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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봉 편집위원
2007-11-21

한국의 물리 선생님, 갈 곳이 없다 서인호 구정고 교사, 물리 과목 고사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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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과학기술계 석학을 회원으로 하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첫 번째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초중등 과학교육의 발전방향을 과학기술계 최대 현안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지난 9일 한림원은 50회 원탁토론회를 통해 아직도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한국 수학, 과학교육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이 자리에서 제기된 토론 내용을 현장 중계한다. [편집자 註]


“물리가 정말 재미있어요. 물리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면 기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아요. 평생 물리와 관련된 일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서울 M 여자고등학교의 한 학생(고3)은 “물리를 통해 과학의 눈을 떴으며, 인생의 목표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학생은 학교에서 물리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 따라 고2서부터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시행됨에 따라 물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턱없이 부족, 물리 학급이 편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토론에 참석한 어른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물리를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있었다.


대다수 학생들이 물리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물리 과목이 다른 과목에 비해 “골치 아프고, 까다롭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서울 강남에 소재한 구정고등학교에서 내년에 물리II를 공부하겠다고 선택한 학생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학교 측으로서는 이처럼 적은 학생을 가지고 학급을 구성할 수 없었다.


“학교 측에서는 장기간의 회의를 통해 '물리II 교육을 지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구정고등학교 서인호 교사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다수 학생들의 반발, 자녀의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우려 때문에 물리 학급 구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측으로서도 9등급으로 돼 있는 현행 고교 내신제로 인해 “학생 20여 명 중 1등을 한다 해도 1등급(4%)에 포함되기 힘든” 상황을 간과할 수 없었다.


서 교사는 “지금까지 문과 학생이 물리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과생조차 물리를 배울 수 없는 지금의 처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차라리 예전처럼 과학이란 과목으로 물리와 함께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반문했다.


서 교사는 “지금 교육 현장에서 과학교육의 총제적인 위기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일부 여자 고교에서는 2학년 학생들이 물리를 기피함에 따라 '물리I' 학급을 편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지방의 경우는 대다수 고교에서 아예 물리 과목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정책 당국의 미온적인 자세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몇 년마다 한 번씩 교육청, 학교는 교육과정에 대한 격렬한 논쟁에 휩싸인다. 그러나 교육 과정에 대한 논쟁이 끝나면 모두 흩어진다. 교육과정 입안자는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고, 대학 교수는 대학으로, 과학교사는 학교로 돌아가 결국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상황이 바뀌어버린다”는 것이 서 교사의 설명.



서 교사는 “선진국에서는 과학학회와 과학교사 연구단체, 그리고 교육정책 당국 등이 교육과정의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한 상시 협의체가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과학 교육을 이끌어갈 리더십조차 없다”며 고사상태에 빠진 물리 교육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을 개탄했다.


더 심각한 일은 고교에서 물리 교사가 사라지고 있는 일이다. 2006년 중등교사 임용고사에서 선발된 물리 교사의 수는 서울 지역이 1명, 부산, 울산 지역에서는 아예 1명도 뽑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물리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김채옥 한양대 교수(물리학)는 최근 한국현장과학교육학회장을 맡고 ‘물리 과목 살리기’에 나섰다.


김 회장은 “물리 학급이 없어지면 교사는 갈 곳이 없고, 또한 학생들은 물리 과목을 더 기피할 것이며, 대학에서도 갈 데 없는 제자를 키워서 뭐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한국의 물리 교육이 위기에 빠져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물리 교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문전박대하기가 일쑤”라며 교육정책 당국을 원망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은 고교 1학년(10학년)까지의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과 고교 2~3학년(11~12학년)의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구성된 ‘10+2체제’다.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과 선택중심 교육과정이 순조롭게 이어져 효율적인 교육성과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연결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면서 물리 과목이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서인호 교사는 “산술적으로 국어, 영어, 과학, 사회 교과에 이들 교과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균등하게 배정한다면 각각 주당 2시간씩 늘어나 획기적인 변화가 될 것은 틀림없으나 교사들과 교사 양성기관 및 관련 단체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예체능 관련 고등학교, 실업계 관련 고등학교, 핵심교과 중심 고등학교로 구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며 물리를 비롯한 과학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초과학에 있어 핵심 과목인 물리 교육이 제 자리를 찾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봉 편집위원
aacc409@hanmail.net
저작권자 2007-1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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