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1013 Hz(0.1~10 THz) 에 이르는 주파수 대역인 테라헤르츠 대역.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생체분자나 우주에서 오는 파동은 대부분 테라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갖고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대신 해당 대역의 신호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거나 검출할 수 있는 상용기술이 없어 현재 미개척 영역으로 불리고 있다.
전체 전자기파 주파수 스펙트럼에서 유일한 미개척 영역으로 불리는 테라헤르츠 갭(THz gap). 광파(빛)의 직진성과 전파의 투과성이 공존하고 낮은 에너지로 인해 인체에 무해한 점 등 여러 장점을 갖고 있는 테라헤르츠 대역은 초고주파 대역에서의 초고속‧대용량 통신뿐 아니라 이미징 및 분광 기술을 바탕으로 한 큰 잠재시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유망 기술 분야로 불리는 만큼 시장규모 역시 매우 높아지고 있다. 2016년부터 급성장해 2021년에는 570 밀리언(million)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테라헤르츠 대역에서 전자를 빠르게 이동시키다
높은 시장성을 이유로 전 세계 과학자들은 테라헤르츠파 대역 기술의 상용화와 시장 선점을 위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는 거대장비 기반의 광기술이 아닌 소형화 및 고집적에 유리한 전자파 기반의 전자소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실리콘 반도체의 전자가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진동을 보이면서 기존 전자이동 속도보다 10~100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경록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 미개발 잠재 시장인 테라헤르츠 기술을 상용화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김경록 교수팀의 이번 연구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국내 연구기관 중 유일하게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주관하는 나노테크놀로지 학회(IEEE-NANO)에서 ‘차세대 나노전자소자’ 분야 우수논문(Best Paper)로 선정되기도 했다.
"산술적으로 살펴봤을 때 THz 기술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상용 전자기기가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인 기가헤르츠(1초에 10억 번 진동) 대역의 1000 배에 이릅니다. 현재 모든 상용 전자기기에는 핵심부품으로 실리콘 소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실리콘 소자는 비용이 낮고 높은 집적도를 실현할 수 있지만 고가의 화합물 반도체소자에 비해 전자의 이동도가 현저히 낮아요. 때문에 초고주파 소자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라헤르츠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실리콘 소자에서의 이의 동작 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 사용되는 실리콘으로는 전자가 기가헤르츠 주파수로 진동하면서 이동할 뿐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로 인해 현재 전자제품은 기가헤르츠 대역까지만 주파수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합물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고가의 가격이라는 점 또한 단점으로 작용했다.
"광파와 전파의 중간지점인 테라헤르츠 기술의 실현을 위한 연구에는 광파로부터의 접근과 전파로부터의 접근,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광파의 높은 주파수로부터(예를 들어 가시광선 450 THz~720 THz) 주파수를 내려가면서 테라헤르츠 주파수 대역으로 접근하는 광학적 연구는 출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광파를 만들어내기 위해 진공 제작 장비 등 거대 장비가 필요한데 이는 상용화 및 대중화에 적합하지 않은 특수 기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전파로부터 접근하는 전자공학적 연구의 핵심 기술인 고체 상태의 반도체 소자는 소형화 및 고집적에 유리하다. 때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전자레인지 등 다양한 전파를 발생시키고 검출하고 처리하는 대중화된 상용 기술로 활발히 활용된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경록 교수팀은 전자의 개별적 이동으로 기술되는 기존 소자의 동작원리에 전자의 집단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초고속 플라즈마파 (plasma-wave) 기술을 융합했다. 여기서 기존 소자는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로 게이트와 소스, 드레인 세 개의 전극을 가지며 게이트의 전계-효과에 의해 소스와 드레인을 연결하는 채널 전자를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FET 동작 이론에서는 채널 전자들이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이동할 때 격자나 이온에 의해 산란하면서 개별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기술되지만 채널 전자 밀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집단적으로 뭉쳐 이동하게 돼요. 특정 경계조건에서 전자 밀도의 시공간상의 집단적 변화(wave)가 발생하고 그 파장의 속도는 개별 전자의 이동 속도보다 10~100 배 빠른 초고속 상태입니다. 공기 자체가 이동하는 일반적인 바람의 속도 1~5 m/s 보다 공기를 매질로 전파하는 소리의 속도 340 m/s가 빠른 것과 같은 원리죠."
김경록 교수는 "기존 FET 이론은 이러한 플라즈마파 이론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플라즈마파 이론은 같은 FET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전자의 제한된 이동도 등 기존 FET 이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기술하고 있는 것에 착안했다"고 이야기 했다. 과연 상대적으로 낮은 이동도(많은 산란)를 갖는 실리콘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더불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 김경록 교수팀은 약간의 이동도 향상을 갖는 같은 실리콘 반도체를 사용하면서도 집단 이동하는 전자의 밀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는 파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플라즈마파 파형의 진동 횟수가 테라헤르츠 주파수로 진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차세대 나노전자소자 연구에 대한 목표
김경록 교수팀은 다른 연구팀이 플라즈마파(plasma-wave)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판별할 수 있도록 플라즈마파 트랜지스터(plasma-wave transistor; PWT) 성능평가 방법도 제시했다. 독창적으로 개발한 PWT 성능평가방법을 활용해 고가의 ‘화합물 반도체’에 비해 전자의 이동도가 낮아 초고주파 동작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저가의 상용 ‘실리콘 반도체’에서도 테라헤르츠 대역의 플라즈마파 발진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다.
특히 테라헤르츠 주파수를 발진하는 실리콘 소자의 크기가 현재의 상용 반도체 패터닝 기술로 가능한 수십 나노미터 스케일임을 확인했다. 실제 테라헤르츠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경록 교수팀은 초고속 플라즈마파 융합소자 원천기술은 '플라즈마파 트랜지스터 성능 평가 방법'으로 국내 특허 출원 및 국제특허협력조약(PCT)을 통한 국제 특허 출원을 마친 상태다.
김경록 교수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김 교수는 "2010년도 2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현재 울산과학기술대학교로 오면서 기존 CMOS(상보형 금속산화반도체, 실리콘 소자의 기술적 대명사)의 한계인 '기가-레벨'을 극복하고 '테라-레벨'을 실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차세대 나노전자소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던 중 2012년도에 한국과학기술원 이상국 교수님으로부터 CMOS를 기반으로 하는 테라헤르츠 융합기술 연구과제를 기획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제 연구 주제인 CMOS 기반 플라즈마파 트랜지스터 세미나를 통해 연구 기획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수차례 열띤 논의를 거친 결과 CMOS 기반의 PWT를 핵심 연구주제로 미래유망융합기술 파이어니어 과제에 선정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본 연구 과제는 미개발 주파수 대역인 테라헤르츠 기술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과제 이름인 ‘파이어니어’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해야 할 많은 장벽이 있지만 개발만 된다면 상용화로 바로 연결이 가능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risk, high-return)의 실리콘 소자 기반 플라즈마파 트랜지스터 기술에 중점을 두고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김경록 교수는 "아무래도 ‘파이어니어’ 과제인 만큼 불가능한 미개척 영역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 중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 자체가 장벽임과 동시에 기회였다"며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때로는 힘들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채 관심을 두지 않던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연구과정에서, 또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더욱 단단해지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번 연구는 현재 IT 혁신을 주도하고 일상생활 속에 활용되는 실리콘 기술로 초고주파 테라헤르츠 대역의 동작 가능성을 제시한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으로 예상돼요. 역사적으로 볼 때 주요 첨단 기술의 상용화 및 대중화의 길목에는 항상 실리콘 기술이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진공관에서 시작한 초대형 컴퓨터가 책상 위의 개인용 PC로, 무릎 위의 랩탑(lap-top) PC로, 손 안의 태블릿 PC로 발전되는 과정 자체가 반도체 소자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요. 특히 이번 연구결과는 저비용․고집적․소형화가 가능한 실리콘 기술이 미친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대 장비 기반의 광학 기술이나 고가의 화합물 반도체 기술들이 실리콘 기술로 대체가 가능하다면 테라헤르츠 기술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손 안의 모바일 기기를 통해 활용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김경록 교수는 이번 연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신 나노스케일 FET 이론을 더욱 자세히 적용하고 확장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이야기 했다. 플라즈마파 트랜지스터 이론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주제가 파생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실험을 위해서는 현재 제작되는 기본적인 스트레인드 실리콘 소자 외에 실리콘에서의 이동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소자구조 및 실험방법에 대한 향후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레드 오션에서 새로운 블루 오션을 개척하는 것이야 말로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실리콘 소자의 테라헤르츠 대역 동작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해 테라헤르츠 기술 상용화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점에 이번 연구의 의의를 들 수 있습니다.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레드 오션으로 포화 상태인 상용 실리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미개발 잠재 블루 오션 시장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겠죠."
김경록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계기로 실리콘 반도체 기술이 이미 성숙된 산업체 기술이 아닌 아직도 근본적으로 연구할 것이 많은 핵심 기술로 재조명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 더불어 CMOS 기반의 테라헤르츠 기술에 대한 산업체의 관심과 기대가 관련 연구 분야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9-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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