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A 형 간염. 주로 급성으로 발병하는 이 질환은 기존의 B 형 간염이나 C형 간염과 달리 혈액을 통해 전염되지 않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함으로써 전염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염된 음식으로 인해 발병하는 만큼 위생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저개발국가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에는 국내 20~30대의 젊은 연령층에서 오히려 발병률이 두드러지고 있다. 오히려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A 형 간염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수천 명의 환자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사망률도 0.2%에 이르는 질병. 특별한 치료법도 없어 예방에만 기대고 있는 상황이기에 한 번 질환에 걸린 환자들은 더욱 막막할 뿐이다.
면역계 균형 유지하는 T세포의 영향
국내 연구진이 A형 간염환자의 간 손상 해결책의 단초를 마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팀이 A 형 간염에 대한 연구를 진행, 인체 내 면역계의 균형유지를 담당하는 조절T 세포가 A형 간염 환자의 간 손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밝힌 것이다. 이번 연구는 치료책이 없던 질환에 대한 결과인 만큼 학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결과를 인정받아 연구팀의 논문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소화기학 학술지인 ‘거트(Gut)’ 지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A형 간염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간염으로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 발병률이 높다. A형 간염 바이러스가 입을 통해 소화기로 침입해 감염되는 질병으로 이환된 환자는 대개 심한 간 손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A형 간염 시의 간 손상이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반응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이번 저희 연구에서는 A형 간염 환자로부터 조절 T세포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인체 내에서 조절 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함으로써 면역반응을 적절히 제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통해 A형 간염 환자에서 조절 T세포 숫자가 현저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와 함께 조절 T세포의 면역 억제능이 감소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죠. 뿐만 아니라 흥미롭게도, 조절 T세포의 감소가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 환자일수록 간 손상은 더욱 극심하게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A형 간염 시 왜 조절 T세포의 숫자가 감소하는지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었죠.”
신의철 교수는 “이러한 데이터는 A형 간염 시 조절 T세포의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면역반응이 적절히 제어되지 못하고 간 손상이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시사한 결과”라며 “사람의 급성 바이러스 질환에서 조절 T세포의 역할을 밝힌 첫 번째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신 교수팀이 A형 간염을 선택해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A 형 간염의 경우 환자의 발병초기와 회복기를 순차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임상적 양상을 나타내므로 급성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인체의 면역반응을 연구하기에 적당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구진은 어떻게 조절T세포가 A형 간염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그동안 조절 T세포가 인체 내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절 T세포의 숫자가 감소하거나 면역 억제능이 감소해 있다는 사실이 그동안 각종 자가면역질환에서 보고된 바가 있습니다. 각종 암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고요. 하지만 사람의 급성 바이러스 질환에서는 조절 T세포의 역할이 알려진 바가 없었죠. 그것을 이번에 저희가 보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 초기에 A형 간염과 조절 T세포의 연관성을 가정했던 것은,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A형 간염 시의 간 손상은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반응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즉 A형 간염 시 간 손상이 자가면역질환 시의 조직 손상처럼 과도한 면역반응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죠.”
신의철 교수팀은 A형 간염 환자로부터 얻어진 혈액에서 조절 T 세포를 포함한 다양한 면역세포의 숫자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형광 유세포 분석(fluorescence flow cytometry) 기법을 활용했다.
형광 유세포 분석법이란 면역학 연구에서는 필수적인 방법으로, 혈액에서 항체를 이용해 조절 T 세포 및 다양한 면역세포를 형광염색하고, 유세포 분석(flow cytometry)을 수행해 그 숫자 및 특성을 분석해 결과를 얻는다. 특히 이번 연구처럼 환자의 혈액을 이용해 면역학 분석을 시행하는 임상면역학 연구가 발전하는 데 있어 형광 유세포 분석법의 기여는 매우 컸다. 신 교수는 “특히 우리 팀은 10컬러 이상의 다채널 형광 유세포 분석에 다년 간의 경험과 특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적은 양의 환자 혈액을 이용해서 이번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A형 간염 환자의 혈액에서 조절 T 세포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이와 함께 조절 T 세포의 면역 억제능이 감소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조절 T 세포의 감소가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 환자일수록 간 손상의 진행은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연구팀은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세포표면 단백질인 ‘Fas’의 발현 증가에 의한 세포사멸 현상이 이러한 조절 T 세포의 수적, 기능적인 감소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실제 환자의 혈액을 분석해 입증했다.
임상연구자들의 협조 절실했던 연구

현재 A형 간염으로 인한 환자들의 어려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성과는 많지 않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B형 혹은 C형 간염과 달리 A형 간염의 경우 많은 환자들에게서 저절로 회복되기도 하며,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것이다.
“같은 간염이라도 B형이나 C형 간염의 경우 오랫동안 만성으로 지속되며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A형 간염은 저절로 회복되기도 하고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상태였죠. 하지만 A형 간염 환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간 손상이 극심하기 때문에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A형 간염 시 나타나는 간 손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연구과제 였습니다. 한가지 더, A형 간염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마우스와 같은 소동물에는 감염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도 환자의 혈액을 직접 연구해야 했죠.”
신의철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 대해 “임상 연구자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던 사례”라고 언급했다. A형 간염 환자의 혈액을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다른 무엇보다 임상연구자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며 “연구에 참여한 모든 임상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맺을 수 있던 결과였다”고 덧붙였다.
신의철 교수팀은 최근 C형 간염 연구에서도 여러 번의 좋은 성과를 낸 바 있다. C형 간염에 이어 A형 간염까지. 어려운 연구 과제에서 매번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 대해 신 교수는 박사과정 연구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좋은 성과를 얻는 요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연구실의 구성원인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의 노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연구실들도 그렇겠지만 저희 연구실은 연구주제 선정부터 실험 수행, 결론 도출까지의 전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의 의욕과 자발적인 참여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연구 수행에 더해 연구실 내 공동 협업의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는 것이 큰 장점이죠.”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제1세대 중개연구전문가의 배출로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최윤석 박사과정 연구원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내과의사로서 전문의 취득 후 이 곳 의과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이다. ‘인체T 세포에 의한 면역반응의 조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의사-과학자’ 훈련을 5년간 받은 그는 ‘1세대 중개연구전문가’의 성공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중개연구는 기초의과학 연구를 임상의학으로 연결시키는 가교가 되고 있습니다. 질병 지향적인 연구를 특징으로 하고 있죠. 따라서 기초의과학 연구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이해하며 구사할 수 있는 특성화된 연구 인력의 존재가 중개연구의 성공과 발전에 있어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최윤석 박사처럼 내과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카이스트 의과학 박사이기도 한 중개연구전문가들이 앞으로도 많이 배출되고 육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 최윤석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충남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진료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림프계 악성질환(악성림프종 및 다발성골수종)에서 종양특이 T세포의 기능적 변화와 임상적 의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그는 궁극적으로 난치성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 타깃 발굴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에는 A형 간염 환자로부터 조절 T세포의 세포사멸을 억제해 수적 감소를 예방함으로써 간 손상을 최소화하는 치료법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지만 기전이 다른 급성 바이러스 질환에서도 확인된다면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가 없는, 다양한 중증 급성 바이러스 감염질환에서도 조직 손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A형 간염처럼 마우스 등의 동물에서 연구하기 힘든 각종 인체 질병의 기전을 환자의 검체를 직접 분석함으로써 규명할 계획이라는 신의철 교수. 그는 인체 질병의 기전을 환자 검체 분석을 통해 규명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에 적합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특화된 기술을 개발해 향후 임상기반 질병연구를 더욱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연구의 계획과 포부를 전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8-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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