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구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유네스코가 국제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나섰다. 옌스 에릭 펜스타드(Jens Erik Fenstad) 박사는 유네스코의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의장이다. 그는 생명윤리에 대한 국제 사회의 입장을 전달하고, 또한 한국의 입장을 듣기 위해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순회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와 같은 유네스코의 순회 토론회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서 총 11개 나라에서 열릴 예정이고, 한국은 네덜란드, 이란, 리투아니아, 터키, 아르헨티나에 이어 6번째이다. 사이언스 타임즈는 펜스타드 의장으로부터 직접 생명윤리에 대한 유네스코의 입장 등을 들었다.<편집자>
“190개 회원국들이 모두 동의하는 수준에서 생명연구윤리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펜스타드 의장은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라며 다소 미소를 띠기도 했다.
생명연구는 각국의 과학적, 경제적, 종교적 입장이 다른 사안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은 혼자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면서 유네스코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가 복잡해서 흑백으로 나누기는 어렵다”면서, “하지만 작은 발걸음이라도 일정한 방향이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왜 하필 윤리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과학, 기술, 정치, 경제, 법 등의 문제들이 얽히고설키는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선택 등 윤리적인 면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있게 될 유네스코 선언의 의미는 생명연구윤리에 있어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 선포될 '생명윤리보편규범선언(Declaration on Universal Norms on Bioethics)'이‘세계인권선언’처럼 각국의 법 제정 등에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펜스타드 의장은 낙관적인 편이었다. 그는 “현재 마련된 초안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면서도, “일단 선언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받아들여진다면, 각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따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각국마다 자신들의 입장이 있고, 문화적인 차이도 있다. 따라서 유네스코 생명연구윤리선언을 따르더라도, 나라마다 다소간의 법적·제도적인 차이점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펜스타드 의장의 말에는 국제기구의 강점과 한계가 함께 드러나고 있었다.
선언문을 완성하는 데는 아직도 고비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생명의 시작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펜스타드 의장은 “유네스코는 아직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생명의 시작점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시로 보는 견해가 있고, 수정란에 원시선이 나타나면서 세포덩어리 수준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수정후 14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따라서 회원국들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유네스코 선언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각국이 선언을 따른다 하더라도 윤리논쟁은 그리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과학윤리에 대해 기준에 제시된 후에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과학윤리에 대해 오랫동안 전문가로 활동해 온 펜스타드 의장은 자신의 모국인 노르웨이를 예로 들면서, “과학교육에 윤리교육을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르웨이에는 과학윤리교육을 전담하는 전문가가 40여명 있어서, 학교나 연구소 등에서 한 명씩을 뽑아 교육시킨 후 다시 돌려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귀한 사람들은 자신의 학교나 직장에서 과학윤리에 대해 가르치고 상담하는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윤리적 이슈는 가능한 한 어릴 때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면서, “연구를 직접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일반인들도 윤리적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국의 생명연구관련 법률
최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 성공 등으로 인해 한국 역시 과학윤리 논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법은 생명연구의 범위를 제한하여, 희귀·난치병(10개의 희귀병과 6개의 난치병) 치료에 목적을 둔 체세포핵이식 배아줄기세포연구를 허용했다.
더불어 배아연구기관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배아연구계획서에 대한 복지부 장관의 사전승인제를 도입했다. 다만 배아연구의 목적이 되는 질병의 수가 향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일정한 조건하에서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도 허용하고 있다.
주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은 1990년 ‘수정란보호법’에 의해 인간배아를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연구를 금지한 반면, 영국은 같은 해 ‘인간 수정 및 발생법’에 의해 초기단계 배아를 줄기세포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수정 후 14일까지의 배아에 대해 치료목적의 복제연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인간배아의 복제를 금지한 반면, 일본의 내각 생명윤리위원회는 폐기될 배아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연구를 선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 전형준 객원기자
- samjeonst@yahoo.com
- 저작권자 2004-1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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