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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밸리에서 '새박사'하면 통하는 사람이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 연구실의 백운기(41) 박사가 주인공이다. 백 박사는 대덕밸리에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국내 조류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 박사를 안다. 그런 백 박사에게 새 말고 다른 취미가 있느냐고 물었으니.
사실 새박사의 원조는 경희대 윤무부 교수다. 자연사박물관장을 지낸 그는 각종언론에 보도되면서 새박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윤교수가 선배 새박사라면 백박사는 후배 새박사라고나 할까. 백 박사의 일과는 단순하다. 사흘이 멀다하고 들로 산으로 혹은 바다로 떠난다. 취미라면 여행이 더 어울린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20여년 가까이 새만 쫓아 다니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 안다녀 본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지리산 천황봉만 150여 차례 정도 다녀 왔으니 그야말로 전국 명산은 다 다녀본 셈이죠.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면 '여행 참 많이 다녀서 좋겠다'하면서 부러워 하겠지만 새들의 서식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 긴장과 집중의 연속이기에 명산 대천을 돌아다니는 일은 그에게 '여행'이 아니라 '탐사'다. 사실 그의 아내도 신혼시절 자신만 남겨둔채 탐사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따라 나선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는 아마 둘만의 오붓한 밀월여행으로 생각하고 따라 나섰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의 꿈은 산산히 깨져 버렸죠. 오로지 새에만 관심을 갖는 저에게 완전히 실망해 버려죠. 이후 아내는 아예 따라 나설 생각도 하지 않더라구요."
사실 조류탐사를 위해서는 비단 산뿐만 아니라 들, 바다 등 새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텐트 생활은 기본이다. 도한 들판에서의 생활은 각종 부상 위험에도 항상 노출되어 있는 등 자연의 신비를 벗겨내려는 강한 모험심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86년과 95년 두차례나 다녀온 경남 홍도의 무인도 조류생태 탐사는 소중한 삶의 경험 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절대적인 식수 부족, 50㎝ 미만의 풀 이외에는 단 한그루의 나무도 없었던 열악한 환경 등 1명의 동료와 함께 떠난 무인도 탐사에서 백박사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많은 질문들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무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나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면도를 하거나 세수는 꿈도 못꾸었죠. 맨바닥에서 잤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비를 맞으며 목욕을 하는 저의 모습 속에서 문뜩 체면과 위신, 스트레스 등에 지친 현대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백박사는 그러나 깊은 밤 찾아오는 가족 및 친구, 지인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통해 더불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인간사회의 모습도 새삼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부식을 구입하기 위해 육지에 나왔다가 다시 무인도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집채만한 파도 속에서 무수히 다가오는 삶의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따지자면 20여년 넘게 오직 새와 함깨 살아온 그이지만 ‘새박사’라고 불리우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겸손해 했다.
"전 세계에는 8,000여종이 새들이 있는데 직접 제가 관찰한 것은 동남아 및 국내에 서식하는 500여종에 불과 합니다. 종마다 틀린 서식 모습 등 해도해도 끝이 없는 분야가 바로 새 연구분야죠. 그만큼 제가 지금까지 한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백박사는 국내 조류 뿐만 아니고 외국의 조류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했다.
몽골,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들의 주류 역시 수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박사는 이들 국가의 조류학자들과의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할 생각이다.
"새는 서로 종이 달라도 공동생존을 위해 철저한 자기희생을 발휘합니다. 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만연된 인간 세상이 부끄러울때가 다반사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린 주부가 3명의 자녀와 함께 죽는 일이 말이나 됩니까."
취재 후기
백운기 박사는 1962년생으로 지난 86년 경남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조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잇따라 취득한 조류 전문 과학자다. 지난 92년부터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새박사’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국내 서식 조류들의 생태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발휘해 왔다.
충청권 일대 특히 최근 철새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대전의 갑천을 비롯한 금강일대와 충남 서산 태안지역에서 발견되는 철새와 다양한 조류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박사는 (사)한국야생동물연구소, (사)멸종위기야생동식물보호협회, 한국환경생태학회 등의 단체에서 이사로 활약하면서 멸종위기에 빠져 있는 야생 동식물 보호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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