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이하 리켄)가 올 하반기 한국에 진출한다. 지난해 가을 한양대와의 워크숍을 통해 본격 추진되어온 리켄의 분소는 과기부가 추진하는 '해외 우수연구소(R&D센터) 유치활용 시범사업'에 선정됐다. 그 외에도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과 러시아 국립광학연구원(SOI) 등이 앞으로 3년간 60억씩 과기부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에 진출한다.
리켄은 1917년 몇몇 과학자들이 설립한 민간연구소였으나 1958년 이후 과학기술청 소관이 되면서 규모가 점차 비대해갔다. 하지만 2003년 리켄은 독립행정법인화의 혁신을 감행했다. 독립행정법인화는 기존의 일방적인 연구시스템과 달리,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운영방법이다. 이는 연구자들이 직접 주제를 찾고 팀을 조직하여 지원할 수 있는 능동적 연구 지원체제이며,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연구소는 없어져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 프로젝트를 찾는 방식이다.
가깝지만 낯선 리켄연구소, 나노 및 나노바이오 기술 연구에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리켄 와코(Wako)캠퍼스 나노 조인트랩 팀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 김유수 박사를 만났다.
다음은 김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어떻게 일본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됐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일본 유학을 고민했을 당시 ‘광촉매의 세계적 권위자 후지시마 아키라 교수’를 만난 것이다. 그 분을 만난 지 한 시간도 안돼 내 연구인생을 걸어도 될 분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됐다. 훗날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됐다.
학위를 마칠 즈음, 교수가 일본 최고 연구기관인 리켄에서 연구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을 계획이었으나 리켄의 종신제 연구그룹과 한시적 프로젝트가 조화된 조직운영, 3천명 이상의 연구원과 연 1조원 규모의 연구 예산, 행정 인력의 완벽한 지원, 활발한 국제 협력 등 리켄의 선진 연구시스템은 내 계획을 철회시키기에 충분했다.”
▲ 현재 나노과학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하나?
“최근 들어 나노 분야를 연구한다는 말을 빈번하게 듣고 있지만, 실제로 내 자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분자과학 분야에 종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석사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연구 컨셉은 ‘표면과 분자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부분이다.
리켄에서 연구하면서 본격적으로 고체표면에 흡착된 분자 한 개의 본질을 밝혀내 이용하는 것을 장기적 연구목표로 잡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각 분자가 가지는 독특한 성질과 기능을 이해하고 실제 시스템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 최고의 연구소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힘든 적은 없었나?
“리켄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할이나 대우에 차별은 없다. 내가 소속된 나노사이언스 리서치 프로그램 산하 21개 연구팀 중 외국인이 맡고 있는 팀은 3개이다. 나의 경우 전체 운영위원회의 부위원장을 3년째 역임하고 있다.
일이 끝나고 심야에 맥주 캔을 홀짝거리며 연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모를 정도로 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한일 간의 역사의식에 대한 간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축구 한일전이나 독도 영유권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원끼리 인식의 차이를 좁힐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로 꺼려진다.
적어도 직장에서만큼은 각종 한일 간의 정치 외교적 이슈에 초연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내 아이들이 일본 학교에 진학해 틀린 역사를 배울 때의 혼돈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진다.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 한국의 나노 열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나노’라는 이름이 들어간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의 광고가 참 많다는 점이다. 일본도 물론 나노기술을 이용한 제품들이 생산되지만 인터넷으로 상품 정보를 검색하거나 매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본 후에야 나노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알 정도이다.
한국의 나노 열풍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인보다는 훨씬 더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나노과학에 대한 상식 수준은 높지만 아직 그것이 자신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바꾸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멀지 않은 장래에 분자가 활약하는 분자의 시대를 맞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분자공학, 분자의료, 분자소자, 그리고 분자촉매 등 분자를 단위로 물질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분자의 시대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기초적인 연구결과를 많이 축적해 나가는 것이 나의 바람이자 목표이다.
아울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와의 실질적이고도 활발한 교류를 실현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이다. 현재 리켄은 한국의 연구기관 및 대학과 활발한 협력체계가 이뤄지고 있다. 리켄은 매년 양국에서 열리는 나노 코리아(Nano Korea, 한국), 나노 테크(Nano Tech展, 일본)에 교차 출전을 하고 있고, 아시아지역 연계대학원 프로그램에 부산대학교가 참여한 바 있다. 또한 한양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다수의 연구기관과 합동으로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고, 서울대학교의 나노응용연구시스템센터에 강사를 파견하여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 많은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가까운 일본에서 연구경험을 갖기를 바란다.”
- 정유진 인턴기자
- youjin@ewhain.net
- 저작권자 2005-08-1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