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0일까지 ‘가장 지적이고 가장 유머러스한 리얼SF 연극’을 표방하는 과학연극 <과학하는 마음-발칸동물원>이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선다. 일본의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3부작 가운데 완견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 2010년 일본의 한 생명공학 연구실을 배경으로 생명과학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지난해 ‘조선형사 홍윤식’,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로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을 무대로 옮겨 주목을 받았던 이 시리즈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성기웅씨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그 마지막, ‘발칸동물원’
2007년 12월 14일 8시. 대학로의 한 소극장 안은 공연을 보러 온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관객들로 인해, 즉석에서 여분의 좌석을 만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의 1편 ‘진화하는 오후’는 제대로 된 홍보도 하지 못했지만, 이렇듯 알음알음 찾아온 관객들로 성황을 이뤘다.
성기웅 연출은 "예상을 뛰어 넘는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었던 덕분인지, 과학하는 마음의 세 번째 이야기 '발칸동물원' 편이 아르코예술극장 2008 P&C '새로운 도전' 프로그램에 선정돼 짧은 기간동안이지만 관객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됐다"며 "3편 ‘발칸동물원’은 완결편인 만큼 앞의 시리즈 보다 한층 과학적으로 심화된 내용을 담았다"고 전했다.
그는 “1편이 1990년경의 한 대학 생물학실험실의 연구원들의 일상을 그렸고, 2편이 이로부터 10년 후의 같은 실험실을 배경으로 영장류 연구를 통해 인간 진화의 비밀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물었다면, 3편은 첨단의 뇌 연구와 생명과학 연구를 통해 현대 과학의 제반 문제들과 윤리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3편 ‘발칸동물원’은 최첨단 생명공학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2010년 일본의 한 국립대학 생물학 연구소가 배경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이 곳에 식물인간이 된 세계적인 뇌과학자의 뇌를 보관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오고, 그로 인해 뇌과학자의 약혼자가 실험실을 방문한다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전개되는 이야기다.
히라타 오리자를 이해하면 훨씬 재미있다
언뜻 보면 이공계와는 무관해 보이는 국문학 전공의 젊은 연출가가 첨단의 생명공학을 직접적인 소재로 삼은 과학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그것도 일본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까지 도맡아서. 그 계기에 대해 성연출은 "우리의 연극계와 달리 일본에서는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이 담긴 참신한 연극들을 더러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히라타 오리자가 쓴 <과학하는 마음> 3부작을 눈여겨 보았다"고 한다.
성기웅 연출에 따르면 히라타 오리자는 역사, 고고학,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은 세계적인 일본인 극작가로, 일본 현대 연극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진보적 인물이라고 한다. 100년 전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일 때 시작된 일본연극이 서구 번역극을 모방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삶을 리얼하게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껴 이에 반기를 들고 자국인의 시각으로 현대 일본인의 일상을 그린 사람이라고.
이어 그는 "보통의 연극과 달리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은 '상당히 찰나적인 순간을 잡아 최대한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과거와 미래를 오고가는 큰 시점의 변화가 공존하는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는 찰나의 순간과 점진적 흐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3편 발칸동물원은 이러한 히라타 오리자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동시다발대화'가 가장 많이 구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동시다발대화란 무대에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와 있을 때 둘 이상의 대화가 동시에 오가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일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놓은 듯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은 마치 연구원들의 휴게실의 어느 순간을 뚝 잘라 눈앞에 펼쳐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흥미로운 과학지식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성연출은 "히라타 오리자의 다른 작품처럼 과학하는 마음이란 작품 역시 '어떠한 생각을 일방적으로 관객 머리에 주입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관객의 머리 속에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고, 관객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생각해 보게 한다'는 데 있다"며, "단순히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연극이 아닌,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다의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살고는 있지만 정작 피상적 과학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 중심의 새로운 과학이야기'를 선사하겠다는 성기웅 연출, 과학과 연극의 이 이채로운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다.
- 이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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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1-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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