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불리는 알츠하이머 병. 알츠하이머는 서서히 발병되기 시작해 점진적으로 뇌의 퇴행을 가져온다. 초기에는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를 동반, 결국에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나라 노인의 치매 발병률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알츠하이머 유병률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해당 질병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병의 정확한 원인과 기전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근본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어 근본적인 치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 특징 구현한 세포모델
국내 연구진이 해외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인간신경줄기세포를 이용,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특징을 구현한 세포모델을 세계최초로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영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하 기초지원연) 질량분석연구부 박사팀이 김두연 미국 하버드 의대(Harvard Medical School)의 MGH(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교수, 루돌프(Rudolph E. Tanzi) 교수 그룹의 최세훈 박사와 공동연구를 진행, 그동안 ‘불치의 병’으로 인식된 치매의 발병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이에 따라 알츠하이머 치료연구에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김영혜 박사팀은 인간신경줄기세포의 3차원 분화를 이용, 알츠하이머 환자 뇌의 병리학적 특징을 구현한 실험모델(Alzheimer’s in a Dish)을 개발해 알츠하이머의 대표적인 발병 이론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환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원인으로 작용하는 알츠하이머 병에 대해서는 기전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 근본적인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와 김두연 교수, 그리고 최세훈 박사는 알츠하이머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더 나은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어요.”
아밀로이드 가설이란 1980년대에 제기된 가설로써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이 뇌에 과다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 펩타이드(beta-amyloid peptide)’에 있다는 내용이다. 아밀로이드 펩타이드가 쌓여 플라크가 형성되고, 신경 내부에서 비정상적으로 과 인산화된 타우 단백질이 엉킨 신경섬유매듭을 촉발시키면서 신경 세포가 사멸된다는 내용이다.
김영혜 박사 공동연구팀은 연구를 위해 인간의 신경줄기세포에 돌연변이 유전자를 삽입, 알츠하이머 질환의 중요 요인인 베타 아밀로이드 펩타이드를 과생산하는 신경줄기세포주를 만들었다. 이후 유전자를 조작한 해당 줄기세포를 뇌를 구성하는 세포외 기질성분과 섞었다.
“섞은 물질을 3차원적으로 배양하는 기술을 통해 신경세포로 분화시켰어요. 결국 치매환자의 뇌 조직 특징으로 불리는 노인반(Senile Plaque)을 구현할 수 있었죠. 나아가 실험용 생쥐에서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과축적만으로 유도할 수 없었던 세포 내 신경섬유매듭(Neurofibrillary Tangle)을 구현해 알츠하이머의 대표적인 발병 이론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데 최초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반(Senile Plaque)이란 베타 아밀로이드(amyloid)라고 하는 단백질에 다량의 전분유사 물질이 뇌세포에 축적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부검 시 발견되는 조직병리학적 특징 중 하나인 셈이다.
“신경섬유매듭(Neurofibrillary Tangle) 역시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뇌를 부검할 때 발견되는 조직병리학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타우 단백질이 과인산화를 통해 엉킨 것을 가리키죠. 정상상태에서 타우 단백질은 미세소관(microtubules)이라는 신경세포 구조를 안정화시켜 한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영양소를 잘 운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에게서 타우 단백질은 오히려 미세소관을 분해시켜요. 이는 곧 신경세포 손상으로 이어지게 되죠.”
김영혜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지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그만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라는 의미다. 이번 연구가 이토록 관심을 받는 이유는 기존 모델에서 볼 수 없던, 아밀로이드 가설의 신경섬유매듭과 베타 아밀로이드의 연관성을 새로운 모델을 통해 밝혀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치매를 포함한 뇌질환 연구는 주로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동물실험은 사실상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생쥐의 뇌조직 및 생리현상이 인간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생쥐를 이용한 기초연구가 인간 대상의 임상실험과 상이한 결과를 보여왔던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시간 단축할 수 있을 것
김영혜 박사팀의 연구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했을 뿐 아니라 동물모델에 비해 제작이 용이하고 실험에 소요되는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때문에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는 부검을 통해 구할 수 있는데 주로 질병이 마지막 단계까지 진행된 상태를 대변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어떻게 알츠하이머 질환의 손상을 일으키는지, 그 기전을 밝히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항-아밀로이드 약물이 임상실험단계에서 실패한 바 있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베타-아밀로이드가 신경 파괴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때문에 아밀로이드 가설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죠. 또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알츠하이머 모델은 생쥐 모델입니다. 돌연변이 APP를 과발현시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모방했지만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신경파괴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뇌조직 및 생리현상이 인간과 크게 다른 실험쥐의 유용성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영혜 박사팀은 먼저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신경세포를 만들어야 했다. 김 박사는 “먼저 인간신경줄기세포에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발현시키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보기로 했다”며 “하지만 이 방법을 통해서는 베타 아밀로이드 펩타이드를 과생산하고 축적하는 신경세포는 만들 수 있었지만 베타 아밀로이드 펩타이드의 응집, 즉 플라크를 보기에는 불충분 했다”고 이야기 했다.
“때문에 세포의 3차원 배양법을 도입했어요. 일반적인 평면적 세포 배양법으로는 방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기존의 세포 배양법은 배양 배지를 바꿔 공급하는 과정에서 신경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베타-아밀로이드 펩타이드가 플라크로 응집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방해를 받는 것이고요. 저희 연구팀은 뇌 세포외 기질 성분으로 구성된 겔(gel)과 세포를 섞어 3차원으로 신경세포를 분화시켜 장기간 배양시켰습니다. 그 결과 기대했던 것처럼 세포에서 분비되는 베타-아밀로이드 펩타이드가 세포 밖에 응집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현상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면서, 함께 연구를 진행한 연구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환호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생쥐 모델의 뇌조직에서 볼 수 있던 플라크를 세포모델에서 구현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며 김영혜 박사는 연구 당시를 회상했다.
“그 다음에 아밀로이드 가설처럼 이 세포 모델에서 타우단백질의 비정상적인 과인산화와 응집이 일어나는지 보고자 했어요. 생쥐 모델에서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타우 단백질이 엉긴 신경섬유매듭을 유도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 현상을 관찰하는 것은 모든 알츠하이머 연구자들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어요. 베타 아밀로이드로 구성된 플라크가 관찰된 세포를 계속 배양시켜가며 여러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응집되고, 베타 아밀로이드 생성을 억제하는 저해제를 처리하면 타우단백질의 응집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영혜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분야에서 현재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는 ‘Disease in a dish’를 실현한 사례다. 모두가 보길 원했지만 볼 수 없던 결과를 도출한 연구. 김영혜 박사는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좋은 팀웍을 손꼽았다.
김 박사는 “특히 논문에 주저자로 참여한 미 하버드 의과대학의 MGH(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신경학과, 김두연 교수와 최세훈 박사님과는 매우 자주 토의를 진행했다”며 “한 번 회의를 시작하면 몇 시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토의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서도 서로 다른 연구 스타일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목표를 위해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 시켰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2011년에 시작해 약 3년 만에 얻은 연구결과다. 연구 결과의 성과에 비해 그 기간이 비교적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정 가운데 크고 작은 어려움은 분명 존재했다. 무엇보다 실험 과정에서 신경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신경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키기 시작하면 2~3달 동안은 지속적으로 배양해야 합니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배양 배지를 교체하고 관리하는 게 필수였죠. 연휴에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몇 달간 배양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세포가 오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실험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예요. 낙심도 많이 했어요.”
뿐만이 아니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도 동시에 진행 했는데, 생쥐를 직접 다뤘던 최세훈 박사는 크리스마스나 설에도 연구실에 나가야 했다. 연구실에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날씨가 문제였다. 당시 보스톤에는 모든 공공기관과 교통수단이 멈출 정도로 큰 폭설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세훈 박사는 생쥐에게 면역억제 주사를 놓기 위해 매일 출근을 해야 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든 결과이기에 그런지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저희팀은 도출된 연구결과가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얻은 알츠하이머 세포 모델은 시료 수급이 어려운 인간 뇌를 대신해 질환의 병인 기전을 연구하기에 용이합니다. 또한 동물모델 실험에 소요되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죠. 이는 곧 치매 신약 개발 연구를 가속화 할 수 있다는 의미에요. 기존 동물 모델 시스템에서는 한 약물에 대해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신경섬유매듭에 대한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없었을 뿐더러 실험 기간도 1년이 넘게 소요됐는데, 저희가 개발한 세포 모델을 이용하면 몇 달 내에 수천 혹은 수만종의 약물을 테스트할 수 있어요. 해당 세포 모델과 동물 모델을 함께 적절히 이용할 경우 치료제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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