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 과학기술인
  • 오피니언
오피니언
2004-03-06

[과학기술과 역사] 과학기술과 사회역사 변동 김상준 경희대학교 NGO 대학원 교수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수학에는 유명한‘난제’들이 있다. 수학자들에 따라 3대 난제니 7대 난제니 하여 의견이 갈린다고 하니, 진정한 난제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도 하나의 과학적 영광일지 모를 일이다. 고교 졸업 이후론 제대로 된 수학 문제를 고민해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3대 난제든 7대 난제든 수학자들을 매료시키고 흥분시키는 이 수학적 난제들의 진수를 제대로 맛 볼 역량이 없다.그러나 난제는 반드시 수학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난제는 존재한다. 과학기술과 사회변동 역시 그런 영역에 속한다. 아마 의아하게 생각할 분이 많으실 것 같다. 과학기술과 사회변동만큼이나 자명한 관계가 또 있겠는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만큼 사회변동은 크고 빨라진다. 이건 물통에 물이 가득차면 넘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문제를 놓고‘난제’운운하다니... 역시 인문사회과학은 사이비 과학이거나 수준이 아주 낮은 원시 과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문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 내면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사물의 관계가 과학과 수학이 대상으로 삼는 세계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 때문에 얼핏 당연한 듯한 문제가 난제로 변신하곤 한다. 물통의 예를 더 들자면, 물통에 물을 틀림없이 가득 부었는데도 넘치지 않는 경우가 사회와 역사의 영역에서는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수학자들이 일반인들은 아예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는 난제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푸는데 열정적인 것만큼, 인문사회과학자들도 자신들의 분야의 난제들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이런 난제들의 근원에는 사회과학의 철학, 또는 질적 방법론에 속하는 문제들이 놓여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필자는 이러한 방법론적 문제를 더이상 늘어놓아, 총명한 과학기술인 여러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드릴 마음이 전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보자. 과학기술과 사회변동. 그 중에서도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역사적으로 중국, 크게 보아 동양이 근대산업세계로의 진입에서 서구에 뒤쳐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낙후 때문인가? 대답은 불행하게도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난제다. 조세프 니이담의 놀라운 업적인『중국과학문명사』이후로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유럽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었다는 주장은 사라졌거나 최소한 크게 약화되었다. 중국 사회경제사 분야의 최근 연구 성과들은 18, 19세기 초기까지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과 산업 생산력이 결코 영국의 그것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830년대까지 영국이 중국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했었다는 것이 그 예의 하나다. 이미 명대 초기에 중국인들은 각종 농업생산에 상당히 발전된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과학기술과 산업생산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발명품인 마를 잣는 기계는 32개의 추가 있었고 수력, 축력, 또는 인력을 이용하여 하루 60킬로의 실을 뽑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의 증거로는 17세기 초 과학발전과 상업활동에서 유럽을 선도했던 네덜란드가 돌연 침체와 보수주의에 빠져들었다거나, 그 이후 선두를 차지했던 영국에서도 18세기 초에 과학기술과 산업생산의 활발한 결합 양상을 보였음에도 이어지는 18세기 중반 장기적인 침체에 빠졌다거나 하는 예를 들 수 있다. 이런 퍼즐은 역사의 세부로 들어갈수록 더 많고 혼란스럽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자명한 진리로 설명하는 산업혁명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전문가들 사이에는 실은 아직 커다란 의문으로 남아 있는 숙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사회문화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혁명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역사가의 한사람인 카를로 치폴라(Carlo Cipolla)가 내놓은 설명이다.

과학기술과 사회변동의 관계가 보다 간단해지려면 몇 가지 다른 요인이 결합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문화와 제도적 조건, 그리고 해당 사회 밖으로 열린 환경이 존재할 때 과학기술은 사회변동에 대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추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잘 알려진 것처럼 근대로 오는 3대 발명이라는 인쇄술, 화약, 나침반이 모두 중국에서 비롯되었건만 어이하여 중국의 사회변동은 유럽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지체되었던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중국학자인 를로이드 이스트만(Lloyd Eastman)의 설명을 요약해보겠다. 먼저 중국의 사상문화는 상대적으로

유럽에 비해 변화에 대한 충동이 작았다는 것이다. 이는 한(漢)제국의 성립 이래 안정적인 문명권 역장(力場)을 구축했던 중국문명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아주 이른 시기에 엄청난 힘을 제국의 중심으로 모으는데 성공하고 이를 제도화시켰지만, 그 이후 새로 형성되는 힘은 발산, 확장되지 못하고 기존의 질서로 위축, 흡수되거나 주변화되어 사라지곤 했다. 조숙함의 후과(後過)였다고 할까? 이하 추가적인 세 가지 이유들은 모두 여기에서 파생된다.

그것은 유교적 문치주의, 사유재산권 발전의 지체, 시장 수요의 상대적 안정성이다. 유교적 문치주의는 대단히 세련된 통치철학이었으나 실험적인 발상과 전문적인 직업층의 성장에 우호적이지 못했다. 사유재산권 문제란 제국의 중심이 강한 탓에 경제가 정치논리에 절대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말한다. 마지막 시장수요의 문제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농민의 수요가 낮은 수준에서 묶여진 생존경제의 전통과 제국의 폐쇄로 인한 외부 수요의 부재다. 18세기말 영국 조지왕의 사절 맥카트니에게 중국의 건륭제가 하였다는 말-“짐이 다스리는 천하에는 부족한 것이 없노라. 혹 그대의 왕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짐이 하사하겠노라.”-은 그래서 오늘날에도 안타까운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근대 이전 시기 어느 발전된 문명권에서나 어느 정도는 찾아 볼 수 있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 경향이 너무나 일찍, 너무나 안정된 형태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가 단지 한가한 역사적 난제 풀이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태도와 사회제도적 정비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보이니까.



저작권자 2004-03-06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