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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은영 객원기자
2016-01-29

사지에서 돌아온 '백만원의 기적' 실패 딛고 리스타트(4) 유정무 아이알티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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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먹을 욕을 그 때 다 먹은 것 같아요.”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가방 하나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50대 중년의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취객은 반말에 욕을 서슴지 않았다. 운전을 하다 뒤를 돌아보면 “뭘 쳐다보느냐”며 쌍욕이 오갔다. 40분을 내리 욕을 들었더니 팔이 후들거려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불꽃감지기 개발 기업 ㈜아이알티코리아 유정무 대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활고로 대리운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죽으려고 6층 난간에 서 본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한 전화 한 통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그 가능성을 두드리는 자는 드물다. 유정무대표는 끊임없이 정신력을 강조했다. 인간은 누구나 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말하는 유대표는 오늘도 무한긍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김은영/ ScienceTimes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그 가능성을 두드리는 자는 드물다. 유정무 대표는 끊임없이 정신력을 강조했다. 인간은 누구나 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말하는 유대표는 오늘도 무한긍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김은영/ ScienceTimes

요즘 유 대표는 신바람이 절로 난다. 2014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불꽃감지기는 출시한 지 1년 10개월 만에 3천대가 팔렸다. 특수사업장에 들어가는 불꽃(화재)감지기는 지멘스 화력발전소, 포항제철소 등 대기업은 물론 국토해양부, 문화재청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200여 군데의 영업 선을 확보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요르단과 스웨덴 등 유럽, 중국에서도 반응이 좋다. 지난 2013년 9월 사업을 시작한 이래 매출액은 16억원에 달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사업에 대한 열망 키워

그는 삼성전관주식회사 공채 출신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엔지니어로 입사해 기술 영업을 뛰었다. 한국통신, 자동차운전면허장 등 수십억대의 계약 매출을 올렸다. 공로상, 사업부 최우수상 등 사내 우수상을 휩쓸었다. 인사고가도 최고였다. 단연 특진 감이었다.

하지만 유 대표에게는 당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허전했다. 저 윗자리까지 올라가봐야 월급쟁이 아닌가? 그러다 밀려나면 나는 50대에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 좋은 직장 왜 나가냐? 왜 나가는 지 이해를 못하더라.”

하지만 그럴수록 ‘내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갔다. 자신감도 있었다.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못하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92년 창업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대리점 사장에서 컴퓨터 조립회사 사장으로 명함이 바뀌었다. 그 힘들다던 IMF 시절도 잘 넘겼다. 탄탄대로였다.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왜 그랬을까. 삶이 지루했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 49살. 무얼 해도 흥이 나질 않았던 때였다. 그즈음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지인이 좋은 사업이 있다며 투자를 권유해왔다.

당시 지인은 중국 산동성 위해시에서 부품을 표면처리 하는 가공업을 하던 중 사업이 여의치 않자 유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따져보니 중국에서의 시작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 대표는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 들었다.

결실은 달콤했다. 2007년도에 20억원 매출이 났다. 이제 1~2년만 더 하면 평생 먹고 살겠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 날’은 오지 않았다. 동업자의 배신으로 하루 아침에 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다. 사업 허가는 취소되었다.

이렇게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판사판 죽기 살기로 중국 법원에 출퇴근 도장을 찍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소송은 승소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 중 동업자였던 지인은 남은 돈을 다 빼돌렸고 직원들도 뿔뿔히 흩어진 상태였다. 가방 한 개를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재기하라고 친척들이 돈을 십시일반 모아주었다.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결국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구청은 물론 환경보호국 국장과의 담판을 짓고 다시 한번 공장 문을 열었지만 동업자가 진 빚을 갚으라며 깡패들이 들이닥쳤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것만 잡으면 그것만 잡으면” 하면서 계속 이어왔던 중국 사업이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미 집도 땅도 전부 경매에 넘어가버린 상태였다. 가족들은 전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진심을 다했더니 상대방도 감동, 100만원의 기적 생겨

기구했다. 중국에서 죽으려고 6층 아파트에 올라갔다가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노모를 생각하라는 부인의 간절한 말에 다시 한번 살기를 결심하고 한국땅을 밟았다. 먼저 알아 본 건 월세방. 단돈 만원이 아쉬워 대리 운전을 시작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밤을 새고 나오면 노안에 눈까지 부셔 어지러웠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반문하던 유 대표는 ‘정신력’에 집중했다. 손을 움직여 뇌를 개발한다는 책을 보고는 저자까지 찾아가 방법을 캐물었다. 그만큼 절박했다고 유대표는 회고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수중에는 100만원이 전부였다. 유 대표는 중소기업청에서 실패경영인들에게 지원해주는 ‘재창업 R&D 지원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금 4900만원을 받고 나서도 계속 중소기업진흥공단을 찾았다. 도합 8억 2천만원이라는 돈을 지원받았다.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은 결과였다. 연구개발에 매진해 특허를 4개나 냈다. 사업계획서를 계속 업그레이드 했다. 술도 안마셨다. 6천원짜리 부대찌게 먹은 영수증도 다 첨부했다. 담당자가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창업할 때 아이템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못한다며 핑계를 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멘탈(정신력)’이었다.  유 대표가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돌아와서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신력이었다.

유 대표는 “실패해도 또 긍정해라, 자신의 잠재되어 있는 90%의 또 다른 나를 믿고 또 믿어라”며 예비창업자들에게 조언했다. 반드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시작이 반임을 유 대표는 믿는다.

김은영 객원기자
binny98@naver.com
저작권자 2016-01-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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