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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러시아의 과학박물관 - 인간과 자연 이혜승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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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사람들이 보고 배우기를 원하노라.”


1714년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최초의 박물관인 쿤스트 카메라의 건립을 명하면서 남긴 말이다. 황제는 서유럽의 발전에 비해 뒤쳐져 있었던 러시아를 변혁하는 힘은 선진 기술의 습득과 과학 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쿤스트카메라는 희귀품 전시장을 뜻한다. 표트르 대제는 젊은 시절 서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각종 서적, 기자재, 동물의 뼈, 모형 등을 아낌없이 사들였다.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프레데릭 류이쉬와 알버트 세바의 견본은 표트르 대제가 모은 수집품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 하다.


해부학은 러시아에서 17세기 말까지 금지되었고 신성모독으로 여겨진 학문이었다. 포르말린에 달긴 죽은 태아의 머리, 인간이나 동물들의 샴쌍둥이 견본 등은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악마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는 기형 동식물은 단지 우연한 자연의 ‘유희’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몸과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종교적인 편견에 싸여있던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의 진보적인 시각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보고 배우라”는 표트르 대제의 크레도는 이후 러시아 과학박물관의 지향점이 되었다.


쿤스트카메라는 황제의 의도대로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료로 방문하여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여러 자연사 박물관들이 쿤스트카메라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재 쿤스트카메라는 인류학, 민속학 분야의 구심점으로 조선시대의 동전들, 19세기 말 조선 농민과 자연의 사진 등이 보관되어 있어 한국과도 관련이 많은 기관이다.


인류학 박물관의 선두주자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쿤스트카메라라면 모스크바의 다윈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이다. 다윈 박물관은 1907년 생물학자인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코츠 박사가 건립했으며 1995년 현재의 건물로 이전되었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과학과 예술의 만남'에 있다.


코츠 박사는 설립 당시부터 과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성의 통합을 추구했다. 그래서 동물과 식물, 인간과 환경 등 자연을 주제로 한 미술, 문학 작품들은 박제와 표본 등과 더불어 다윈 박물관의 상설 및 특별 전시를 구성한다.


지난해 12월 14일부터 2월 20일까지 열리는 특별 전시 중 하나는 ‘전설 속의 동물들’이다. 개의 머리를 한 이집트 신화의 아누비스, 코끼리의 얼굴을 한 인도의 신 가네쉬, 뱀의 머리칼을 가진 히드라 등 동물들이 신격화되는 예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전시 기획자들은 여러 민족들의 상상 속에서 태어나는 자연을 보여줌으로써 가상과 현실 세계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인간은 결국 주변 환경과 ‘같은 피’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박물관에서는 ‘상상속의 동물 그리기’ 경연대회를 연다. 자신이 고안해 낸 동물들에게 멋진 이름을 붙이고 전설을 생각해 내는 것이 과제인데 박물관 측은 소정의 상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도 작년 12월 30일에는 ‘닭’ 전시회가 열려 1월 3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닭의 생물학적 특성부터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상징적 의미에 이르기까지를 닭의 실제 표본 및 공예품을 통해 조명한다.


또 ‘살아있는 행성, 빛과 소리 전시회’라는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돌비 디지털과 컴퓨터 조명 기구 등을 이용하여 생태계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 보여주는 전시로 박물관 건립 100주년에 즈음하여 전세계 최초로 기획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더불어 다윈 박물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장애자들을 위한 배려이다. 지체 장애자들을 위해서는 휠체어를 준비하고 동선도 그에 어울리게 고안되어 있다. 정신박약아를 위한 특수 프로그램 및 수화 전문 안내인들도 장애자들의 관람을 돕는다.


러시아 전역을 통틀어 가장 숫자가 많은 박물관 중의 하나는 광물 및 지질 박물관이다. 과학 아카데미 소속 광물 연구소의 광물 박물관, 상트 페테르부르그 광산 대학의 박물관, 모스크바의 베르나드스키 광물 박물관, 과학아카데미 소속 페르스만 미네랄 박물관, 체르니쉐프 광물 탐사 박물관, 스베르들로프 광물 박물관, 카라차예프 체르케시야 공화국의 ‘광물, 보석 박물관’, 중앙 시베리아 광물 박물관, 무르만스크 광물 박물관 등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자연사 박물관에 포함된 광물 전시장을 합치면 그 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베르나드스키 광물 박물관은 1755년 창립되어 이 분야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다. 우랄지역의 대부호였던 데미도프 가문은 우랄과 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들의 표본 6,000여점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기증하여 이 박물관의 토대를 놓았다. 사상적으로는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궁극적으로는 우주와 유기체를 이루며 인간의 사고와 선택이 자연 환경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베르나드스키의 견해가 박물관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약 135,000점의 광석 표본들을 전시하는 페르스만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광물 박물관 가운데 하나이다. 러시아 기초 과학 재단의 후원으로 페르스만 박물관은 전 세계 광물들에 관한 DB를 구축하고 그 검색 시스템을 완성했다.


광물들의 명칭, 동의어나 변종, 동일 그룹 등에 관한 정보를 러시아어와 영어로 검색할 수 있으며 이미지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1997년 국제 광물 협회에서 확정한 표준 광물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페르스만, 베르나드스키 광물 박물관 등 러시아의 4대 광물 박물관의 표본을 대상으로 한다.


자연 관련 박물관 가운데는 러시아 북극, 남극 탐험의 역사와 극지방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남극, 북극’ 박물관, ‘뇌’ 박물관, ‘해부학’ 박물관, ‘고생물학’ 박물관 등이 있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다양한 기획, 수집과 전시, DB 구축 등은 과학 문화 콘텐츠 개발을 어떻게 할수 있는지의 예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작권자 2005-0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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