)’의 위용은 당시 박람회 기념물로 세워진 에펠탑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 100주년 축하행사로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센테니얼 박람회(Centennial Exposition, 1878년)’는 산업계와 정계 지도자들의 주도 하에 스미소니언 박물관, 농무부, 우정국 등의 정부유관기구는 물론 주 정부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개회식에 초대받은 브라질 황제가 미국 대통령과 함께 육중한 콜리스(Corliss) 증기기관을 시연·작동하였고, 이것이 박람회 전시관의 동력원이 되기도 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기념을 모토로 개최된 ‘시카고 박람회(1893년)’는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의 전시활동은 물론 농업, 보건, 종교, 그리고 공학 등 다양한 특정주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추가되어 박람회의 레퍼토리는 한층 깊고 풍부해졌다.

그러나 박람회 개최가 빈번해지고 참가국의 부담 역시 과중해지자, 프랑스의 주도로 1928년에 ‘국제박람회기구(Bureau of International Exposition, BIE)’가 창설된다. BIE는 박람회 개최 간격과 내용에 관한 협약을 제정·관리함으로써 수준높은 전시를 보장하고 있다. 1993년 8월에서 11월에 걸쳐 우리나라 대전에서 열린 ‘대전 Expo 93’역시 BIE 공인의 전문박람회였다.


세계박람회의 영향과 의의

근대의 세계박람회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국가적 경쟁 논리와 과시욕이 녹아 있지만, 기술적/제도적 자극의 경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기술의 국제적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각 국가들이 새로운 과학문명, 기술들을 전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박람회를 개최하는 가운데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전이 한결 촉진되었으며 그 발전상은 전문가는 물론 일반대중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고 파급되었던 것이다.

과학기술 잡지나 서적의 발행, 관련단체의 교육활동, 인터넷을 통한 각종 정보의 창구가 기술정보를 홍보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오늘이지만, 여전히 세계박람회는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신기술 확산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정보의 교류와 유통에 제약이 많았던 전시대에는, 세계박람회는 산업기술인들에게 전통적인 교과서적 지식과 경험을 넘어선 체험의 기회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일반대중에게는 기술혜택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물질문명의 진보를 보여준 ‘산업시대의 향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작권자 2004-05-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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