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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안전망 통해 창업 지원해야 [인터뷰 대담]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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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담>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박상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본지 편집위원)

              류준영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본지 편집위원)

              윤호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학술진흥본부장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 감수성, 기업가 국가, 혁신의 안전망, 규제 업데이트 시스템, 경력자 창업, 스케일업, 지역 딜…. 1시간가량의 인터뷰 동안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이 쏟아낸 ‘혁신 성장·발전을 위한 설루션’이다.

'축적의 시간(공저, 2015)', '축적의 길(2017)' 등을 집필하며 기술정책·혁신경제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친 이 특보는 지난 2월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 관련 자문을 목적으로 신설한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며 적잖은 화제를 낳았다.

'축적의 시간'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우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미래 전략에 대해 분석한 전문서다. 항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축적의 시간'을 읽고 감명을 받아 후속작 '축적의 길'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는 일화도 들린다.

이 특보의 저서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목소리는 ‘혁신은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축적된 고도의 경험지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이를 위해 이 특보는 정부의 혁신 성장 이니셔티브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방책을 '과학과 기술' 대담 자리에서 풀어놨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과 남은 3년, 그가 특보로서 제시한 새로운 ‘축적의 길’은 무엇일까.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특별대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특별대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박상욱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자문을 위한 경제과학특보 로 취임하신지 이제 석 달 정도 되셨습니다. '과학과기술' 독자들에게 경제과학특보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 자리인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정동 쉽게 말씀드리면 과학자의 아이디어가 경제적으로 꽃이 필 수 있도록 중간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산업혁신을 고민하고 있는 수석 및 보좌관들과 회의도 하고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고 응원이 필요한 때는 응원도 하고 있습니다.

류준영 문재인 정부가 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2 년 간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기조를 제시하며 정책의 방향성은 잡았다고 보입니다만, 특보님께서는 지난 2 년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이정동 저는 항상 ‘산업 혁신’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고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어떤 산업 분야에서 기발한 정책이 하나 있다고 해서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면 혁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중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최근 경제 관련 정부의 행보도 잦아지는 등 조금씩 긍정적인 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대략적인 평가입니다.

정책은 대통령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다양한 레벨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정책담당자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장기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서 어떻게든 방점을 찍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규제 완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 데 최근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몇 건의 실증 특례가 허락됐다는 건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이를 일상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한층 더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몇 주 전에는 금융위원회와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같이 모여 혁신 금융의 실천전략을 짜는 자리에도 가봤습니다. 이번 논의가 기존 정책적 시도와 조금 다른 점은 혁신금융을 이야기할 때 산업 관련 부처가 함께 참여했다는 겁니다. 금융과 산업이 따로 놀지 않고 같이 논의하자는 취지와 함께, 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발생하는 시행착오 과정에서 금융이 중장기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변화들이 향후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겠냐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혁신 지향적 공공구매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의 직·간접적인 공공구매 규모를 생각해 볼 때 조달청을 통해 나가는 돈만 해도 1년에 약 120조 원이 넘습니다. 공공구매가 우리나라 산업계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인데, 아직까지 공공구매와 혁신이 서로 연결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기술 선진국들이 쓰는 전략은 먼저 정부가 공공 서비스를 잘 제공하겠다는 목적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채택해주고, 그 과정에서 민간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쌓아서 결국 민간시장에서도 혁신이 이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공구매가 일종의 ‘스프링보드’ 역할을 하는 것이죠. 현재 범정부적으로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윤호식 하지만 오히려 현재 혁신이 필요한 부분은 퍼블릭 영역보다는 프라이빗 (민간부문) 섹터라고 이야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동 혁신을 만들어 내는 프라이빗 섹터에서의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기술이라고 하는 것도 한 번의 시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쓰면서 고쳐 나가고, 쓰면서 고쳐 나가고,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출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퍼블릭 섹터에서 먼저 채택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민간기업도 레퍼런스를 만들어가면서 혁신역량을 축적해가는 것입니다.

류준영 최근 청와대에 들어가셨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동 규제가 가장 큰 이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규제 완화, 규제 철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규제가 없으면 기술도 없습니다. 어떻게 자동차에 대한 규제 없이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달릴 수 있겠습니까. 규제는 기술과 함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규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기술이 빨리 발전해서 규제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규제를 없애라? 규제가 없으면 기술이 없고, 규제가 없으면 수출 도 못합니다. 그래서 규제는 철폐하는 게 아니라 ‘업데이트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업데이트의 투명성, 시스템화된 정도, 속도. 이 3가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박상욱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규제 개선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정동 제가 이해하는 바가 맞는다면, 지금까지 과거 정부에서 규제 개선에 접근하는 방식은 ‘규제의 숫자를 줄이자’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규제의 문제는 건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 규제를 바꿔 줘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옷을 만든다고 할 때 어느 정도는 아이가 성장할 것을 감안해서 여유 있게 옷을 만들어 놓는 식이죠. 규제는 조금씩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전 세계에 어디에도 뚜렷한 규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시행착오를 통해 쌓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에 맞는 규제를 조금씩 고쳐나가며 업데이트해 나가는 겁니다.

류준영 하지만 계속해서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동 규제 샌드박스는 결코 ‘완성’이 아닙니다. 규제 샌드박스의 취지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출발해서 시행해보고 어떠한 문제가 생기는지를 알게 되면 현행 규제가 맞다 아니다를 테스트해보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규제 업데이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하나 넣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검증되면 반대로 규제 하나를 빼는 식으로 규제를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이 사회 신뢰를 바탕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소립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만큼이나 협·단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협회·단체 가 규제에 대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의 경우 보일러를 설계할 때의 매뉴얼은 기계공학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보일러 규정이 왜 만들어졌냐면 1900년 초반, 뉴욕에서 대형 폭발사고로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사고를 방지하는 100페이지 정도의 매뉴얼을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규제라고 볼 수 있죠. 이후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한 줄 집어넣고,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 보일러는 만들 때 지켜야 할 룰이 몇만 페이지나 됩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그 중간 단계로써 그러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에비던스(증거)를 생성하는 과정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윤호식 일각에선 선진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규제를 더 많이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기존의 규제완화 노력이 효과가 크기 않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정동 기존에 규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성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몇 건의 규제를 완화했나, 규제 철폐 건수는 얼마나 됐느냐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류준영 규제와 관련해서 최근 버스나 택시 파업 등에서 보듯 사회 전반으로 기존 사업과 새로운 기술사업 간 갈등 역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동 과거와 비교해 보면 그런 현상들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는 게 맞습니다. 40년 전만 해도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서로 당황해하면서 답을 못 찾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갈등은 최근의 기술 변화 때문에 생긴 보편적인 문제로 앞으로 더 많이 발행할 것입니다.

보통 신기술이 사회에 잘 도입이 안 되는 이유는 기존 집단은 우선 신기술이 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신기술이 도입될 때 자신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저항감이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최근 택시 파업에 대한 갈등도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경제적 이해망 간에 충돌이 계속 생기는 것인데 그 빈도는 점점 자주 생길 수밖에 없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마치 손만 대면 여러 개의 지뢰가 터지는 듯한 상태인데 기술발전이 가속화되면 이런 현상이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50년 전과 달리 우리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부 바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에 모든 산업이 똑같이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또 이런 문제는 아주 상시로 일어날 것이지만 이런 현상들은 단순히 긍정적·부정적이라는 측면을 넘어 기술과 사 회가 공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술 발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두 갈림길이 있습니다. 먼저, 이런 기술이 안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우버’도 금지 하고, ‘원격의료’도 안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막기만 하면 국제 경쟁에서 우리나라만 갈라파고스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 해답은 이런 기술들이 들어와서 이해 관계망을 흩트려 놓는 것을 허용해 줘야 합니다. 기존 이해 관계자망에 묶인 사람 중 일부는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나올 겁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지점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기술들이 마음껏 시도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되, 밀려나는 사람들을 위한 이른바 ‘혁신의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혁신, 창조적 파괴 등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구조의 뒷단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실업 보조가 됐든, 재취업 교육이 됐든, 국가가 안전망을 쳐주고 적극 보조해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새로운 혁신의 혜택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같이 누릴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혁신의 앞단을 위해 정부는 규제 업데이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새로운 시도가 생겨나도록 정부 재정을 통해 마중물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합니다. 혁신이 생기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면 반드시 이해관계망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혁신의 뒷단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혁신 국가에서 국가가 할 일은 ‘창조적 파괴’의 앞단과 뒷단을 막아주고 챙기는 일입니다. 이것이 기술혁신의 시대에 정부의 역할입니다.

윤호식 특보님 말씀을 들으니 대통령께서 40~50대 경력자 창업 지원 체계도 마련하겠다는 의미 역시 이러한 안전망의 의미와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정동 과거 혁신의 속도가 빠르지 않을 때는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회적 안전망, 경제적 안정성을 어느 정도 높이거나 낮췄다는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정부의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곧 기업가적 시도를 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시도에 대해 열린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산업 현장에 나가 있는 40~50대 경력자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나 빅데이터 기술은 25세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45세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 관련 기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기술 지능이나 기술 감수성이 높아지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겠다는 욕구가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신기술로 인해 밖으로 밀려나고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체가 학습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류준영 일각에선 창업 지원책이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정동 여러 부처에서 창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좋다고 봅니다. 다만 창업에 대한 초점 자체를 일자리 대책의 한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혁신이 일어나는 중요한 통로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창업이 활성화되면 당연히 그 뒤에 일자리가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젊은 창업자들이 만든 공간에서는 오히려 일자리가 잘 안 생깁니다. 반면 중년 창업에선 일자리가 많이 생깁니다. 기업에서 20년씩 근무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갈고닦으며 준비된 사람이 창업을 시도했을 때는 이미 여러 인적 네트워크가 잘 닦여 있는 상태입니다. 금융기관에도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더 잘 알 것이고 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지는 것이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력자 창업’입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창업자의 나이는 평균 40대 중반이고,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창업자 평균 나이는 50대입니다. 회사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것이죠.

이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직장인들로 하여금 기업가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조직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저는 대한민국이 ‘기업가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업가 국가’ 프레임과 반대되는 것이 ‘종업원 국가’입니다. 몇몇 사람이 앞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거기에 취직해서 월급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용주와 피고용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개개인 모두 가 기업인으로 자기 분야에서 고유한 키워드를 만들어내고 서로 얼라이언스 한다 면 그것이 고수가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일 겁니다.

윤호식 과거 1960년대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통해 어느 정도 국 가 R&D가 축적됐고, 그 성과들이 스핀 오프되면서 반도체, 철광 등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었습니다. '축적의 길'을 쓴 저자의 시각에서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정동 조선이나 반도체 분야가 현재 겉으로 보기에는 위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일종의 사이클을 타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그동안 쌓아온 역량은 상당합니다.

산업 경쟁력은 그리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상황을 구조 조정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시장 조정기라고 봅니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측면은 보듬어줄 필요가 있지만, 주력 산업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 나 본 R&D 인력,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 모두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덜한데 정말 걱정이 되는 부분은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존 산업은 앞으로도 잘할 것 같은데, 산업 포트폴리오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류준영 새로운 시도가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수혈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대학교수들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와의 협업 등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동 혁신가적 도전은 대학이나 출연연 보다 결국 산업 계에서 먼저 나와야 합니다. 우리 혁신의 방식을 되돌아보면 과거에는 공급자 위주의 방식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면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면서 KIST 등에 연구를 지원하는 식이었죠. 그러니까 수요가 이미 알려져 있고, 선진국에서 일정 부분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방향을 정해 기술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을 개발한다고 바로 쓸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는 아이템 모두가 글로벌 프런티어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개발했는데 당장 쓸 곳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산업계와 연구계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있는 겁니다. 기술은 쌓여 있는데 산업계가 쓸 생각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산업계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욕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책에도 등장하는 사례이지만 지금 미국에서 하는 대부분의 기술발전 과정이 그렇습니다. 컴퓨터 CPU가 197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인텔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자계산기를 만들던 회사가 CPU라는 것을 만 들어줄 수 있냐고 오히려 인텔에게 요구를 해서 탄생한 제품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지금 없는 것은 인텔이 아니라 도전적 수요를 제기한 일본의 전자계산기 만드는 그런 회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부출연연구소가 쓰는 돈이 얼마입니까. 이공계 인력의 70~80%가 다 대학에 와 있습니다. 기술 공급은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SCI 논문이 몇 편이고, 특허 등록 수가 전 세계적으로 4~5위를 달리고 있는데 기술이 왜 없겠습니까. 앞으로의 문제는 오히려 수요를 일깨우는 일입니다.

윤호식  수요가 깨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정동 첫 번째는 지금 산업계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40~50대의 관리자들이 신기술 동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AI, 빅데이터가 뭔지 들어봤겠습니까? 금융권에서 핀테크 등의 신기술 얘기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료 산업에서도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안 변합니까? 결국 앞서 말씀드린 기술 감수성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이분들이 선도자가 되더라도 시행착오에 대한 겁이 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는 공공 부문이 대신 앞서서 선도 수요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현재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국가가 미국과 일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과기술'과 같은 잡지도 우리의 사고방식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채널이 될 수 있고 지속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박상욱 오늘 인터뷰를 통해 규제 문제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위한 귀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정동 현재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대통령께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방문해 연구원들을 만나며 “연구를 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는 언론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산업 난제에 도전하는 고난도 기술 개발 과제)’를 도입했는데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경력자 창업에 대한 지원, 공공 구매 부분에서 범정부적 대책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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