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0일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49번째 개원기념일이었다. 1966년 설립된 KIST를 시작으로, 과학 입국이라는 국가적 비전을 품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일구어온 정부출연연구소의 역사 역시 어느덧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0년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핵심에 과학기술이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간 KIST를 포함한 출연(연)들은 6~70년대 국가 기간산업을 위한 중장기계획 수립, 8~90년대 주력 산업제품 생산에 필요한 요소기술의 개발을 지나, 2000년대부터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위한 원천기술 선도연구에 주력하며 수많은 성과를 창출해왔다.
이러한 노력 등으로 인해 우리의 과학기술 역량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 볼 수 있다. ‘14년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국가경쟁력 중 과학경쟁력 6위, 기술경쟁력 8위이며, KISTEP의 과학기술혁신 역량지수도 세계 7위에 이른다. 투자 규모로는 세계 6위이며,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세계 정상권이다. R&D 성과 측면에서도, SCI 논문수 세계 10위, 특허 출원·등록건수 세계 4위 등 양적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논문인용건수 30위, 기술사업화 비율 43위, R&D 대비 기술수출 비중 26위 등 질적인 측면이나 산업경제적 측면에서 보는 성과는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과학기술의 성과, 산업계의 요구에 부흥하는 성과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 이상 양적인 성장에만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경제 환경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약화되고 중국과의 격차도 감소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제조업 규모는 ‘04~’12년 동안 연평균 12% 성장했으나 우리나라는 5.7%에 그쳤다. 최근 10년(‘01~’13)간 우리나라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3%에서 정체된 반면 중국은 3.9%에서 12.1%로 급성장했다. 또한 2000년대 국내 대기업이 기술혁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반면, 기술집약형 창의적 벤처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거의 부재할 만큼 벤처기업 생태계가 취약하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샤오미, 화웨이 등 신생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왔다.
한편 국내적으로도 청년 일자리 부족, 저출산․고령화 도래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이슈들은 더 많은 복지와 더 많은 배려를 수반해야 하지만, 이는 우리의 현재 재정 여건상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는 어려운 경제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성장 활력을 확보하는 등 창조경제의 구현을 위해 혁신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여 왔다. 올해에는 창의성과 혁신, 기술 융복합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 ‘역동적 경제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한편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여력을 확충하고 창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미래 성장동력의 발굴과 창조경제 생태계 구축에 핵심요소인 과학기술계에 R&D 혁신에 대한 주문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혁신경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래의 트렌드를 창조하며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균형을 이루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우리 과학기술계의 사명은 주력산업을 위한 선진기술 확보였다. 21세기 들어서는 추격형 경제성장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선도형 R&D 역량 강화였다. 이제는 선도적 R&D 역량에 기반하여 기존의 주력산업을 내실화하고, 새로운 혁신 생태계 하에서 다양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창출하여, 궁극적으로 미래의 새로운 산업의 지평을 여는 성장동력을 만들고 주도하는 것이다. 이에 기여하는 것은 결국은 과학기술의 몫일 수밖에 없다.
혁신경제를 견인하는 R&D는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나란 질문에 필자는 KIST의 변화와 연계하여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새로운 융합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혁신적 R&D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 문제는 대형화 복합화될 추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만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도출된 잠재시장을 과학기술을 통해 현실화하는 R&D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국민 안전과 불안 해소를 위한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재난과 안전은 단순히 우리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의 안전과 불안요소는 또한 전세계가 떠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중소·중견기업이 후발 개도국에 적정기술과 관련 산업을 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공적원조 수혜국에서 수원국으로 전환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경험과 수많은 적정기술을 많은 후발 개도국은 배우고 싶어 한다. 과학기술 ODA와 적정기술의 후발 개도국으로의 이전은 단순히 과학기술계의 세계화로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술, 우리 기업의 세계화로 이끄는 교량이 될 터이다. 이는 세계를 향한 우리의 소명이기도 하다.
어느 미래학자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필자는 과학기술인이야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의 변화와 혁신은 다가오는 미래를 개척하는 데에 쓰일 밑거름이다.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과감히 도전하려는 과학기술인의 자세로, 다시 한 번 과학입국의 기치를 들어 올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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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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