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나스닥에 우회 상장한 미국의 수소 전기차 업체 니콜라(Nikola)가 상장된 지 4일 만에 자동차 업계의 큰형님 격인 포드(Ford)의 시가총액을 추월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창업한 지 고작 6년째인 이 스타트업은 자동차 제조 관련 시설이 없을 뿐 아니라 상용화한 제품도 아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너럴모터스(GM), 한화 그룹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제휴를 이끌어내며 전기차 업계의 새 바람을 몰고 왔다.
비운의 천재였던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업체답게, 현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승용차 시장을 타깃으로 한 테슬라와 달리 니콜라는 트럭 등의 상용차에 집중하고 있으며, 완성차 제조보다는 수소연료전지 개발 및 플랫폼 기업으로의 입지를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다. 수소 전기차는 일반 전기차에 비해 짧은 충전시간과 긴 주행거리가 필요한 운송용 트럭에 더욱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무엇보다 니콜라는 수소 전기차 생산과 관련된 가치사슬 상의 주요 기업들을 빠르게 연결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최근 한 투자리서치 업체가 내놓은 보고서를 시작으로 니콜라가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한 기술들이 전부 사기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쏟아지는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창업자는 여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사임해버리면서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 법무부가 이러한 사기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주들의 집단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신생 테크기업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불과 몇 년 전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테라노스(Theranos)의 사기극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시 테라노스의 창업자였던 엘리자베스 홈즈는 극소량의 혈액만으로도 25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인 ‘에디슨(Edison)’을 개발하여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언론을 비롯하여 정계, 학계 등의 여러 거물들이 앞다퉈 투자, 홍보에 나서면서 헬스케어 분야의 유니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 보도를 기점으로 테라노스와 홈즈의 추악한 사기극은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키트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16개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200개 이상의 질병은 직원들이 손수 기존의 다른 장비들을 이용해 진단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테라노스는 2018년 최종적으로 폐업 절차에 들어갔고 홈즈 역시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되었으나 이들이 실리콘밸리의 명성에 남긴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이처럼 일부 신생기업들이 거짓말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은 벤처 투자 생태계의 특성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다. 신생기업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들이 공고히 쌓은 시장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사업의 기반이 따로 없고, 캐시카우가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오로지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속된 시점마다 하나하나 중간 결과물들을 내놓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벤처 신화와 같은 영웅 서사에 목말라 있는 언론이 이들의 일탈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하여 신생기업들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난 2015년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Volkswagen)이 자사 제품의 디젤엔진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것이 들통나 곤욕을 치렀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미국 시장의 규제 기준에 맞춰 ‘클린디젤’이라는 이름으로 디젤 차량을 판매해 왔던 것인데, 실상은 값비싼 저감장치 대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함으로써 눈가림을 한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대기업도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과학계의 거짓말과 관련하여 한차례 큰 트라우마를 겪은 적이 있다. 2005년 줄기세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떠오르고 있던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스타 과학자의 몰락과 이를 방관하고 부추긴 국가와 언론의 작태는 한동안 국민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리고 황우석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동종 분야에서 또 한 번의 사기극이 이웃나라 일본을 강타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이었던 오보카타 하루코가 Nature에 게재한 만능세포 관련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황우석 사건과 닮은 꼴인 이 사건은 관련자 중 한 사람의 자살 등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거대한 사기극의 전말이 드러난 후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어떻게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짓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나 쓴웃음을 짓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전 세계 자본시장의 최정점에 있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도, 오랜 경험을 가진 국가기관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도 속았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분야도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기극이 의외로 빈번하다는 점이다.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쳤을 것이라는 다른 이들의 섣부른 판단이 거짓말의 씨앗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대담한 거짓말은 사소한 단서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한 이들에 의해 그 실체가 벗겨지곤 했다. 테라노스의 의혹을 파고든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는 다른 잡지에서 읽은 홈즈의 짤막한 인터뷰 내용을 시작으로 탐사를 시작했고,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건은 NGO 단체에서 소액의 연구비를 받은 웨스트버지니아대 연구팀의 시험으로부터 시작됐다. 황우석 사건 역시 한 생명공학 커뮤니티 웹사이트에 올라온 익명의 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를 탐사보도 전문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전말이 드러났다.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니콜라 사기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힌덴버그 리서치(Hindenburg Research) 역시 불과 5인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다.
세상을 바꿀 혁신을 위해서는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필요할지 모른다. 기대가 가져오는 선순환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선구자들이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어길 것이 두려워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들이 여전히 먼 미래의 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자신감이 기만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보다 투명하고 촘촘한 제도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리터러시(literacy)를 가진 국민들에게 달렸다. 그뿐만 아니라 공표된 사실에 대한 검증과 확인은 한 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송창현 KIST 미래전략팀 연구원
- ch.song@kist.re.kr
- 저작권자 2020-1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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