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핵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두고 네티즌 간의 논쟁이 치열하다. ‘이 박사는 과연 핵폭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있었고 의향도 있었던 학자인가? 그리고 핵개발을 시도했는가?’에 대한 공방이다. 인터넷에서 ‘핵’을 치면 네티즌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한 네티즌은 미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이 박사의 행적과 교우관계를 소상히 소개하면서 “이 박사는 분명 핵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서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는 ‘요주의’ 인물이 됐고, 결국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그의 친구며 학문적 동지.
이 박사는 평화주의자. 전공도 핵개발과 멀어”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인 프랑스의 장 진 저스틴(Jean Zinn Justin) 교수는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박사를 둘러싼 핵 논쟁에 대해 이 박사의 절친한 친구이자 오랫동안 학문적 동지였던 저스틴 교수의 대답은 한마디로 ‘네버(never)’다. 이 박사는 핵개발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향도 전혀 없었다는 것.
지난 17일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요람인 고등과학원(KIAS 김만원 원장)의 물리학부의 국제평가 평가위원으로 초청돼 한국을 방문한 저스틴 교수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본지의 질문에 “벤자민 리(Benjamin Lee, 이휘소 박사의 영어이름)는 핵개발과는 거리가 먼 이론물리학과 입자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핵개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좌익성향으로 한국정부와 마찰은 있었다”
이 박사와 6개월 동안 같이 연구하면서 4편의 논문을 공동으로 저술할 정도로 가까웠으며 현재 프랑스 샤클라이 연구소(Saclay Laboratory) 교수로 이 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DAPNIA를 이끌고 있는 저스틴 교수는 “더구나 벤자민은 평화주의 신봉자(pacifist)로 핵무기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가 핵무기와 관련이 전혀 없고 개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웬만큼 유명한 물리학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스틴 교수는 “그는 성향이 어느 정도 좌쪽 편에 서 있었으며, 그래서 한국 정부(당시 박정희 정부)와 마찰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벤자민은 결코 핵개발 지식이 있거나 그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결코 없었던, 양심적이고 평화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본받을 만한 훌륭한 학자였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또 “한국에서 몇 년 전 벤자민을 소재로 한 어떤 소설이 상당히 많이 팔려 독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벤자민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도 아는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벤자민은 픽션(소설)에 소재로 재가공 됐을 뿐 핵과는 거리가 먼 학자”라고 재차 강조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순전히 픽션”
저스틴 교수가 언급한 소설은 작가 김진명 씨가 2003년에 내놓은 추리소설 ‘무궁화꽂이 피었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민족주의와 연결시킨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최근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서점가에서 이를 찾고 있는 독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휘소 박사를 판에 박은 것처럼 거의 비슷한 모델 이용후 박사가 등장한다. 법정공방으로 간 소설이기도 하다.
저스틴 교수는 이어 “벤자민은 학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다”며 “연구에 몰입할 때는 몇 개월 동안이나 밤에도 계속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박사 가족들과도 친했으며 이 박사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아내와 식구들도 슬퍼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박사의 핵개발과의 관련한 의문점에 대해 이 박사와 함께 일했던 한국의 동료나 고려대의 강주상 교수를 비롯한 당시 제자들은 여러 차례 이에 대해 해명한 바가 있다. 그러나 핵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휘소와 핵무기’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단골메뉴로 출연해 갖가지 추리와 상상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KIAS는 세계적 수준, 연구 열정 높아”
한편, 저스틴 교수는 KIAS 국제평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KIAS는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고 있고, 연구원들의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 뒤 “해외 연구기관과 비교할 때 기초과학연구소로 별 손색이 없는 기관”이라며 KIAS를 칭찬했다.
그는 또 “풍족한 지원이 없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초과학에 몰두하는 연구원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높게 평가하면서 “역사가 10년에 불과한 KIAS의 발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기명 물리학부 교수는 “공식적으로 정리된 평가 보고서는 한 달 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학, 천체물리학, 양자정보 분야에서 우수한 논문 등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내고 있는 KIAS는 세계 유명한 연구기관과 대등한 연구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국제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1월에는 수학부에 대한 국제평가를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 등 3개 주요 학부로 구성된 KIAS는 조만간 계산과학부에 대한 국제평가도 실시하며 경영, 재정확보 등에 대한 국제평가도 시도할 예정이다.
KIAS 관계자는 “국내 어느 기관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국제평가를 통해 KIAS에 대한 국제적 검증을 받고 결과를 바탕으로 중장기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평가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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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6-1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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