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바이오 연구의 마지막으로 불리는 뇌 연구. 뇌는 기능도 다양하고 복잡해 뇌 활동의 모든 영역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과제로 알려져 있다.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인간의 뇌. 그 중에서도 뇌수막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로써 역할과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뇌수막은 인체의 중추신경계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물리적 장벽의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중 특히 지주막을 이루는 지주막세포는 강력한 세포연접을 갖는 상피세포로 외부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함으로써 뇌수막의 물리적 장벽으로 기능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뇌가 손상 되면 뇌수막 붕괴가 일어난다. 이 때 붕괴된 뇌수막이 회복되지 않고 지연될 경우 뇌수막염과 뇌척수액 소실, 뇌실기공과 함께 이차적 손상이 일어나 환자가 영구적인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며 사망률도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산소 농도 따른 뇌수막 재구축과 회복 단백질
뇌손상이 발생한 후 뇌수막이 즉각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신경조직의 추가 손상을 막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에 의하면 뇌손상 직후 뇌수막 유래의 세포들이 상피간엽이행(EMT, 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을 통해 병변 주위로 이동한다는 보고만 있을 뿐, 뇌수막의 재구축 과정과 이에 대한 분자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국내 연구진이 뇌손상 후 혈관의 손상과 재생에 따른 즉각적인 뇌수막 회복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규원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팀이 산소 농도에 따른 뇌수막의 재구축과 회복 단백질을 밝혀낸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뇌수막 재구축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이 활발하게 연구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저희 연구팀은 뇌손상 회복과정에서 뇌수막에서 분비되는 TGF-β1과 레티노인산(retinoic acid) 그리고 병변 주변의 산소농도 변화가 함께 작용해 손상된 뇌수막의 재구축 과정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그 분자적 기전으로써 이러한 상위 인자들의 조절을 받는 ‘AKAP12(A-Kinase Anchoring Protein 12) 단백질’이 뇌수막 상피세포의 상피간엽이행(EMT, 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을 통제함으로써 뇌수막 재구축과정을 주관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죠.”
AKAP12는 기존 연구에서 암억제 단백질로 알려진 물질이다.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통해 세포의 안정성과 이동성을 조절한다. 상피간엽이행(EMT)이란 세포 간 결합이 느슨해지고 세포 골격이 변하면서 조직이 운동성을 획득하는 현상으로, 김규원 교수팀은 뇌손상 후 회복과정에서 AKAP12이 뇌수막 세포의 상피간엽이행을 중재함으로써 뇌수막의 재구축 과정을 조절하는 것을 알아냈다.
뇌가 손상됨으로써 혈관이 손상되는데, 이 때 뇌는 저산소 상태에 노출된다. 이 경우 뇌수막 세포에서 AKAP12 생성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TGF-β1(Tumor Growth Factor-beta1)에 의한 상피간엽이행을 억제하지 못해 뇌수막세포가 병변주변으로 이동하게 된다. TGF-β1란 정상 뇌의 뇌수막에서 주로 발현되는 단백질로, 신경세포 증식과 유지에 관여하며 상처치유나 암 전이시의 상피간엽이행을 조절해준다.
시간이 더 흐르면 저산소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 혈관에서 새로운 혈관이 뻗어 나와 산소를 공급한다. 김규원 교수팀은 이에 따라 뇌수막 세포의 AKAP12 생성이 회복되고 TGF-β1에 의한 상피간엽이행을 억제해 뇌수막 세포의 상피성질이 회복되면서 손상부위 주변으로 새로운 뇌수막 구조가 재구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외부환경에 취약하고 재생이 어려운 신경조직을 보호하는 뇌수막의 기능적 특성상 뇌수막은 차별화된 즉각적인 재구축기전이 요구됩니다. 손상 후 재구축 과정에서 뇌수막을 이루는 세포들은 역동적인 성질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정상상태에서 뇌수막세포들은 서로 견고하게 연결되는 안정한 상피성질을 가지는 반면, 손상 상황에서는 여러 자극에 의해 활성화 돼 증식과 함께 필요한 부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죠. 회복과정에서 이동한 뇌수막세포들은 다시 안정한 상피성질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뇌수막을 이루게 됩니다. 세포들의 이러한 성질 전환을 상피간엽이행이라고 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정상 뇌수막에서 TGF-β1과 레티노인산이 높은 농도로 유지되며 정상산소 농도와 두 인자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AKAP12 단백질이 뇌수막 상피세포에서 과발현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흥미롭게도 TGF-β1는 매우 강력한 상피간엽이행 유발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상황에서 뇌수막 상피세포에서 상피간엽이행이 일어나지 않고 안정된 상피 성질이 유지됩니다. 그 기전으로써 TGF-β1과 레티노인산이 함께 존재할 때 발현되는 AKAP12 단백질이 TGF-β1의 효과를 차단해 상피간엽이행을 막게 되죠. 마치 레이싱 경주에서 빠른 출발을 위해 경주차량들이 악셀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은 채 대기 상태를 유지하다가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브레이크를 풀며 출발하듯, 정상상태의 뇌수막은 악셀인 TGF-β1을 높게 유지시킴과 동시에 브레이크인 AKAP12를 과발현시켜서 응급상황에 대비해 즉각적인 상피간엽이행을 준비합니다.”
김규원 교수에 따르면 중추신경계는 다른 조직에 비해 산소의존도가 매우 높은 기관이므로 조직 손상 후 병변 주변으로 즉각적인 혈관신생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손상 후 회복과정에서 역동적인 산소 분압의 변화가 일어난다. 더군다나 산소는 복잡한 신호 경로를 거치지 않고 타깃 단백질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신속한 반응을 가능케 하는 인자이므로 그 과정이 더욱 역동적이다. 김규원 교수팀은 뇌수막 상피세포의 상피간엽이행을 관장하는 AKAP12 단백질의 발현이 손상 후 회복과정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이것이 산소 분압의 변화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본 뇌손상 회복과정
사실 그동안 뇌수막 재생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기전이 규명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를 알아내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된 요인은 결국 생명현상을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환원적 사고에 입각한 기존의 연구들은 최대한 단순화 된 관점에서 단일 세포 또는 단백질 수준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생명 현상들을 해석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 태도는 실험의 재현성을 높이고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지만 생체에서의 다양한 세포들과 인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뇌수막의 재구축 과정 역시 다양한 세포의 이동, 안정화, 염증, 산소분압의 변화 등과 같은 매우 복잡한 생명현상의 종합적인 결과물입니다. 기존의 환원적 연구방법과 연구관점으로는 그 과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하기 힘들었던 거죠.”
김규원 교수팀은 기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거시적 관점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여러 가지 관련인자들과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거시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했다”며 “우선 국소적인 뇌 손상을 일으킨 쥐의 회복 과정에서 염증과 상피간엽이행, 혈관의 붕괴와 재생과정을 조직학적으로 면밀히 관찰했다. 이어 각 생명현상들의 시기별 상관관계를 파악해 뇌수막 재구축 과정을 세포 간 상호작용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정된 관련인자들을 세포에 복합적으로 처리해 좀 더 생체에서와 유사한 환경에서 기전 연구를 수행했다”고 덧붙였다.
김규원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타깃 단백질인 AKAP12의 역할을 이해하면서다. 결손된 AKAP12 유전자를 갖고 있는 쥐가 국소적 뇌손상을 입은 후 회복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후 뇌손상 회복과정에서 AKAP12 단백질의 기능을 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AKAP12 단백질의 발현과 기능에 여러 인자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거시적 관점에 바탕을 둔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기존 생명과학 분야가 사용한 대부분의 연구 방법은 환원적 연구를 위한 것들입니다. 때문에 거시적 연구관점을 뒷받침할만한 연구방법이 부재했죠. 연구 과정 가운데 겪은 어려움은 이처럼 거시적 연구관점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희 연구팀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연구 가설도 여러 차례 수정할 수 밖에 없었죠. 또한 논문 게재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연구 과정 중 부딪힌 난점 중 하나입니다. 해당 논문은 투고 과정만 3년이 걸렸습니다. 18번의 투고와 3번의 재심사(revision)를 받은 결과물인 셈이죠. 기존 환원적 관점의 심사위원들에게 뇌손상조직의 미세환경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연구결과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희팀은 앞으로 이러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차원의 연구를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김규원 교수팀의 연구를 통해 뇌손상 후 뇌수막 재구축 과정이 밝혀지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TGF-β1, 레티노익산, 산소분압, AKAP12 단백질 같은 인자들이 제안된 만큼 앞으로 이러한 인자들을 조절함으로써 뇌손상 환자들의 예후를 증진시킬 수 있는 치료법 개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불어 상피간엽이행이 관련된 암 전이, 장기 섬유화 등의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으며 세포수준 이상의 종합적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뇌손상 후 산소를 포함한 다양한 인자들로 이뤄진 미세환경에 의한 손상조직의 즉각적인 회복과정을 밝힘으로써 뇌조직의 특수한 보호기전을 규명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세포수준 이상의 종합적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죠. 이번 연구 결과에서 도출된 여러 관련인자들이 뇌손상 환자들의 예후를 증진시킬 수 있는 치료법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초기단계의 연구입니다. 실제 치료법 개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관련인자들을 생체에서 조절할 수 있으면서 안정성이 확인된 방법을 수립해야 합니다. 회복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뇌수막 장벽의 기능이 다양하고 면밀하게 연구 돼야 할 것입니다. 저희팀은 앞으로 이에 대한 후속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세포 간엽이행이 관련된 암전이, 상처치유, 장기의 섬유화와 관련된 질환에서도 본 연구 결과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0-15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