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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객원기자
2011-02-10

좌표평면을 도입한 합리주의 철학자 역사 속 호모 컨버전스, 르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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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는 렌즈와 망원경이 새롭게 발명되는 등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살았다. 때문에 그에게 철학적 사고의 전환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철학자로서의 사유의 방식을 단지 철학에만 머물지 않고 수학, 과학, 음악 등에 확장했다. 그 결과 당대의 유명 인사가 됐다. 데카르트는 과학 혁신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상가이기도 했다. 훗날 과학적 계몽을 이어받은 지식인들 대부분 데카르트의 문하생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 정도이다.

좌표평면을 도입한 수학자

데카르트가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수학사적 업적은 음수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고 좌표평면 위에 음수를 표현해낸 것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직선이나 곡선이 식과 대응되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데카르트의 업적이다. 다소 파격적인 이 아이디어는 직선상에 양수, 음수, 영을 나타냄으로써 기하학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 데카르트의 좌표평면은 기하학에 숫자 대신 일반적인 문자를 사용해 수의 관계, 성질, 계산 법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인 대수학을 접목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점과 수식을 하나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에서 수의 변화를 손쉽게 나타낼 수 있게 됐다. 현재 데카르트는 이런 공로로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좌표평면은 미적분학의 태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수학사적 의미가 큰 발견이다. 또한 동양이 우위에 있던 수학과 천문학을 서양의 우위로 바꾸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서양 사상사의 흐름을 바꿔 버렸다. 그 당시 진리의 중심은 ‘신’이었다. 하지만 이 명제 이후 진리의 중심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로 옮겨졌다. 한마디로 데카르트는 인간을 자연 속의 그 어떤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올려놓은 철학자인 셈이다. 하지만 동물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은 단순한 ‘물질’에 지나지 않았다. 즉 데카르트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시계와 같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동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기계론적 생각은 인체에도 적용된다. 데카르트는 비록 인간을 고차원의 위치로 올려놓았지만, 그것은 단지 인간의 정신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그는 인체 속에 있는 모든 신체기관은 하나의 기계로 파악했다. 데카르트는 인체의 해부에 많은 시간을 들이며 연구했으며, 특히 혈액순환과 심장에 대해서는 가설을 세우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실험 결과 데카르트의 논리가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하지만 육체 전체를 일종의 기계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근대적 생리학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중세의 성스러움과 신비한 힘이 결합돼 신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던 ‘피’를 과학·의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로써 헌혈과 수혈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됐다. 

감정 미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물리학자

데카르트는 갈릴레오 역학의 한계를 깨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이론적이고 체계적이었던 데카르트의 역학은 관성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세워졌다. 특히 갈릴레오와는 달리 데카르트는 직선 관성운동의 개념을 명확히 제시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세운 세 가지 법칙을 ‘자연 법칙’이라 불렀다. 그 중 두 가지 법칙이 현재 물리학에 영향을 미친 관성의 법칙에 관한 것들이다. 또한 데카르트는 갈릴레오가 ‘자연스런 운동, 비자연스런 운동, 강제적 운동’으로 구분하던 것을 없애 모든 운동을 ‘운동’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취급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절대적인 운동이란 존재할 수가 없고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비해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지는 것도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데카르트의 나머지 한 가지 법칙은 ‘운동의 양’에 대해 정의내린 양의 보존 법칙이다. 그런데 이 법칙에는 오류가 있어, 이후 라이프니츠에 의해 이 개념은 수정되면서 에너지보존법칙으로 바뀌게 됐다.

데카르트는 음악에 대한 지식도 깊었다. 겨우 22세에 쓴 ‘음악에 관한 소고 Musicae Compendium’만 보더라도 그의 미학적 지식은 깊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음악의 목적은 우리에게 유쾌함을 주고 다양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통해 인간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언급한 것처럼 데카르트도 “슬픈 노래나 비극은 우리에게 슬픔을 야기할수록 우리를 기쁘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데카르트의 음악론은 바로크 시대의 ‘정서’를 함양하는 기초가 되기도 했다.

김연희 객원기자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1-02-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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