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치열해지는 선진국과의 기술전쟁과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살아나갈 길은 무엇인가. 대기업들이야 자체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개척한다지만, 중소기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학한림원은 CEO 조찬집담회에 다섯 평 가게에서 출발 14년 만에 연 매출 2천억 원대의 중견기업을 일군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을 초청 ‘다섯 평 창고의 기적’이란 주제로 국제화시대 한국의 중소기업의 나아갈 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편집자 주]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은 대기업의 단순 하청에 머무는 중소기업이라면, 언제 당하게 될지 모르는 계약 파기에 대한 염려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직접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할 수 밖에 없는데,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정식 계약서를 작성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주서로 계약서를 대신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문은 끊어질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중소기업도 언제 설비투자를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림동의 다섯 평 가게에서 구리선의 피복을 벗겨내 전선을 가공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 휴대폰, PDP, LCD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온 이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고 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았지만, 단가가 턱없이 낮거나 그나마 물량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중소기업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대만, 중국 등의 해외기업과도 경쟁을 피부로 느껴야 했고, 미래는 더욱 어둡게 보였다. 그래서 정사장이 해법으로 선택한 것이 세계 전시회를 쫓아다니면 기술동향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국내 전자산업은 생산비용 상승, 잦은 무역규제, 후발 개도국의 추격 등으로 1990년대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디지털TV, MP3폰, 디지털 셋톱 박스 등 통신 및 네트워크를 이용한 디지털 부문은 당분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이것이 1년에 10회 이상은 세계 전시회를 쫓아다니면서 정사장이 터득한 결론이다. 그래서 정사장은 다른 회사들이 연구인력의 규모를 축소하던 시기인 IMF 때 과감하게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지금은 3백95명의 직원 중 50여명 수준으로 성장한 연구소 인력들은 CDMA 핸드폰, LCDTV 모니터, PDP 등 고부가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기업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도 구멍가게적인 의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사장은 중소기업이라도 대기업의 필요를 미리 예측하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마인드가 있을 때 지속적인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사장은 이레전자의 성장 발판이 된, 휴대폰 충전기 사례를 들었다.
96년 현대 전자가 휴대폰을 개발하고도 충전지를 개발하지 못한 것을 알고, 3개월을 쫓아다닌 끝에 겨우 품질검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되어, 안정성을 확신했던 정사장은 최종적인 품질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4천여 대에 달하는 충전기를 미리 만들어 뒀다가 결과가 나온 다음날 납품해 버린 것이다.
과감한 투자로 무명의 재하청 기업이 굴지의 대기업에 2년간 충전기 분야에서 독점적인 납품업자로 인정 받게 됐고, IMF로 다른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급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정사장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시기에 물건을 납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대기업과 공생을 이뤄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발전적인 협력 모델을 찾기 위해 진행된 이날 조찬 집담회에는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삼성전자 이윤우 사장, 손욱 삼성인재연구원장,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등 20여명의 이공계 출신 CEO들이 참석했다.
- 유상연 객원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4-1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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