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은행에 미래를 위한 자금을 미리미리 저축하듯, 바이오 분야에서도 연구에 필요한 소재를 저축하는 연구소재은행이 있다. 연구소재은행은 이름 그대로 연구소재를 보존하고 연구자에게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균주와 인체조직, 식물, 미생물, 물리화학물질 등 연구소재를 보관해 필요한 연구자에게 분양하고 기술자문, 시험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소재중앙센터(센터장 이연희 서울여대 교수)가 27일 국회에서 연구소재지원사업 20주년을 기념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생명자원의 보존방안을 논의하고 활용 성과를 전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27일 심포지엄을 앞둔 이연희 연구소재중앙센터장을 만났다. 이연희 센터장은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때, 바이오 경제의 근간이 되는 연구재료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연구소재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연구소재(Research Resources)’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과 비생물, 그리고 이들에 관한 정보까지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과학 전반의 연구개발에 필요한 재료들을 말하죠. 개인 연구자들이 많은 연구소재를 직접 구하고 관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는 연구소재를 확보하고 보관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연구소재를 보존하고 연구자에게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연구소재은행이죠. 균주, 인체조직, 식물, 미생물, 물리화학물질 등 연구소재를 보관해 필요한 연구자에게 분양하고 기술자문, 시험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개인 연구자가 수집한 각종 소재들은 자칫 쉽게 사장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구소재은행의 역할은 중요하다. 연구자들로부터 각종 소재들을 기탁 받아 대신 관리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기 때문이다. 시중의 은행이 돈을 저축하기도 하고 이를 필요한 사람한테 빌려주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연구소재은행은 돈 대신 연구재료들을 모으며 이것을 필요로 하는 연구자에게 분양해 준다.
"이미 실험에 쓰이는 각종 시약과 재료는 기업들로부터 구매해 사용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취급 못하는 연구재료도 굉장히 많죠. 저희 연구소재은행은 바로 이러한 재료들을 다룹니다. 연구결과의 정확성, 재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료가 되는 연구소재의 신뢰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검증된 전문 연구원이 국제기준에 따라 표준화된 절차와 방법으로 소재를 관리해야 하고, 꾸준한 품질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개인 연구자들이 자신의 실험에 필요한 소재를 직접 배양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연구소재 없이는 연구 자체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소재은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내성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만드는 화학자가 스스로 각종 세균을 분리․ 동정하고 배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구소재은행으로부터 원하는 종류의 내성세균을 분양받는다면 몇 년 걸리는 세균 구하는 일을 몇 일만에 해결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연구소재의 종류와 정보, 분양받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했습니다. 개별 은행들이 홈페이지와 DB를 개발해서 갖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죠. 특히 분양하는 연구소재들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너무나 큰 책임을 지어야 하는 구조기 때문이에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전반의 운영관리가 필요했고, 개개 특수한 분야의 소재를 다루는 은행마다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관리지침이 있어야 했습니다. 연구자들이 소재를 쉽게 찾고 분양받을 수 있도록 어느 은행에서도 같은 절차를 통해 소재를 쉽게 분양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의료, 환경 등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바이오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이연희 센터장은 "이러한 바이오 경제를 위한 모든 연구는 연구재료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연구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36가지의 연구소재은행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의미였다.
이연희 교수는 "적어도 100개 정도 다양한 연구소재은행이 운영돼야 한다"며 "연구소재은행은 기초연구가 바로 산업체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의 위상
"연구소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연구소재은행은 아시아권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심지어 미국에서도 우리를 벤치마킹하고 있죠. 국제회의에서는 항상 한국의 사례가 잘 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가이드라인 뿐 아니라 은행원 교육과 운영시스템이 효율적이어서 태국, 중국 등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운영경력이 오래된 연구소재은행들은 선진국 어떤 나라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국내 연구소재은행의 역할이 더욱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세균 한 개를 개발해 분양하기까지 대략 97개의 문서가 필요한 만큼, 이러한 번거로운 절차를 한 나라가 다 하기보다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으로 준비한다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자들과 산업체들이 국외의 다양한 연구소재를 사용하도록 생물자원이 풍부한 아시아국가간 협력은 필수적입니다. 2009년 한․중․일이 중심이 돼 ‘아시아 연구소재은행 네트워크'를 설립하고 제가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아시아는 유럽이나 미주지역과는 달리 대부분 국가에서 지원을 받으며 비영리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는 14개국 97개 기관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매년 국제학회를 개최해 자원의 수집, 관리, 분양 등 소재은행 운영에 필요한 기술은 물론 정보관리시스템 개발, 법률, 규정 등에 관해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는 ODA사업을 수행하면서 탄자니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지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탄자니아 최초의 소재은행을 2013년도 설립해 희귀한 생물소재들을 보존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연희 센터장에 따르면 2014년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따라 생명자원 보유국의 자원 주권이 인정되면서 해외 생물자원 사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생명연구자원 확보 및 활용을 위한 국가차원의 대응이 시급해짐에 따라 국내 연구소재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연희 센터장은 "앞으로 개발도상국 과학기술 지원과 선진국의 소재은행 및 연구기관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희귀하고 양질의 연구소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날로 치열해지는 생물자원 시장의 선점을 위해 각국에서 표준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연구소재중앙센터를 중심으로 해당 분야의 국제표준 수립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개발해야 할 표준과 기술이 많습니다. 우리 실정에 맞는 방향으로 개발된다면 국내 연구소재은행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다양한 연구소재를 연구자는 물론 산업체에 지원해서 기초연구가 직접 산업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고자 합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5-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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