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발간된 윤후명의 소설 중에 ‘약속 없는 세대’란 작품이 있다.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켜 도망자가 된 주인공의 그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내용이다. 그 소설 제목처럼 현대 사회는 참으로 약속 없는 세대를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지켜야 할 약속, 소중히 간직하는 약속보다 즉흥적인 만남과 빈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개인 간의 소중한 약속에 비해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구성원의 활동과 모임은 더욱 늘고 있다.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일정을 감안해 약속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약속잡기도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게 사실. 이런 사회적 추세 속에서 최근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한 약속잡기 서비스가 선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국가지정 건축ㆍ도시연구정보센터(AURIC)가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으로 개발한 ACROSS(AURIC Cross) 시스템이 바로 그것. 웹사이트(http://across.auric.or.kr)에서 한 번의 클릭으로 구성원들의 일정을 확인하고 약속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1년여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ACROSS 시스템의 개발을 진두지휘한 김광우 AURIC 센터장(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을 만나 약속잡기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 약속잡기 서비스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최근 나를 비롯한 연구자와 교수들이 연구나 교육 이외에 가장 많이 시간을 뺏기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회의였다. 특히 회의 시간 자체도 문제지만, 회의를 언제할지 결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요즘은 연구과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같은 연구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많은 사람들의 일정을 맞춰서 세미나와 회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에 따라 회의시간을 잡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올 한 해 동안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12월에 오픈하게 되었다.”
▶ 약속잡기 서비스는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용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약속을 주선하는 사람의 경우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약속 만들기 버튼을 클릭한 후 단계별로 출력되는 화면에서 요구하는 정보만 입력하면 약속 요청이 완료된다. 이렇게 약속 주선자에 의해 만들어진 약속은 약속 참석자들에게 이메일 및 SMS로 통보된다.
약속 참석자들은 주선자가 보낸 이메일과 SMS를 확인한 후 이메일에 연결된 링크를 클릭한 후 본인이 참석 가능한 약속 예정일을 선택하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선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메모 시스템 등의 여러 부가 시스템도 탑재되어 있다. 약속 참석자들이 선택한 약속 예정일을 보고 주선자가 약속일을 확정하게 되면, 약속 확정과 동시에 참석자들에게 확정 메일과 SMS가 전송된다.
이 시스템은 건축ㆍ도시 분야의 연구자 외에도 원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
▶ ACROSS 시스템을 개발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센터의 회원 중에서도 아직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이런 분들도 손쉽게 약속을 만들고, 약속 요청에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스템의 개발 목표였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AJAX(에이젝스 ; 새로이 개발된 웹프로그램 언어)를 이용한 달력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달력을 보며 약속 예정일을 입력하고 선택하면 되므로 컴퓨터 초보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 이 시스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떠한가?
“아직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객관적인 반응을 수집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베타 서비스 때 이용한 분들의 경우 아주 편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설 관련 기업에서도 사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온 곳이 몇 군데 있다.”
▶ 앞으로 보완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욕심 같아서는 아웃룩 같은 일정관리 프로그램과 연동하거나 또는 휴대폰으로 바로 약속예정일을 선택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 센터의 기술력으로는 어렵고 전문기업과 연계해야 하는데 예산상의 어려움이 있다. 기회가 되면 차츰 보완해나갈 예정이다.”
▶ 건축ㆍ도시연구정보센터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우리 센터가 하는 일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건축ㆍ도시 분야의 디지털 정보 유통이다. 센터 설립 초기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생산한 자료를 타 기관을 통해서 유통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 제공을 요청하고 협약을 맺기까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신규로 설립되는 연구단체의 경우 스스로 정보유통협약을 요청하고, 학계에서 생산된 자료는 당연히 센터를 통해서 유통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현재 대한건축학회, 대한국토ㆍ도시계획학회 등의 학회 및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의 연구소, 네이버 등의 포털, 그 외 건설관련 기업체 연구소 등 70여 개의 정보 생산원과 협약을 맺고 있으며, 약 55만 건의 연구 정보를 11만명의 회원에게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는 센터에 구축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온라인 지식 공동체를 구축할 예정이다. 현재 센터가 제공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단순 분류 정도인 자료의 2차 가공 수준인데, 이를 한 단계 끌어올려서 3차 가공(분석)을 수행하여 지식 정보를 유통하고자 한다. 또 ACROSS와 같은 연구자 지원 서비스도 지속적으로 늘려갈 예정이다.”
김광우 센터장은 1997년 AURIC 부센터장을 맡은 후 1999년부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국퍼실리티매니지먼트학회 회장, 한국태양에너지학회 회장, 서울대 공과대학 부학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성규 편집위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07-12-12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