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담>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김문조 강원대학교 석좌교수(과학과 기술 편집위원장)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과학과 기술 편집위원)
윤호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학술진흥본부장
“고경력 과학자가 은퇴 이후에도 축적된 학문적 역량을 사회에 환원할 기회가 확대돼야 합니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연구자들은 대학에서 65세,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61세에 정년을 맞는데, 적어도 70세까지는 신체적으로 활동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원장은 “한평생 평균 50~100억 원의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한 경험과 노하우가 아깝지 않냐”면서 “나이 때문에 연구 현업을 떠나게 돼 축적된 지혜가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 원장은 한림원의 주요 현안으로 “이공계 병역특례 유지 및 개선, 지적재산권 이전 시 연구자 몫 확대 등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방부가 이공계 출신들에게 부여하던 병역특례제도 폐지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한 원장은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박사과정 1학년 시기에 전공보다 영어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현재의 병역특례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의 기술료 수입이 저조한 것은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원장은 “직무발명보상금에 적용되는 세금을 현재의 근로소득에서 기타소득으로 전환하는 등 과세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각국 한림원과의 교류를 비롯한 민간 차원의 과학 외교도 과학기술한림원이 맡은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지난 4월에는 나흘간 국제한림원연합회(IAP, InterAcademy Partnership) 컨퍼런스 및 총회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열렸다.
한 원장은 “노벨상 수상은 과학기술계의 숙원이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10년 이내에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한림원의 IAP 컨퍼런스 및 총회는 국제적 네트워크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의 노벨상 수상의 기반 마련에 일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박막트랜지스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1971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2010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등으로 연구자로서 탁월성을 인정받았으며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맡았다.
김문조 이번 3월부터 앞으로 3년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하 한림원)을 이끌어 나가게 되셨습니다. 그간 태양전지, 평판 디스플레이 연구자로 세계적인 업적을 쌓아오셨고 전 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 한국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국가 과학기술위원회 정책위원, 삼성전기 이사회 의장 등 산·학· 연·정을 아우르는 이력을 두루 거치셔서 앞으로의 한림원도 잘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취임 소감을 먼저 부탁드립니다.
한민구 한림원장의 취임은 더없는 영광이지만, 동시에 한림원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큽니다. 이러한 책임감을 원동력 삼아 교육과 연구 현장에 서의 경험, 산업계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한림원의 발전, 나아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림원 회원인 석학들의 고견이 정부 정책으로 이어져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대변할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으로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지성의 산실인 한림원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인 석학의 구심체로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연구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시며 외부에서 한림원을 바라봤을 때와 실제 기관장이 되신 후 내부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한림원과는 느낌이 다르실 것 같습니다.
한민구 1994년에 한림원 회원이 되었고 그간 다양한 한림원 활동에 참여를 해왔지만 이제 원장이 되니 편안한 마음만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보다 집약된 의견을 계속 개진해야 하는데 회원들의 의견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중지를 모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가 한림원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연구 원장님께서 재임 기간에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라는 미션이 있다면 무엇을 첫째로 꼽으실 수 있을까요?
한민구 한림원의 정회원은 약 500분인데 이분들은 모두 해당 전공 분야의 경력이 20년 이상으로 각 분야에서 현저한 업적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임기가 만 70세가 되면 종신회원이 되는데 이러한 고경력 은퇴과학자분들의 역할 확대를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습니다. 학계의 경우 대부분 65세가 정년인데 사실 62세 정도되면 은퇴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60대는 예전과 다르게 건강은 물론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고 어쩌면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때문에 이분들의 축적된 학문적 역량이 지금보다도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환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의 전공 분야도 이학, 공학, 농수산, 의약학, 정책학부까지 다양한데 이분들이 재능기부를 비롯하여 사회 곳곳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을 발굴하고 사업을 유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김문조 최근 언론 기사를 보니 젊은이들은 유동지능이 발 달해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결정지능이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원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한림원의 회원분들은 예비 과학자들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 판단 결정을 보조할 수 있는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사회변화의 속도가 빨라져서 정작 중장년층들은 자신이 하는 일들만으로도 정신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데 비교적 여유가 있는 중·노년 세대들 중심의 한림원 회원분들이 지식과 마인드를 전수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연구 원장님께서 고경력 과학자 활용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시니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언스올(www.scienceall.com)'이라는 과학전문 포털사이트가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과학숙제를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사이트인데 한 예로 청소년들이 궁금증을 올리면, 그것에 대해 한림원 회원님들이 답변을 달아주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사이언스타임즈(www.sciencetimes.co.kr)'라는 과학전문 미디어도 있는데 한림원 회원님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슈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칼럼 형태로 글을 기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도 한림원 회원분들께서 여러 가지로 과학 대중화에 한몫을 해주실 방법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난 2월 28일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과학자의 긍지를 세워나가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말씀이 주요 언론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민구 우리 국민의 여망인 노벨상 수상은 과학기술계의 숙원입니다. 노벨상 수상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분들은 10년 이내에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된다면 우리 한림원 회원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흘리는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국제 사회에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량을 알리고,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림원이 이러한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선진국 중심의 국제적 네트워킹을 추진하여 국제협력 및 교류 활동을 강화하고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기반 구축에 앞장서겠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IAP 컨퍼런스 및 총회 외에도 미국 한림원과 젊은 과학자 중심의 학술교류 행사를 개최한다거나 영국왕립학회와 양국을 오가며 2차례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 있습니다. 또한, 재작년에 이어 2020년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역시 개최를 준비하기 위해 스웨덴 노벨미디어와 지속해서 소통하고 있습니다.
최연구 일본이 매년 노벨상을 받다 보니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이 나오는지 조급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본의 경우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오랜 과학기술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학사원은 1879년, 일본학술회의(Science Council of Japan)는 1949년 설립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한민국학술원이 1954년, 한림원이 1994년 설립이 되었습니다.
한민구 스웨덴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아카데미가 한림원과 비슷한 성격의 기관입니다.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 일본학술회의(SCJ), 중국과학원처럼 각국의 문화에 맞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 집행기구도 각기 달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왕립학회원이었다고 하니 권위의 측면에서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과학기술력이나 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미 전투기, 전함, 잠수함을 만들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20년 전, 30년 전과 지금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 의 업적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최고 과학기술 저널에 우리나라 30대 과학자들의 논문이 많이 게재되고 있고 노벨상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여러 학자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쉽게 수상권 근처에 갔지만 받지 못한 예도 있었고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희망을 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뿌려야 합니다. 노벨상을 타는 전략도 중요하겠지만 세계적으로 우리 연구가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최연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가장 중요한 설립 목적이자 주요 역할은 정부 기초과학진흥을 위한 정책 자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체 R&D 예산이 20조 원을 돌파했지만, 과학기술 선도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또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관련하여 과학 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장님께서 보시기에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거나 시급성이 있는 사안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민구 먼저 저로서는 정부가 연구자 중심의 국가 연구·개발 혁신정책을 통해 R&D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시도 자체가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전문성과 도전성이 중시되고 실패 가 용인되는 신뢰 기반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연구자들이 중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창의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국 가 R&D 예산이 20조 원까지 증액된 것은 대단히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향상과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과학기술계에 거는 기대의 무게와도 같 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과학기술 선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긴 안목으로 기초연구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년 후, 20년 후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R&D 방향성을 설계해야 하 는데, 그에 대한 방향성은 ‘기초연구진흥’과 ‘대학교육혁신’ 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림원에서는 과학 난제 극복을 위한 도전적 융합연구 활성화 기획연구(주관부처 : 과기 정통부 융합기술과)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과학 난제를 발굴하고 전문가 숙의형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설계·도입함으로써 도전적 융합연구 활성화 추진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국민들의 삶의 질과 관계되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중점을 두어야 할 사안이라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먹거리 문제, 의약품 안전관리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학 기술계는 해당 분야의 원천기술 개발과 함께 어떻게 미래 신산업 동력으로 육성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더불어 국민이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와 의약품을 섭취할 수 있도록 올바른 과학지식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김문조 이와 관련하여 1996년부터 시작된 대표적 행사인 '한림원탁토론회'에서도 그간 많은 주제와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을 모시고 여러 해법을 제안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 130회 가까이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진행해오셨는데, 향후 계획하고 계시는 주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민구 저는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1000여 명에 이르는 세계적인 석학 회원들의 전문성과 국제적 경험, 다양한 경력 등을 바탕으로 한국 과학기술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한림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이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단계로 병역특례, 지적재산권 문제, 4차 산업혁명과 농업교육 등 과학기술계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부터 차근히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한림원탁토론회에서는 과학기술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모으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윤호식 과학문화 대중화 및 확산과 관련하여 원장님께서 조언해주실 부분이 있다면 고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민구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과학기술계 전체가 함께해야 할 숙제입니다. 먼저 우리 과학기술계는 국민에게 존중받는 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미세먼지, 플라스틱 이슈처럼 국민 생활 안전에 직결된 문제들에 대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과학적 지식은 무엇이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과학문화 교류 활동을 계속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문조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조완규 초대 원장님께서 처음 한림원을 발족할 당시 외국처럼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그냥 쓸까 하다가 한림원으로 결정을 했다는 소회를 접했었는데 현재 한림원이 명칭대로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 같고, 무게감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장님 말씀대로 한림원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 원로의 역할은 물론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커리어 지원, 교육 분야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 해결 등 다 양한 영역에서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원장님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류준영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과학과 기술 편집위원)
- 저작권자 2019-05-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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