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70억 지구인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지난 3월 11일 이후 코로나19는 가속기, 극성기, 소강기를 거치더니 다시 가속기로 들어섰다. 이른바 2차 감염이다. 8월말 현재 전 세계 누적 감염자는 2,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도 80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각국은 비상사태 선언과 해제를 오가며 감염대책과 경제 대책의 균형을 찾는데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상충관계(trade-off)에 있는 이 두 개의 대책을 동시에 풀어가는 마땅한 방법을 그 어느 나라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공간 폐쇄와 이동제한은 좋은 감염대책이지만 경제엔 독약이다. 반대로 경제활동의 자유도를 높이면 감염확대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약이 나올 때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백신과 치료약이 나와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료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런 환경과 그 속에서의 삶을 ‘위드(with) 코로나’와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팬데믹 가운데 이뤄지는 경제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등 서방 언론들은 팬데믹과 이코노믹스를 합쳐 팬데노믹스(Pandenomics)라 명명했다.

세계의 지성들은 14~16세기에 창궐했던 페스트를 비롯, 최근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3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2년)를 예로 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사회 문제에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등판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시대를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위기가 몰고 온 과학기술의 시대다. 과학기술이 감염과 경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최강의 과학 기술력을 가진 미국과 일본이 국가지도자의 과학경시로 코로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장면은 오히려 반면교사로서 세계인들에게 이 시대야말로 과학기술이 나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선거공약에서 ‘포스트 코로나 국가 전략’을 발표하며 재선에 나선 공화당의 트럼프 현 대통령을 압박했다. 바이든 진영은 “백악관이 몰고 온 것은 혼돈, 분단과 공감의 결여였다”라며 “바이든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을 말하며, 과학을 믿는다”고 지지를 호소한다.

미국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제4차 산업혁명의 원조다. 제조업과 IT를 결합한 제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실행력과 완성도가 높은 독일은 최근 ‘인더스트리 4.0 플랫폼’을 통해 ‘코로나19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인더스트리 4.0’의 솔루션으로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바로 잡아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독일 국민과 산업계는 디지털․부가가치․공급 네트워크, 그리고 안전하고 상호운용이 가능한 데이터 이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했다.
일본의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는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21세기 초 최전성기 이후 퇴조하고 있는 일본 과학기술력의 재생(再生)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과 중국의 엄격한 지정학적 다툼에서 보듯 과학기술은 앞으로도 부국강병(富國强兵),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의 열쇠가 된다는 게 일본의 인식이다. 세계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는 노후화가 두드러진 일본의 폐쇄적인 교육․연구체계를 쇄신하자고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과학계의 가치관은 사회 과제 해결을 위한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미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인류 존속에 대한 위협의 경감, 2015년 유엔 결의에 의한 지속가능성장목표(SDGs) 달성은 인류문명에 있어서 최대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코로나19 만연에 대한 우려는 이러한 움직임을 비가역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다. 세계의 흐름은 인권주의와 다국간 협력주의가 대세를 이룰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계도 인류 공통문제의 극복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생각해 볼 때가 왔다.
과학기술 이노베이션 정책도 포괄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지향할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그 구체상을 그려야 한다. 현재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는 IT(정보기술), AI(인공지능), 디지털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토대로 사회의 ‘편리성과 효율성의 향상’,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지만, 앞으로는 그 목표가 ‘생명과 생활 기반의 강인한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는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포함한 과학적 근거기반의 정책으로 대처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과학기술 예산 20조 원 달성을 넘어 30조 원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제4차 혁명시대를 이끄는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집약되는 한국판 뉴딜정책은 거대한 예산이 잡혀 힘차게 굴러갈 것이다. 정책의 비전과 방향을 그 어느 때 보다 명확하고, 견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팬데노믹스 시대의 과학기술은 디스토피아를 극복하지만 유토피아에 빠지면 안 된다. 과학기술이 사회․경제 문제를 푸는 좋은 처방전이지만 만병통치약(panacea)은 아니다.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과학기술 정책을 보다 담대하고 줄기차게 추진해 나가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곽재원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위원장
- 저작권자 2020-09-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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