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간은 한동안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만년 전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보다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훨씬 번영할 수 있게 됐다. ‘농업혁명’이라 불리는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다.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한해 농사가 잘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 혹시 병충해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기아라는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을 교배해 개체를 만드는 육종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선보이게 된다.
육종이 인류에게 커다란 혜택을 안겨준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특히 1960년대 육종을 통한 농작물의 품질 개량은 비료, 농약의 개발과 댐을 비롯한 수리·관개시설의 발전이라는 날개를 달고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다. 바로 ‘녹색혁명’의 시작이다.
녹색혁명은 1백년 전 16억명에서 현재 60억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인류를 먹여 살린 일등공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육종에 의한 품종개량은 한계를 맞이하고 있고, 과도한 관개와 농약의 사용에 의해 땅은 메마르고 병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의 증가는 멈추지 않고 80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개발로 인해 경작면적은 감소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끔찍한 식량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식량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생명공학기술이 만들어낸 ‘유전자변형 작물’이다.
‘유전자변형(GM, Genetically Modified)’ 작물은 생산성 향상과 상품의 질 강화를 위해 본래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생산된 농산물로 정의된다. 병충해나 질병에 저항성을 갖거나, 성장속도가 빠르거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을 만들면 식량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제2의 녹색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GM작물을 만드는 일은 먼저 시험관 내에서 식물이 갖길 바라는 유용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재조합 DNA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재조합 DNA는 유전자를 식물체로 옮기는 능력을 갖고 있는 아그로박테리아 세균을 이용하거나 미세한 금속 입자로 코팅한 후 식물 세포에 발사하는 입자총 방법 등을 이용해 식물세포에 주입된다.
GM작물은 불과 20여년 전에 처음 등장했을 정도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은 1856년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의 작은 정원에서 뿌려졌다. 그레고어 멘델이 무려 3만개의 완두콩을 심어 각 개체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 유전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에 의해 DNA 이중나선 구조가 규명되면서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DNA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1967년 길다란 DNA를 붙이는 풀과 같은 역할을 하는 DNA 연결효소가, 이듬해에는 가위 역할을 하는 제한효소가 발견됐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1973년 스탠리 코헨과 허버트 보이어는 특정 DNA를 삽입한 생명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DNA를 마음대로 변환시키는 DNA재조합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1983년 재조합 기술이 드디어 식물에 적용돼 최초의 GM작물이 탄생한다. 최초의 GM작물은 아그로박테리아로 식물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만든 항생제 저항성 담배였다. 이후 목화, 콩, 벼, 옥수수, 밀 등이 줄지어 등장한다.
1994년은 GM작물 역사상 아주 의미 있는 해다. 미국식품의약안전청(FDA)이 GM 토마토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미(Calgene)사가 내놓은 토마토는 유전자를 변형해 오랜 시간 동안 유통되어도 잘 물러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후 콩, 옥수수 등의 GM식품이 바통을 건네받는다.
지금까지 개발된 GM작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2000년에 개발된 비타민A를 강화한 황금쌀(Golden Rice)이다. 그전까지 GM작물은 병충해 저항이나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황금쌀 등장 이후 특정 영양분을 강화하여 웰빙을 겨냥한 2세대 GM작물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등장할 3세대 GM작물은 백신 토마토나 콜레스테롤 저하 채소처럼 질병을 치료하는 기능까지 가질 전망이다.
GM작물 재배면적 급증 추세
GM작물 재배면적은 1996년 전세계 6개국, 170만㏊에서 2003년 18개국, 6천770만㏊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GM작물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 가량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캐나다, 브라질, 중국이 뒤를 잇는다. 가장 많은 재배면적을 차지한 것은 콩이고, 면화, 유채, 옥수수 순으로 많다. 미국 등에서는 콩 재배 면적 중 GM 재배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GM작물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상품화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식품용으로 수입된 대두 중 84%가 GM 콩이었을 정도로 GM작물은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GM작물이 늘면서 2001년부터는 GM작물이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GM작물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탁에서 GM작물로 만들어진 음식을 만나면 눈부터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GM작물을 먹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GM작물은 개발 초기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돼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98년 영국 로웨트 연구소에서 유전자 변형 감자를 실험용 쥐에 먹인 결과 면역체계가 손상되고, 뇌가 축소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는 재현되지 않아 잘못된 연구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GM식품을 보는 시각은 미국과 유럽이 서로 크게 다르다. GM작물 개발에 열중인 미국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FDA 승인을 받은 GM식품은 안전하다고 신뢰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GM작물 연구도 활발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피한다. 심지어 ‘프랑켄슈타인 식품’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혐오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50개국의 국가가 참여한 ‘바이오 안전성에 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가 2003년 발효됐다. 이 국제조약은 비준국이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가 없더라도 GM작물이 인간의 삶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수입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명공학자들은 GM작물이 보통 작물과 마찬가지로 성분만 확인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보고 있다. 재조합된 미생물을 이용해 인슐린을 만들어 의약품으로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인슐린 생산의 경우도 한동안 문제가 제기됐으나 지금은 논란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인간이 항생제를 남용하면서 슈퍼 박테리아가 생겨난 것처럼 GM작물을 계속 재배하면 새로운 잡초나 병해충이 생겨날 수 있으므로 환경에 대한 영향은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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