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대학 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48)는 “이런 산학협력도 있다.”는 샘플을 보여주는 과학자이다. 자기 학과 졸업생을 취업시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학과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철저하게 고객만족의 마음가짐을 실천했다.
인하대학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뒤 벤처기업을 운영하다가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대학이 대전에 있는 전문대학인 대덕대학이었다. 전문대학이라는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 교수가 한 일 중 두 번의 장면은 특히 치열하다.
첫 번째 장면.
그는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을 한 권 샀다. 그 책에는 거짓말을 한 간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간디는 아버지를 속였으나, 아버지는 자신을 속인 아들을 꾸짖는 대신, 간디는 차를 타고 가게 하고 자신은 걸어갔다. “아들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 아버지는 차를 탈 자격이 없다”면서. 마음이 너무 아픈 간디는 평생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 밑줄을 치고는 국내 한 타이어 회사의 중역에게 전달했다. 편지를 한 장 동봉했다.
취업제한 건 기업에 ‘마시멜로 이야기’ 책 사서 보내
‘우리 졸업생이 타이어회사에서 처음으로 데모한 것은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학과 졸업생 취업을 제한하는 것이 세계적인 회사가 결정할 일인지’를 물었다. 위대한 지도자를 낳은 간디 아버지 같은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지를 요청한 것이다.
학과의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던진 승부수이다. 며칠 뒤 책을 받은 회사 중역은 젊은 교수를 불러 차를 한 잔 나누고 책 잘 읽었다고 격려했다. 취업제한 조치가 풀린 것은 물론이다. 2007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덕대학에 타이어학과가 설립된 것은 2002년이었다. 다소 운이 좋았다. 딱히 타이어 전공 교수가 없다보니 그는 36세에 막 생긴 타이어공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학교에서 500m도 안되는 거리에 타이어 연구소가 있었다. 타이어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실험장비는 거의 생산설비 수준이다. 보통 대학에서는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실험실을 만들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 타이어 회사는 자기 회사 연구소 인근에 있는 대덕대학에 타이어공학과 설립을 요청했다.
이는 타이어 생산 공정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계부품은 금형대로 정확하게 찍어 나오지만, 타이어는 만두를 빚듯 풀빵 찍어내듯 생산하기 때문에 기계부품에 비해 생산품의 오차율이 다소 크다. 설계인력 못지않게 생산인력의 능력이 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 그래서 결국 이 타이어 회사는 생산직에도 고급인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감하게 타이어공학과 설립을 의뢰한 것이다.
이호근 교수는 “이같은 전략이 통해서 당시 세계 8, 9위 수준이던 타이어 회사 규모가 지금 세계 5, 6위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분석했다.
학과장을 맡은 첫 해 이 교수는 교재만 6권을 개발했다. 강의할 인력도 찾기 어려워 타이어 회사 경력연구원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맡겼다. “유모가 자녀 키우려고 젖동냥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연구원들이 직접 대학에 와서 강의를 맡았으니 글자 그대로 실감나는 산학협동이 이뤄진 셈이다. 1, 2회 졸업생들은 모두 타이어회사에 취업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한 졸업생이 사상 처음으로 사내에서 데모를 하는 사건이 벌이지면서 졸업생 취업이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뚫기 위해 마시멜로 작전을 펼쳐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두 번째 장면.
몇 년 뒤 2007년, 이 교수는 학과의 또 다른 도약을 준비했다. 졸업생 취업을 위해 업체들을 돌아다니고 사정하는 관계에 변화를 주려면,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가 필요하다는 선배의 조언에 이 교수는 120% 반응했다. 타이어든 자동차든 소비자들의 반응이 매우 중요한 업종이다 보니, 이들 기업에게 영향을 미칠 유력한 기관은 언론이었다.
언론에 본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동차관련 전문사이트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타이어 전문 교수로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방송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이 교수를 찾기 시작했으나, 대전이라고 하면 난색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기자 만나러 대전서 KTX 타고 서울 달려와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찾으면 대전에서 서울로 달려가야 했지만, 기자가 미안해 하지 않고 교수도 자존심을 지킬 그런 핑계가 필요했다. 어느 날 비슷한 전화가 왔을 때 이 교수는 “마침 삼성교통안전연구소에서 회의가 있다.”고 둘러댔다.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린 뒤 삼성화재 건물 후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들어온 기자를 만났다. “회의가 막 끝났다.”고 상대방을 안심시키면서, 10년 뒤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사람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이호근” 이라는 이름을 알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과학자가 뻗어나갈 방향은 여럿이지만, 산학협력의 경우 연구개발과는 조금 다른 궤적이 필요하다. 뿌리가 든든한 산업과 연결되어야 하고, 운도 어느 정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산업체와 힘겨루기를 해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 뚝심을 보여줘야 한다.
어느덧 타이어 하나로만 시작한 대학은 타이어와 자동차 두 부분으로 확대됐다. 타이어를 더 잘 이해하려면, 자동차가 움직이는 전체 시스템을 알아야 효과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수석입학이나 수석졸업은 주로 타이어학과에서 나올 정도로 학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해졌다.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타이어학과로 들어오는 일도 가끔 볼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이 대한민국의 중요한 주축이다 보니 영향력이 커지는 것 만큼, 이 교수는 종합적인 분석을 하려고 노력한다. 폴크스바겐이 자동차 연비를 조작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문이 일어난 직후 이 교수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방문해서 놀란 일이 하나 있다. 독일 언론의 그 어느 누구도 ‘폴’이나 ‘V’자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자동차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비슷하다. 국민들이 기간산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기업체의 보다 친화적인 경영방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5-12-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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