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6월 스코틀랜드 북쪽 바다, 길이 12.2m, 직경 2.8m 크기의 원통 모양 구조물이 바닷속에 자리를 잡았다. 해저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해 냉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나티크 프로젝트(projet natick) 실증 테스트 현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위해 2015년부터 조그마한 데이터 처리기계를 바다에 빠뜨리면서 점차 그 용량을 늘려가고 있다.
# 진공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으로 유명한 가전 회사 다이슨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다.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이 제품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5년. 그동안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만들어진 시제품은 무려 5127개에 이른다.
두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수많은 시행착오’다.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이하 특보)은 2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서 진행된 ‘2019 국가 과학기술혁신 국회 대토론회’를 통해 시행착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산업전략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한국 경제 저성장, ‘개념설계’ 역량 부족 때문”
이 특보는 ‘한국 산업전략의 패러다임 전환과 지역혁신의 과제’라는 기조발표에서 “우리나라는 ‘중간소득의 함정’을 성공적으로 돌파한 유일한 국가에 속한다”라며 “특히 주력 업종 전환을 통해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1960년대 이후 농업 기반, 경공업, 중화학공업, 첨단 하이테크 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장기적 전망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점차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 특보는 이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구조적 문제”라며 “현재의 위기는 혁신역량이 떨어지고, 기업 경쟁력이 점차 하락하는 데서 오는 중장기적 위기”라고 밝혔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특보는 그 원인으로 ‘개념설계’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랜 시행착오 과정이 필요한 이유, 스케일업
이 특보가 소개한 개념설계는 ‘상품, 서비스의 전반적 설계도’이자 ‘가치를 정의하는 청사진’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한국 산업은 이러한 개념설계를 수입해 빠르게 실행하는 방법으로 발전해왔기에, 향후 혁신을 위한 동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 특보는 “한국 기업은 선진국의 개념설계를 역설계하거나,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술무역수지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독창적인 개념설계가 요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 이 특보는 “개념설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이를 고쳐나가는 오랜 시행착오의 과정을 견뎌내야 비로소 독창적인 개념설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할 수 있도록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스케일업(scale up)이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 기술 개발. 지난 2002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이 프로젝트는 2015년 마침내 첫 성공을 거두었으며, 현재도 스케일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스케일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이 특보는 이에 대해 “스케일업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라며 “실패 가능성까지 높기에 기업들이 쉽게 버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아이템과 아이디어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스케일업의 기본 소양이다. 이 특보는 “이러한 스케일업 경험은 매뉴얼을 통해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직접 해봐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오랜 축적의 시간이야말로 기술선진국의 힘”이라고 말했다.

‘축적의 속도’ 높이기 위한 방법들
문제는 선진국들이 가진, ‘오랜 축적의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는 점이다. 이 특보는 “우리는 축적의 ‘속도’를 높임으로써 이를 따라잡아야 한다”라며 “국가적으로 산업전략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도전을 장려하고, 그로 인한 실패를 뒷받침하며, 그 과정을 올곧이 축적해나가는 것이다. 이 특보는 재도전이 어려운 창업 생태계,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연구개발 투자 등을 언급하며 “각 분야에서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한 고수가 존중받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혁신지향 공공조달’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2018년 기준, 정부 및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123.4조 원 규모의 구매력을 활용해 혁신 기술 및 제품의 초기 시장 창출을 지원하자는 주장이다. 이 특보는 이에 대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어떤 물건을 구매하느냐에 따라 기술개발 혁신이 살아날 수도, 저해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규제와 관련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이 특보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담당 공무원이 규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해당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 입증책임제’ 등을 예로 들며, “단순히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아닌, 똑똑한 규제 업데이트를 통해 스케일업의 제도적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특보는 이어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TIPS) 강화 등 ‘스케일업 기반의 벤처정책’, 평생학습을 통한 기술감수성 높은 사회 구현 등도 한국 산업전략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키워드”라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 김청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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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9-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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