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초고에너지 우주선 연구로 당시 미국 클린턴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상’을 수상, 화제가 되었던 서은숙(42)박사가 대덕밸리를 찾았다. 그는 중학교 선생님으로써가 아니라 당당한 과학자로 변신했다.
'이제는 한국말보다 영어가 익숙하다'며 사이사이 영어가 먼저 입 밖으로 나오는 그녀는 현재 미국 매리랜드대학(University of Maryland) 물리학 연구소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향수에 젖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난관에 부딪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물리학 연구에 대한 꿈과 열정은 이역만리 타향살이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나무, 풀 등 식물 이름을 모두 외우는 학생으로 통했다고 전했다. 과학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과학경시대회 대표로 나가면서 그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진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자연 과학 계열을 선호하는 그녀에게 부모님은 '여자니까' 라는 꼬리표를 붙여 수학을 전공하길 권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물리학에 뚜렷한 신념이 서 있던 그는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았다. ‘똑 부러지는’ 성격 때문인지 물리학을 전공한 이유를 보면 다분히 철학적이다.
"항상 본질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즉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 보고 싶었어요. 물리를 통해 꼭 우주를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죠."
일반적으로 실험이 가미된 물리는 남자들의 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던 당시, 과감히 자신의 의지대로 터프한 길에 도전한 그녀. 하지만 80년대 대학 생활은 시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어려운 시절, 아르바이트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경제적으로 힘이 들었다.
"정말 쉽지 않았어요. 차라리 의대에 갔으면 나중에 돈이라도 많이 벌 텐데 하는 갈등이 한두차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택한 물리의 길을 단 한번도 후회해 본적은 없습니다."
물리하면 어려운 것으로 단정하고 기피하는 세태와 관련 그는 물리를 인생과 비유했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는 ‘즉실천’이라고 답변했다. 생각난게 있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어려운 결심을 한 것도 그의 생활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생기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스타일이죠.우물주물하고 마음에 두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미국에서의 출발은 좋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대학(Louisiana
State University)에 입학, 연구 조교로 활동하며 순탄한 신호탄을 터뜨린 것. 현재 NASA(미 항공우주국) 연구원으로 우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입자 물리를 연구, 고에너지 입자를 관찰하여 우주의 신비를 벗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오픈 북' 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하루하루 책과의 씨름을 즐기고 더 가치 있는 에너지를 개발해 내는데 희열을 느끼며 물리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box1@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