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파장에 따라 색을 구별하는 감각을 ‘색각’(色覺)이라고 한다. 색각에 이상이 생겨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색맹’(色盲)이라고 하고 그 정도가 다소 약한 것을 ‘색약’(色弱)이라고 한다. 색각 이상자는 흔하다. 우리나라는 색약을 포함할 경우 10명 중 1명 꼴이라는 보고가 있다.
때문에 색각 이상자에 대한 사회적인 제약은 거의 없다. 하지만 색각 이상자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TV에서 붉은색과 파란색이 겹쳐진 도표나 막대그래프를 보면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홍진우 박사(방송미디어 연구그룹장)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해 헷갈리는 색각 이상자들에게 희망을 준 과학자다. 홍 박사는 지난 2003년 색각장애인을 위한 색상 변환 기술을 개발해 관심을 끌었다.
개발에는 홍 박사 팀과 정보통신대학교(ICU) 노영만 교수, 그리고 (주)인터정보가 참여했다. 색상변환기술은 TV나 컴퓨터 등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들을 이용할 때 색각 이상자들도 정상인에 가깝게 색깔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다. 전 세계적으로 홍 박사팀이 처음으로 개발했다.
“21세기는 컬러 시대이고 영상 시대입니다. 수많은 디스플레이 기기들이 범람하는데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색각 이상자들에게는 굉장히 큰 불이익이지요. ”
지금까지는 색각 이상자가 굳이 색깔을 구별하려면 보정용 특수 안경이나 필터 등의 특별한 장비를 사용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런 장비들은 원본의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줘 정상인식이 가능한 부분을 왜곡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일반 TV를 보면서도 색각 이상자들이 정상인처럼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색각 이상으로 인한 정보 손실도 막을 수 있고요, 색각 이상 때문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던 색각 이상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술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장비전(NAB)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런 평가를 받자 이 기술을 삼성전자가 채택했다. 이 기술은 최근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벌이고 있는 `DNIe` 칩(버전 3.0)에 녹아들어 있다. 현재 삼성이 생산하는 대부분의 수출용 PDP TV와 LCD TV 등에 적용됐다. 기술이전 1년이 채 안된 상태에서 삼성이 대량 양산제품에 적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삼성전자는 PDP와 LCD TV에 이어 올 5월에는 이 기능을 탑재한 PC 모니터도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휴대폰과 PDA(개인휴대단말기) 등 모든 영상기기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 기기들에는 모두 적용이 가능합니다. 모든 영상 기기들에 적용하게 되면 색각이상자들도 더이상 색깔을 구분하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TRI가 이 기술을 중계 업체에 이전해 받은 공식 이전료는 3천만원 수준.
하지만 앞으로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전세계에서 제품이 팔릴 때마다 추가로 로열티를 받을 예정이다. 또한 이 기술은 기반기술이기 때문에 삼성전자 이외의 기업에도 이전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정보화격차 해소이다. ETRI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번 기술은 색각 이상자들의 정보화 격차 해소에eh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박사는 정부가 권고사항으로 내놓고 있는 정보화 격차 해소 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권고 규정을 강제 규정으로 바꿔, 시각 장애인들이나 청각 장애인, 색각 장애인들에게도 정보화기기를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권고가 아닌 강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은 제품 개발전에 이런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거든요. 지금이라도 강제규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 구남평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5-04-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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