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있으면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다른 나라뿐 아니라 우주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답은 과학 기술이다. 공감하시는지? 그런데 여긴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이용 가능한 형태의 기술이어야 할 것.
“기술과 자본의 존재가 원조국가와 수혜국가의 빈부격차를 더 크게 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기술은 오로지 자본의 성장을 돕고, 어떤 기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기술을 원조해주는 국가는 그 기술과 자본을 통해 점점 더 성장하고 부유해진다. 하지만 수혜 국가에서는 똑같은 기술과 자본이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두 나라의 기술과 자본에 대한 수용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해 사회, 국가 간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용 능력에 맞춘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가 사용되고, 지역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제공되었을 때 기술은 진정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수용 능력에 맞춰 적절한 방법으로 기술을 전달해주는 매체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국제 비정부 기구 ‘국경 없는 공학자회(EWB; engineers without borders)’가 그들이다.
국경 없는 공학자회는 2016년 현재, 45개국에서 35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2011년 11월 세워진 카이스트 지부가 있다. 국경 없는 공학자회 카이스트지부의 회장 박혜림씨는 “꼭 낙후지역에 쓰인다고 해서 적정기술인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두 적정기술”이라고 한다.
국경 없는 공학자회의 프로젝트는 5년을 주기로 진행된다. 새로운 기술을 전달하고, 그 기술이 해당 지역에 충분히 정착하여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 이용할 수 있게 되면 프로젝트가 종료된다.
국경 없는 공학자회 카이스트 지부는 2012년부터 지난 2월까지 네팔 산간지역에 위치한 난기마을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난기마을은 네팔 제 2의 도시 포카라와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지만 가파른 산길을 수천 미터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서 외부에서 기술이나 자원이 거의 유입되지 못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국경 없는 공학자회 카이스트 지부의 회원들은 소형 수력 발전 시설, 주거시설, 기상 관측, 주민 복지, 과학 교육의 다섯 가지 사업을 수행했다.
이 중 소형 수력 발전기 설치 사업에 가장 많은 기술력이 들어갔다고 한다. 낙차와 유량이 풍부한 히말라야 산악 지역의 특성을 살려 설치한 소형 수력 발전기는 2012년 첫 답사에서 설치할 당시 그 출력이 90W(와트)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마지막 답사에서는 추가로 2호 발전기를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1호 발전기와 2호 발전기를 동기화시켜 그 출력이 무려 800W가 되었다.
과학 교육팀의 활동도 주목할 만 하다. 이들은 난기마을 유일의 교육기관인 히만찰 학교의 학생, 선생님과 함께 워크샵을 열어 마을이 가진 기술적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외부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현지 주민이 직접 문제 제기와 해결책 마련에 참여하게 되면 그 결과물이 더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박혜림씨는 “국경 없는 공학자회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외부와 단절된 지역의 사람들이 과학 기술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 문명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는 분명 불편하게 보이지만, 그런 삶의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생활을 좀 더 낫게 할 기술이 있는지 관심 조차 가지지 않는다. 먼저 그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 바깥의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필요가 발생하고, 필요가 발생해야 스스로 기술을 배우고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외부와 단절된 기술 낙후 지역에 기술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 이게 바로 국경 없는 공학자회가 하는 일이다.
기술 발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그럴수록 기술로부터 소외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들이 고립된 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공학자들일수록 이들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생 알지도 못하고 눈으로 직접 볼 기회는 더더욱 없었을 경험을 했다”
사실 과학, 또는 공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과학 기술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는 많다. 또,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논의하고 생각할 자리와 기회도 생각보다 꽤 많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넘어서 내 손과 발을 직접 움직여 실행하는 자리에 있을 기회는 정말 없다. 박혜림씨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공학자들이 이 같은 움직임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박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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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3-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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